영국, 앤디 머레이 & 댈러스매버릭스, 데릭 로즈
피도 눈물도 없는 승자독식 스포츠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선수들을 볼 때가 종종 있다. 상대를 잡아먹을 기세로 소리를 치고,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프로들에게 '눈물'은 다소 어울리지 않다. 그나마 익숙한 장면은 승자가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다. 엄청난 경쟁을 이겨낸 최후의 승자는 모두가 바로 보는 최정상에서 아름답게 눈물을 흘린다. 기쁨, 성취감, 희열, 환희, 감사, 뿌듯함. 여러 감정이 뒤섞인 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면 관중도 모두 하나가 되어 박수를 치기 마련이다. 패배자가 흘리는 눈물은 모두가 지켜보지 않는 라커룸이나 쓸쓸한 퇴장 길에 어울릴 뿐이다. 하지만 테니스와 농구, 각기 다른 종목에서 두 남자가 흘린 눈물이 오랜 시간 맴돈다. 목이 메고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흘리는 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그들의 지난 커리어를 알기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In the middle of my training block back in December I spoke to my team, I told them that I can’t keep doing this, that I needed an end point, because I can’t keep playing with no idea when the pain will stop."
12월에 트레이닝 중간에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는 없다고 팀에게 말했다. 통증이 멈추지 않는다면 계속 테니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종점이 필요하다.
“I told them (my team) that I’ll try and get through this until Wimbledon. That’s where I would like to stop playing, but I’m also not certain I’m able to do that,"
나는 윔블던 전까지 노력하고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윔블던은 내가 마지막으로 뛰고 싶은 무대이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1월 11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앤디 머레이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2017년 부상 이후 1년 가까이 재활에 매달린 머레이는 복귀 이후에 6개 대회에서 최고 성적 8강에 그치며 예전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자연스레 2016년 연말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그는 200위권 밖으로 떨어졌고, 호주오픈에서 우승 후보로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그는 컨디션을 묻는 질문에 좋지 않다("Not great")고 대답한 뒤 한참을 울먹거렸다. 결국 잠시 기자회견장을 떠나고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인터뷰를 진행했다. 고관절 부상으로 통증이 계속되어 예전처럼 테니스를 즐기지 못할 것 같다며,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윔블던까지 뛰고 싶지만 몸상태를 확신할 수 없다며 중간중간 눈물을 닦으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1회전 상대는 스페인의 바우티스타 아굿. 20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올해 도하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상승세를 이어가는 상대였다. 1만여 명의 관중은 머레이를 열렬히 응원했지만, 아굿은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경기를 이끌었다. 6-4, 6-4로 승부가 기울었지만, 머레이는 3세트부터 기적처럼 살아났다. 상대를 깊이 끌어내는 예리한 서브와 정확한 발리 플레이, 끈질긴 코트 커버를 선보이며 3,4세트 타이브레이크를 따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모든 힘을 쥐어짜 낸 듯, 머레이는 마지막 5세트에서 뛰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예전처럼 아쉬운 실수에 소리를 지르고 신경질적으로 본인을 다그치던 모습은 없었다. 통증이 밀려오는 듯 다리를 주무르고, 절뚝거리며 상대의 공격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관중들은 진통제를 맞아가며 마치 결승전처럼 1회전에 임한 머레이에 진심 어린 박수를 건넸다. 호주오픈에서 다섯 차례나 준우승(2010년, 2011년, 2013년, 2015년, 2016년)에 올랐던 머레이는 그렇게 마지막 무대를 떠났다. 영국 밴드 퀸의 'We are the champion'이 흘러나오고, 동료들의 격려 메시지가 이어지자 머레이는 감사의 인사를 모두에게 전했다.
“I am in year 11 now. I tore my ACL in my third year. Most guys would have been retired. Financially, I have saved my money. It’s all about the love. I still feel like I can hoop.”
나는 11년차다. 나는 3년차에 ACL 파열 부상을 당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퇴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나는 돈을 모았다. 이것은 전부 사랑에 관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농구를 할 수 있다고 느낀다.
“I am going to run with any opportunity,” Rose said. “That is my goal. Get back in, and anything that comes my way I am going to grab it. I have no time to be feeling spiteful. I don’t want to say, ‘Look at me’ or ‘Look at what they did.’ I don’t have no time for that. What I am doing right now is history in my own world. - RealGM 인터뷰 중
나는 어떤 기회든 뛸 것이다. 그것이 나의 목표다. 다시 돌아와서 내게 주어지는 모든 걸 잡을 것이다. 나는 원한을 느낄 시간이 없다. 나는 '나를 봐라', '내가 하는 걸 지켜봐라'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럴 시간이 없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나의 세게 속 역사다.
