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K리그1
2019년 FA컵 챔피언 수원 블루윙즈의 2020년 8월 18일 현재 순위는 11위다. 이임생 감독이 사퇴했고, 주승진 감독대행이 과감한 변화를 택했지만 FA컵은 탈락했고, 리그 5경기에선 고작 1승이 전부다. 승리가 없었던 최하위 인천이 첫 승을 거뒀고, 승점 차이는 고작 6점이다. 상주 상무의 자동 강등, 인천 유나이티드의 부진으로 부담이 없었던 시기는 지났다. 17라운드 인천과의 맞대결에서 자칫 패하고 분위기 반전에 실패한다면 '축구수도'라 자부하는 수원의 강등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물론 6위 FC서울(19점)과의 승점차를 따라잡고 파이널 A로 올라서는 것도 무리한 목표는 아니다. 최소한 강등의 부담이 덜한 파이널 A 안착에 성공한다면 과감한 세대교체, 전술 시험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17라운드 인천전 승리와 함께 분위기 반전이 필요하다. 아시아 챔피언을 노리던 수원은 왜 이렇게 흔들릴까?
많은 선수가 아니더라도 필요한 자리에 선수들이 영입됐으면 좋겠다.
주장으로서 계속, 잘 전달될지 모르겠지만 계속 요청할 생각이 있다
- 염기훈 FA컵 우승 인터뷰
주요 영입 현황
IN 데얀, 바그닝요, 홍철, 구자룡, 신세계
OUT 헨리, 크르피치, 명준재, 이용혁
작년 극적인 FA컵 우승 이후 주장 염기훈의 바람은 그저 바람에 그쳤다. 지난해 통한의 준우승 이후 이청용, 조현우, 정승현 등을 폭풍 영입한 울산. 공격력 부재를 만회할 수준급 외국인 선수 구스타보, 바로우로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전북. 하지만 수원은 구자룡, 신세계, 유일한 국가대표 홍철까지 떠나보냈지만 별다른 영입이 없었다. 그저 '김민우의 재계약, 김건희의 전역, 김준형의 임대 복귀'가 새로운 영입과도 같았다. 심지어 22일 여름 이적 시장이 마감되었을 때도 수원의 영입 소식은 매탄고 유스 선수(정상빈, 손호준)의 콜업이 끝이었다. 사실상 즉시 전력이 아닌 미래를 위한 유망주 준프로 계약은 환영받을 일이지만, 강등권에 있는 팀에게는 아쉬운 전력 보강이었다. 감독 교체를 단행한 최하위 인천도 급하게 오반석, 아길라르를 영입하고, FC서울이 기성용을 데려오며 분위기를 바꾸려고 시도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행보였다. (성남 임선영 트레이드는 결국 이임생 사임과 맞물려 엎어졌다.) 현실적으로 상주 전역 선수 중 FA 자격인 한석종을 제외하면, 새로 영입할 선수는 없다. 기존 주전들이 부상으로 여럿 빠지고, 어린 선수들이 출전 경험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수원은 한 경기 한 경기가 단두대 매치다.
프로 2년 차를 맞이해 주전으로 급성장한 박상혁, 주승진 감독대행 체제 이후 수비형 미드필더로 중용받는 이상민, 최전방에서 적극적인 압박과 과감한 슈팅을 선보이는 한석희. 연이은 위기에도 수원은 새로운 선수의 활약으로 조금이나마 희망을 봤다. 하지만 별다른 영입 없이 완성된 수원의 얇은 스쿼드는 거듭 체력 부족을 노출하며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반전만 놓고 보면 5승 10무 1패로 상위권에 위치한 수원은 풀타임 기준으로 3승 5무 8패다. 아쉽게도 축구는 90분 경기다. 그중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중원 싸움을 펼치는 고승범, 박상혁의 고군분투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작년 30경기나 뛴 주전 최성근이 부상으로 전력 이탈한 이후 두 선수는 쉴 틈이 없다. 특히 고승범은 전북전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기 전까지 15경기 연속 풀타임, 무려 1498분을 뛰었다. 전반부터 강하게 상대를 전방에서 압박하고, 빠르게 역습을 전개하는 두 선수가 지치거나, 빠지면 경기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경기를 잘 리드하다가도 후반 막판 집중력 저하로 무너지는 게 수원의 고질병이 되었다. 플랜 B가 부족한 현 상황에서 FA컵 탈락,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연기, 정규리그 단축 운영은 차라리 수원에게 유리할 지경이다.
