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경기 연속 무패 울산 현대
공격이 강한 팀은 승리하지만, 수비가 강한 팀은 우승한다.
축구계의 명언을 몸소 증명하는 팀이 K리그에 있다. 바로 1골 차 승리로 승점을 끌어모은 가성비, 고효율의 울산 현대다. 2018년 중국 슈퍼리그 우승팀 상하이 상강도 오스카, 엘케손, 헐크 등 슈퍼스타를 모두 투입하고도 0대 1로 졌다. 울산의 다음 제물은 2017, 2018 연속 우승을 달성한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였다. 울산 현대는 지난 10일(수) 울산 문수 축구경기장에서 열린 ACL H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추가시간 터진 극적인 골로 1대 0 승리를 챙겼다. 가와사키의 패스 축구에 밀려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던 울산은 마지막에 웃었다. 84분 교체 투입된 김수안은 김태환의 크로스를 향해 절묘하게 파고들며 상대 골키퍼 정성룡의 허를 찔렀다. 아직 K리그 골도 없는 6년 차 로테이션 선수가 간절함을 담아 팀의 승점 3점을 선물했다.
"잘 가세요, 잘 가세요~♪" 경기가 끝나갈 때쯤 울산 현대 서포터스석에서 들려오는 이 노래는 공포 그 자체다. 탄탄한 울산 수비를 뚫지 못하고 답답한 공격을 이어가다가, 날카로운 역습 한방에 무너진 상대팀은 단순한 1패 이상의 후유증이 남는다. 그리고 울산 승리의 찬가는 2019년 끝나지 않고 있다. 하나 K리그 1 1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 1위, 2019년 공식 경기 10경기 무패(7승 3 무), 홈경기 6연승, 무실점 경기 5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페락전 5골을 제외하면 기록은 더욱 놀랍다. 총 6승 3무 10골 4실점. 6경기 모두 아슬아슬한 한골차 승리였고, 3라운드가 끝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유일한 무실점 팀이다. 압도적인 경기력은 아닐지라도, 실속 있게 패배하지 않는 울산은 분명히 상승세다. K리그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각각 1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는 울산, 잘 되는 팀의 비결은 뭘까?
2012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울산 현대의 닉네임은 '철퇴축구'였다. 아기자기한 패싱 플레이를 펼치는 일본, 압도적인 피지컬을 무기로 교묘하게 상대를 압박하는 중동, 유럽을 호령한 슈퍼스타들이 모인 중국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무패 우승(10승 2무)의 신화를 이룬 울산 현대는 7년 전을 추억하며 다시 아시아 무대에 도전하고 있다. 그때와 같이 '짠물 수비'를 무기로 실속을 챙기면서. 울산 수비의 중심은 '윤영선-불투이스'다. 올해 합류한 장신 센터백 듀오(불투이스 : 192cm, 윤영선 : 185cm)는 훌륭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빠르게 팀에 적응해 호흡을 맞추고 있다. 불투이스, 윤영선은 K리그 6라운드 상주전을 제외하고 9경기에 모두 함께 선발 출전했다. (윤영선 - 경고 3회 누적으로 상주전 결장) 독일(뉘른베르크), 네덜란드(SC헤렌벤)를 경험한 불투이스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준수한 수비력을 갖춰다는 평가다. 성남 일화 시절 외국인 수비수 샤샤와 함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윤영선 역시 투지 넘치는 대인방어와 노련한 커팅이 일품이다.
다른 수비 자원도 역시 큰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국가대표, 해외리그 경험이 많은 김창수 (K리그 252경기 8골 19도움), 박주호 (K리그 21경기 1도움) 등이 있으며,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를 겪어도 폼이 올리며 팀에 보탬이 되고 있다. 이명재 (K리그 92경기 1골 13도움), 정동호 (K리그 95경기 2골 10도움) 등도 어느덧 리그 100경기 가까이 소화하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능력도 강점이다. 빠른 발을 주 무기인 김태환(K리그 264경기 17골 34도움)은 최근 풀백도 소화하며 팀에 보탬이 되고 있다. 다만 윤영선-불투이스 주전 센터백을 백업할 베테랑 강민수가 다소 폼이 떨어졌고, 임종은이 시즌 아웃으로 이탈한 점이 다소 불안요소다. (결승골의 주인공 김수안은 포지션 변경으로 중앙 수비수로 뛸 수도 있다.) 한편 작년 김용대, 조수혁과 번갈아 주전 경쟁을 펼치던 오승훈 역시 주전으로 거듭나 슈퍼세이브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의 아쉬움을 거울삼아서, 부족한 포지션에 대해 우수선수를 보강하고 조직력을 끌어올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 울산 현대 김광국 단장
아쉽게 FA컵 준우승에 그친 울산 현대는 팬들에게 사과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리고 2019년, 약속을 지키며 분노의 영입을 시작했다. 영 플레이어상을 수상한 한승규(전북현대), 리그 베스트 수비수 리차드(계약만료) 등을 떠나보냈지만, 특급 선수들을 대폭 영입하며 전력 누수를 최소화했다. 윤영선(성남일화), 불투이스(SC헤렌벤)으로 수비를 정비하고, FC서울의 중원 자원 신진호, 김성준(FC서울)을 통째로 데려왔다. 국내 공격수 최대어로 손꼽히는 주민규(서울이랜드), 프리미어리거 출신 김보경(가시와 레이솔)도 영입했다. 미래를 생각한 유망주보다 당장 즉시 전력감으로 쓸 수 있는 선수를 대폭 끌어왔고, 이들이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다.