데릭 로즈는 2018년 2월 유타 재즈에서 방출되며 팀을 구하지 못했다. 옛 시카고 불스 감독 탐 티보도 감독은 그를 미네소타로 식스맨으로 불러들였고 겨우 NBA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 리그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데릭 로즈에게는 다소 초라한 행보였다. 2008년 드래프트 1순위, 2009년 신인상, 2011년 역대 최연소 MVP, 올스타 3회, 아디다스 초장기 스폰서 계약. 리그 최정상에 빠르게 오른 흑장미는 너무나 빨리 져버렸다. 전방 십자인대, 무릎 반월판 등 지긋지긋한 큰 부상이 너무나 빠르고, 강력한 그의 발목을 잡았다. 친정팀에서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되고, 베테랑 미니멈으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갈 때도 계속 크고 작은 부상의 악령에 시달렸다. 플레이오프나 중요한 경기에 쏠쏠한 활약을 펼치곤 했으나, 팬들의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데릭 로즈는 어느덧 리그를 호령하던 에너지 넘치는 MVP가 아니라 주전 가드의 체력을 아끼기 위해 시간을 채우는 후보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1월 1일 할로윈 데이에 데릭 로즈는 MVP로 돌아왔다. 41분 출전 50 득점 6 어시스트 4 리바운드 2 스틸. 가장 화려했던 전성기의 득점 기록(2011년 44점)마저 갱신하며 로즈는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첫 득점은 약점으로 지목되던 3점 슛이었다. 부드러운 돌파에 이은 빠른 골밑 득점, 상대 센터의 키를 넘기는 감각적인 플로터 등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특히 로즈는 승부처인 4 쿼터에 무려 15점을 넣었고, 종료 30초 전 골밑슛, 자유투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게다가 종료 직전에 단테 엑섬의 슛까지 블록 하며 128-125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관중들 모두 일어나 "MVP! MVP!"를 연호했고, 어린 미네소타 동료들은 자기 일처럼 로즈를 얼싸안고 웃었다. 흑장미가 다시 핀 순간 경기장 속 모두는 로즈에게 축하를 건넸다. 지난 시련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 듯, 로즈는 수건을 뒤집어쓰고 울음을 터뜨렸다. 빨갛게 충혈된 눈, 목이 멘 목소리로 모두에게 감사함을 전한 그는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좋아하던 두 선수가 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주황빛이 돋보이는 헤드 래디컬 테니스 라켓, 시카고 불스를 상징하는 강렬한 빨간색이 인상적인 D ROSE BOOST 5. 시간이 흘러 어느덧 신발장과 창고에 처박혀 있지만, 좋은 추억이 많은 물건들을 오랜만에 꺼내봤다. 머레이와 로즈, 모두 전성기를 누릴 때보다 오히려 불꽃이 꺼져가며 마무리 단계를 준비하는 지금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머레이는 페더러-조코비치-나달이라는 천상계 레전드 사이에서 랭킹 1위도 올랐고, 올림픽 금메달도 2개나 따냈다. 엄청난 스타들이 즐비한 NBA에서 데릭 로즈는 최연소 MVP란 여전히 깨지지 않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두 선수 모두 압도적인 레전드와 비교하면 약점이 뚜렷하게 보이는 선수다. 멘탈이 약해서 스스로 결승전에서 무너지는 수비형 테니스의 만년 4등, 3점은 없고 운동능력으로 밀어붙이는 반쪽 짜리 가드. 하지만 나는 비범한 천재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최고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이 좋았다.
어찌 보면 그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라 정이 갔다. 10년 넘게 메이저 대회를 독식하며 신예들에게 참 교육을 하는 고인물 3인방(페더러는 무려 38살이다.). 금강불괴처럼 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손쉽게 50점을 넘기는 하든. 그들과는 다르게 머레이와 로즈는 1인자를 따라가려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리고 실제 1인자의 자리에도 올랐다. 물론 이기기보다는 매번 아쉽게, 백지장 차이로 패배했지만. 승리가 전부인 스포츠 세계에서 그들의 눈물은 그저 패배의 아쉬움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목표를 향해 자신이 가진 혼신의 힘을 다하고, 부상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감 있게 도전했다. 아울러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항상 고마워하고 팬서비스도 마다하지 않았다. 스포츠 선수에게 가장 가혹하고 절망적인 재활을 이겨낸 후련함, 묵묵히 자신을 믿어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 수고한 자기 자신을 향한 묘한 감정이 뒤섞인 게 바로 그 눈물일 것이다.
머레이는 결국 수술을 받았고, 아마 5개월도 남지 않은 윔블던에서 우승하긴 힘들 것이다. 로즈도 식스맨으로 맹활약 중이지만, 자잘한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올스타전도 나서지 못한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화려한 최정상에 올라서가 아니라,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써 내려간 점이 감동적이라 이들을 응원하기 때문이다. 머레이는 이반 랜들 코치를 영입해 약점으로 꼽히던 멘탈을 개선하고, 끈질긴 수비와 정교한 백핸드를 더욱 다듬었다. 체력 부담, 부상 위험을 핑계로 일부 선수들이 선호하지 않는 데이비스 컵에서도 단복식을 모두 뛰면서 헌신적으로 뛰었다. 로즈는 약점인 3점 슛을 개선하려고 슛폼을 바꾸고 여름 동안 2만 개의 슛을 던져가며 땀을 흘렸다. 그리고 본인의 3점 슛 한 경기 최다 기록(7개)을 쓰고, 리그 정상급 슈터로 변신했다. 머레기니, 퇴물이니 비난은 중요한 게 아니다. 두 선수가 선물한 소중한 추억과 진한 눈물의 의미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내게 영웅이다. 로즈는 농구를 사랑하고, 머레이는 테니스를 사랑하고, 나는 테니스와 농구를 모두 사랑한다. 나도 기쁨, 슬픔의 눈물이 아닌 여러 감정이 뒤섞인 진한 눈물을 흘릴 때까지 진심을 다해 인생을 살아야겠다.
※ 관련 영상 링크
- For the last time: Andy Murray (출처 : Australian Open TV) : https://youtu.be/GAiYCFKGMKg
- Derrick Rose Records A New CAREER HIGH (출처 : NBA) : https://youtu.be/6BgJKC1vAV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