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그 만남은 행인지 불행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불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 <실내화 한켤레>
많은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자의든 타의든, 살아가면서 술을 접하지 않고는 자라기 어려운 게 한국 사회다.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 아니면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부어라 마셔라 소리친다. 대학교에 들어가도, (혹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따위의 단체 여행에서가 먼저일지도.) 회사에 들어가도 환영은 언제나 똑같다. 술을 마시며 다 같이 하나 됨을 외치고, 누가 먼저 나가떨어질지 내기라도 하듯 강권하고 잔을 돌린다. 개인적으로 술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버티고 지내고 있다. 때론 친한 친구들, 가족과의 편한 한두 잔으로 기분 좋은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기분 좋고 편한 분위기에서 오히려 잔뜩 취하는 편이다.) 결국 문제는 '술'이 아니라 '술자리'다.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가 술이 더해지니 가속도가 붙는 것이지, 어쨌든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사람들이다.
삶에서 취소할 수 있는 건 단 한가지도 없다.
지나가는 말이든 무심코 한 행동이든, 일단 튀어나온 이상 돌처럼 단단한 필연이 된다.
- <카메라>
권여선 작가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에도 술 마시는 장면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술을 마시고, 취하며, 후회하고, 그리워한다. 아이를 빼앗기고 술을 마시는 사람, 동창을 만나 학창 시절을 추억하며 섞어 마시는 사람들, 식사 후 커피잔에 소주를 마시는 작가. 다양한 이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 술은 빠질 수 없다. 결국 그들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 때문에 그들은 주정뱅이가 된다. 술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싼 아슬아슬한 위기와 불행들이 그들을 주정뱅이로 만든다. 과연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하지만 실제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실과 이별을 상상해본다면, 나도 어쩌면 '주정뱅이'가 될 수 있겠구나 싶더라. 산다는 게 그만큼 끔찍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엿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소주가 쓴 게 아니라 달 게 느껴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적어도 고독하고 괴로울 때 술의 힘을 아예 빌리지 않겠다고는 다짐할 수 없지만, 함께 술을 마셔줄 누군가가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관계를 맺을 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자기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외롭지 않은 게 아니라 더 외로운 것이며,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상태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외롭다
- 권여선
한편,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답답함, 언제 어딜 가든 마스크를 꼭 써야 하는 강박, 가까운 이들을 맘 편히 보기 힘든 울적함,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겨우 버텨온 집콕 생활의 지루함. 그 질병을 떠올리면 온통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 차오르지만, 억지로라도 긍정적인 면을 끄집어내자면 '회식 자리가 사라졌다는 점'이 유일하다. 위생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장 최악의 문화라 생각되는 '잔 돌리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제가 오늘 감기 기운이 있어서...옮으실까봐..괜..찮..." 불편하게 억지웃음을 짓고, 상사 눈치를 살피며 에둘러 거절할 필요가 없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더러우니깐 그 잔 저리 치우라고 당당히 말할 캐릭터가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그저 최애 프로그램인 <맛있는 녀석들>을 틀어놓고, 사랑하는 가족과 마음 편히 웃으며 맥주 한잔 마실 여유가 생겼으니 '고독'에 매우 만족한다. 타의적으로 버림받은 상태에서 빚어지는 '외로움'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혼자 있고 싶고, 그 고요한 상태를 즐기는 '고독'의 단계니 말이다. 이런 고독이라며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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