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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May 08. 2020

발리 장인 이동국의 해탈 이야기

[도서]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 이동국


이동국은 어떻게든 골을 넣은 스트라이커다. (출처 : spotv)

제로톱, 펄스 나인(False 9, 가짜 공격수) 등 최근 축구 트렌드에서 정통 공격수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점유율 중심의 축구가 유행하며 짧은 패스와 활발한 스위칭 플레이로 공격 기회를 만드는 미드필더가 최전방에 서곤 한다. 티키타카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제패한 스페인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2011 아시안컵에서 득점왕 구자철을 배출한 한국 역시 재미를 봤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스트라이커'란 포지션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다. 스트라이커의 임무는 골을 넣는 것이다. 강력한 몸싸움으로 수비수를 벗겨내 헤딩으로 골을 넣든, 탁월한 위치 선정으로 간결한 골을 넣든. 결국 득점에 성공해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스트라이커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선 상대의 집요한 견제를 이겨낼 탄탄하고 강력한 신체 조건과 단 한 번의 기회를 골로 연결할 득점 감각이 꼭 필요하다.


손흥민은 측면 공격수나 처진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폭발적인 드리블 돌파, 과감한 중거리 슈팅으로 상대를 파괴하는 크랙 유형이다. 김신욱은 발밑 기술도 겸비한 선수로 압도적인 키를 활용해 제공권을 장악하는 타겟맨 유형이다. 하지만 이들은 내가 상상했던 스트라이커와는 다른 성향의 공격수였다. 엄청난 욕을 먹지만 결국 1골로 비난을 환호로 바꾸는 선수. 최전방에서 우직하게 몸싸움을 펼치면 중요한 순간에 침착하게 골을 만들어낼 줄 아는 선수. 그런 정통 스트라이커에 부합하는 선수는 라이온 킹 이동국이었다. (실력의 우위가 아니라, 스타일의 차이를 말한다.) 그는 항상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골을 넣었다. 막내 이동국은 암울한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통쾌한 중거리 슈팅을 날리며 희망의 빛이 되었다. 그리고 2년 후 붕대를 칭칭 감고 진통제를 맞아가면서도 기어이 6골로 아시안컵 득점왕에 오르며 한국의 자존심을 지켰다. 안정환, 고종수와 K리그 트로이카를 결성하며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며 전성기를 누렸다. U-23 경기 31경기 22골이란 압도적인 기록도 이어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풋풋한 청소년대표 시절 이동국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란 자서전 제목처럼 이동국의 빛보다는 그림자에 더 많은 비중이 실려 있었다. 유난히 시련이 많았던 축구선수 이동국, 인간 이동국의 담담한 회상이 담겨 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엔트리 탈락, 2006년 무릎 십자인대 파열, 2010년 16강 우루과이전 통한의 마지막 슈팅. 최고의 찬사를 받지만 언제나 가장 외롭고 욕을 한 몸에 받는 자리에서 그는 꿋꿋이 20년 넘게 버티고 있다. 게으른 천재, 똥볼 제조기, 국내용이란 온갖 비난에도 그는 주변의 편견에 흔들리지 않았다. 겹쌍둥이 아빠 이동국은 가족의 힘으로 자신만의 축구를 계속했다. 그리고 전북 현대 입단 이후 최강희 감독을 만나 그 꽃을 피웠다. 프리미어리그 실패 이후 성남에서도 제대로 된 활약을 못 했던 이동국은 전북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네가 먼저 손을 들지 않는 이상 선발에서 빼지 않겠다.
10경기에서 골을 못 넣어도 널 믿겠다.
 최근 2년 동안 잃은 자신감만 회복하면 넌 잘할 수 있을 거다.  
- 최강희 감독


자신을 전적으로 믿는 감독 밑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그리고 이런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이동국은 10년 넘게 몸에 밴 스타일을 뜯어고치며 완전히 새로운 선수로 태어났다. 2011년엔 무려 15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이타적이고 동료를 더욱 이용할 줄 아는 선수로 변했다. (22골로 득점왕에 오른 2009년엔 도움은 0개였다.) 노련미가 더해지며 상대 수비수의 신경전에 휘말리는 경우도 줄었고, 2선까지 내려와 연계 플레이에도 재미를 붙였다. 자신에게 최적화된 전술에서 결국 돋보이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인데 이동국은 부담감을 이겨내고 동료까지 살려주는 경기 운영에 눈을 떴다. 세계 최정상급인 발리슛의 비결도 동료들의 움직임, 패스 덕분이라며 공을 돌리는 걸 보면 더욱 성숙해진 걸 알 수 있다. 사실 수원 블루윙즈 입단 직전까지 왔다는 비화에 아쉬움이 무척 남지만, 사실 전북만큼 궁합이 잘 맞는 팀은 없다고 확신한다.


최강희 감독을 만나 제2의 전성기를 누린 이동국 (사진 출처 : 전북 현대 홈페이지)

수줍음 많았던 까까머리 고등학교 시절부터 홍명보의 20번을 이어받은 포항 스틸러스, 재충전의 시기가 되었던 광주 상무, 아쉬움만 남은 해외리그 진출까지. 우여곡절이 가득한 그의 축구 인생만큼 인간 이동국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7년 동안 묵묵히 기다려준 아내, 한날한시에 태어났지만 잘하는 것도, 성격도 딴판인 재시와 재아 등 가족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어린 시절, 가족 이야기, 시련, 전성기 등 평이로운 구성이었지만 읽는 재미가 쏠쏠했고 묘하게 포항 레전드 황선홍과도 닮은 점이 많았다. 가장 고독하고 욕을 한 몸에 받는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어가서 그럴까? 황선홍의 2002년 4강 신화처럼 이동국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기대하지만 시기상조다. 그는 2020년에도 여전히 현역이고 리그 최초 80 득점-80 도움 클럽을 준비하고 있다. (리그 통산 224 득점, 77 도움)


사실 운동선수에게 시련은 백이면 백 마주하는 벽이다.  하지만 황선홍, 박지성, 이동국처럼 그런 시련을 이겨내고 성공으로 결실을 본 선수가 드물기에 더욱 빛나는 법이다. 많은 이들이 이동국을 비난한다 하더라도 그는 한국 축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훌륭한 선수다. 조급함을 버리고 여유를 찾으며 더욱 일이 잘 풀리는 그를 보며 많은 걸 배웠다. 순간순간 간절하게 목표를 향해 뛰면서도, 스스로 여유를 찾고 쉬어갈 줄 알아야 한다는 건 비단 축구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실패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처음부터 착실하게 준비하면 되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동국이 맞이한 제2의 전성기처럼 최고의 자리에서 웃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리그에선 얄미운 적이지만) 대한민국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스트라이커 이동국을 응원한다.


2020 K리그 최고령은 역시 이동국이다. 만 41세의 유망주 스트라이커 (사진 출처 : 전북 현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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