주민규는 베트남 전지훈련 당시 부상을 당했지만, 빠르게 회복해 지난 상주 상무전에서 울산 데뷔골을 결승골로 터뜨렸다. 김보경은 9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하며 2골 2도움으로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K리그 U22룰 대상자 이동경, 박정인은 나란히 선발 출전하며 조금씩 리그 경험치를 쌓고 있다. 특히 이동경은 아챔 PO 데뷔골, U23 대표팀 호주전에서 중요한 동점골을 뽑아내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대구 FC, 경남 FC는 최근 아챔 3라운드 J리그와의 맞대결에서 나란히 패배했다. (경남 FC 2:3 가시마 앤틀러스, 산프레체 히로시마 2 : 0 대구 FC) 최상급 외국인 선수가 돋보이는 시민구단이지만, 최근 빠듯한 리그+아챔 일정에 발이 무거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울산만큼은 김인성, 박용우 등 검증된 선수들이 전술 변화에 맞춰 투입되며 체력을 안배하며 두 대회를 훌륭하게 병행하고 있다.
2012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패 우승의 주역은 4골 6도움을 기록하며 MVP에 오른 이근호였다. (그는 2012 AFC 올해의 선수에도 올랐다.) 특히 간발의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토너먼트에서는 '크랙'(혼자서 경기를 결정지을 수 있는 선수를 칭하는 표현)의 유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무실점으로 버텨준다 하더라도 결국 승리를 이끌어내는 한방이 필요한데, 울산 현대는 임대를 적극 활용해 EPL 출신 중원을 완성했다. 그것도 둘이나. 카디프시티 프리미어리그 승격 멤버 김보경은 전북 현대, 가시와 레이솔을 거쳐 울산 현대로 돌아왔다. "우승하러 왔다!"는 인사말이 허투루가 아니라는 걸 시즌 초반 증명하고 있다. 김보경은 좌측과 중원을 넘나들며 클래스가 다른 볼터치와 패스로 공수의 중심을 잡아준다. 특히 대구, 제주전 2경기 연속골로 최상의 컨디션을 뽐내고 있으며, 유연한 탈압박으로 역습의 수준을 한 차원 높여주고 있다. 중요한 토너먼트에서 반드시 빛날 유형의 선수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울산으로 작년에 임대 합류한 믹스 역시 창의적인 패스로 중원을 지배하고 있다. 여유롭고 안정적으로 볼을 운반하면서,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까지 연결하니 일석이조의 선수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PO 멀티골, FC서울전 선제골 등 알짜배기 골을 터뜨려주는 득점력 있는 미드필더는 보물에 가깝다. 올 7월까지 임대계약이 예정되어 있는데, 울산 현대 프런트는 반드시 계약 연장에 성공해야 한다. (인터뷰를 보면 본인도 울산 생활에 매우 만족해하고 있는 듯하다.) 패스 센스와 동료를 활용한 연계에 능한 두 선수가 함께 있으면 시너지 효과도 매우 폭발적이다. 김인성, 김태환 등 빠른 주력이 무기인 측면 공격수를 활용하는 센스 역시 돋보인다. 최전방 공격수 주니오, 주민규는 이들의 감각적인 패스를 마무리지어야 할 책임이 있다. 아! 그리고 2012년 아챔 무패 우승의 주역 이근호도 복귀 예정이다.
KBS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울산 현대 유니폼을 보는 날이 올 줄이야. 나은이 아빠 박주호 덕분에 시축 장면도 공중파에 등장하고, 귀여운 나은이....... 더 이상 설명은 생략한다. 사진만으로도 흐뭇하다.
어느덧 울산 현대에서 3년 차인 김도훈 감독을 향한 평가는 아직은 미적지근하다. 팀원을 잘 아우르고 동기부여에 능한 덕장 타입이지만, 지난해 FA컵 준우승, 아챔 16강 탈락 등으로 결과가 좋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 압도적인 경기력이나 시원시원한 대승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지만, 적어도 10경기 무패 행진은 인정할만한 결과다. 분명 위기는 찾아올 것이다. 취약 포지션 주전 선수의 부상, 믹스의 임대 만료, 3개 대회를 병행하는 빠듯한 스케줄. 하지만 서서히 김도훈 감독 특유의 축구 철학이 녹아든 울산 현대만의 경기가 '성적'으로 나오고 있다. 분명히 울산 현대는 유력한 리그 우승 후보이고, 7년 만에 제대로 이를 갈고 나온 만큼 아시아 무대의 최강자로 도약할 준비가 되어있다. 다음 상대는 K리그 1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이다. 4연패의 수렁에 빠져 꼴찌로 떨어진 인천 유나이티드지만, 유독 울산에 강했다. (작년, 재작년 모두 상대 전적 1승 1무 1패) 상승세에 오른 울산 현대의 끈적끈적한 고효율, 가성비 축구의 매력을 확인해보자.
티켓 구매 링크 : https://incheonutd.com/2018/ticket/ticket_intro.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