공격과 수비. 수원에 가장 시급한 것을 뽑자면 단연 공격이다. 주승진 감독대행 부임 이후 3백에서 4백으로 수비 라인을 가다듬은 이후에는 그나마 안정적으로 실점을 줄여가고 있다. 그리고 새로 영입한 센터백 헨리가 빠르게 팀에 적응해 한숨 돌렸다. 강한 몸싸움, 적극적인 전진 수비, 롱패스까지 선보이며 수비를 이끄는 헨리의 유무는 극명했다. 득점 1위 주니오를 꽁꽁 묶은 울산을 상대로는 무실점에 성공했지만, 올 시즌 유일하게 부상으로 헨리가 빠진 전북전에는 3실점하며 무너졌다. 지난해 득점왕 타가트는 시즌 초반 태업 논란까지 불거지며, 예전 같은 골 결정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부진을 이겨내고 어느덧 5골을 터뜨렸지만, 여러 차례 완벽한 일대일 찬스를 놓치는 등 아쉬운 장면이 많다. 컨디션 난조에 빠진 타가트를 대신해 김건희, 크르피치도 경기에 나서고 있지만 결정적 한방이 부족한 상황이다. 최하위 인천(9골), 짠물 수비의 성남(13골)에 이어 리그 최소 득점(14골)을 기록하는 수원은 답답한 공격력 개선이 시급하다. 리그 6위에 해당하는 경기당 슈팅 11개를 시도하면서도, 공격포인트 TOP 10에 수원 소속 선수가 한 명도 없는 건 반성이 필요하다. 역습 전개 상황에서 이렇다 할 약속된 플레이가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세트피스에서 강점을 보이지도 못하고 있다. 염기훈, 김민우의 프리킥도 침묵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프리킥 득점은 고승범의 무회전 골이 전부였다.
내용에 충실하다 보면 결과는 따라온다고 확신한다.
- 주승진 감독대행
조금씩 개선되는 경기력도 중요하지만, '강등'이 걸려있다면 무조건 결과가 최우선이다. 수비 지향적으로 걸어 잠그거나, 시원한 대승이 아닌 1골 차 꾸역승이라도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전통의 강호 전남, 제주 등도 치열하게 싸우는 혼돈의 K리그 2 강등은 곧 암흑기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압도적인 투자로 국가대표가 즐비한 수원의 황금기는 어느덧 10년도 넘었다. 마지막 리그 우승을 경험한 선수는 양상민이 유일하고, 37세 주장 염기훈은 여전히 최선을 다해 풀타임을 소화하고 있다. 팀의 절반 이상이 어린 선수들이고, 매탄고 출신의 유스 선수들이 대거 주전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구단의 지원이 줄어들었다고, 팬들의 응원이 줄어들진 않았다. 예전 같지 않다며 대책 없는 패배의식에 빠져있기보다는, 위기를 기회로 생각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한정된 예산에서도 효율적인 선수 영입에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유스 시스템과 연계해 주전급 선수로의 빠른 성장을 도와야만 한다. 울산, 전북을 제외하면 과감한 투자에 나서는 팀들은 흔치 않고, 구단 자생력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25주년 기념 유니폼에는 1995년 창단 이후 국내외 23개 대회를 우승한 자부심이 담겨있다. 기념 셔츠의 황금빛 마킹이 그저 디자인 요소가 아닌 부활하는 수원의 미래가 되길 바란다.
위기에 빠진 수원은 이적료 없이 데려올 수 있는 FA 대어를 낚았다. 8월 말 제대한 미드필더 한석종을 영입하며 부족했던 중원 자원을 한층 강화했다. 고승범, 이상민, 박상혁 등 어린 선수들이 고군분투했던 중원 싸움에 큰 힘이 되었다. 특히 매경기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며 헨리가 이끄는 포백과 어우러져 수비 안정화에 기여했다. 타가트는 중요한 인천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본격적으로 작년 득점왕의 결정력을 선보이며 팀의 파이널 A 진출을 이끌었다. 최소한 강등의 부담을 덜은 신입 외국인 감독은 김건희, 한석희, 박대원 등 어린 선수를 적극 활용하며 내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한편 후반 조커로 출전한 염기훈은 위기의 순간마다 결정적인 프리킥 골을 터뜨렸고, 사상 첫 80골-80도움 대기록을 달성했다. 최악은 피했지만, 최고는 아니었던 2020 시즌. 수원의 본격적인 도약은 내년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