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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Feb 27. 2020

팬하~! 제가 만약 K리그 반장이 된다면?

K리그 마스코트 반장선거

옹알옹알옹알 (아직 두 살이라 말을 못 하지만 ‘사랑해’ 라는 뜻) - 리카

살도 빼고 친구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갈비를 하나씩 줄 거다. - 아길레온



지독한 코로나 19의 여파가 결국 K리그도 덮쳤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4일(월) 2020 K리그 개막을 잠정 연기했고, 미디어데이도 취소했다. 따뜻한 봄이 오면 녹색 그라운드에서 펼쳐질 축구를 기다린 팬들에게 비보였다. 하지만 아쉬움을 달랠 흥미로운 콘텐츠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바로 올해 처음 선보인 '2020 K리그 마스코트 반장선거'가 기대 이상의 뜨거운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전국을 강타한 EBS 캐릭터 펭수 열풍에 힘입어, 22개 구단의 야심 찬 마스코트들도 제각기 출사표를 던지며 반장에 도전했다. 꼭 반장이 아니더라도 이번 기회를 통해 친근한 이미지로 팬들에게 다가가려는 여러 구단의 노력이 불붙었다. 사회공헌 활동, 경기장 이벤트로만 소비되던 마스코트가 치열한 선거 유세를 펼치며 K리그 콘텐츠의 희망으로 등장한 것이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하는 첼시 마스코트 스탬포드 라이언(좌), 2020 J리그 마스코트 1위 센터의 주인공은 요코하마 마리노스(우)


마스코트는 다양한 굿즈의 훌륭한 소재며, 각 구단의 스토리텔링에 매우 유용한 요소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팀들은 SNS 시대에 발맞춰 구단 마스코트를 활용해 다양한 마케팅을 펼친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펼치는 첼시의 스탬포드 더 라이언, 메리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전하는 아스날의 거너사우르스. 단순히 아이들이 좋아할 인형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레고, 티셔츠, 카드 등 다양한 콜라보 제품을 내놓고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활발히 활동 중이다. 한편 아이돌 그룹 총선거로 유명한 일본답게 J리그 마스코트 역시 2013년부터 투표를 해오고 있다. 1등에게는 단체 사진에서 센터 특권을 부여하며 올해는 요코하마 마리노스가 이를 차지했다.


완장 차는 맛에 반장하지! (출처 : K리그 SNS)


하나 원큐 K리그 2020 반장 선거는 무려 8만 5,125표를 기록하며 상상 이상의 이슈몰이에 성공했다. 기간은 2월 17일(월)~25일(화)이었고, 매일 1인 1회 3개 마스코트에 투표할 수 있었다. 치열한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중간투표 결과를 매일 공개하다가 개표 이틀 전부터는 실시간 투표 순위도 비공개로 돌렸다. 반장에게는 특별 제작된 '반장 완장'이 주어지고, 올해 K리그를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활동할 계획이다. 사전 경선(?)을 통해 추려진 각 구단 대표 마스코트들은 SNS상으로 적극적인 소통을 이어갔다. K리그 선수들은 물론 연예인 팬들까지 적극적으로 투표 인증샷을 올리며 투표를 독려했고, 여기서라도 1위를 하자는(?) 팬들의 화력전 역시 엎치락뒤치락 거셌다. 대망의 반장, 부반장 당선 소식은 아프리카 TV 개표 방송에서 확인 가능했다.




아길레온 (반장, 1만 7,576표)


K리그 최장수 마스코트 아길레온은 17,576표를 받았다. 한때 레알 수원 시절 김연아, 아이유, 이승기 등 초특급 연예인들과의 이벤트 경력도 있는 만큼 짬을 무시할 수 없었다. 리카와의 엎치락뒤치락 1위 싸움에서 "나는 부반장보다 반장을 더 하고 싶다"는 솔직한 발언은 두터운 팬층의 화력에 불씨를 지폈다. 게다가 1일 1 투표를 외치는 주장 염기훈을 중심으로 김민우, 구대영 등 여러 선수들의 인증샷 릴레이가 이어졌다. 특히 홍철은 반장을 못하면 은퇴하라는 강한 압박을 가하며 동정표까지 이뤄냈다. 선수뿐 아니라 가수 박재정, 아나운서 곽민선 등 다양한 분야의 수원 팬들도 발 벗고 나서 아길레온의 1위를 만들었다. 아내 아길레오나, 아들 레온, 딸 레나를 책임지는 가장에서 리그 전체를 책임질 중책을 맡았다.


리카 (부반장, 1만 6,086표)

2019년 대구FC 돌풍의 중심에는 훌륭한 성적이 있었지만, 그 뒤는 새 구장 대구은행파크, 귀여운 마스코트 리카가 큰 힘을 보탰다. 2002년부터 활약한 빅토가 지원군으로 나선 우리가대구당의 리카는 아슬아슬한 2위(16,086표)를 기록했다. 호떡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두 살이지만 압도적인 귀여움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김재우, 에드가, 세징야 등 여러 선수들이 선거 홍보를 아끼지 않았고, 특히 잘생긴 정승원과의 투샷은 선거 포스터라기보다 화보에 가까웠다. (아직 옹알옹알옹알밖에 못하지만) 이모티콘 출시, 미국 유학, 유튜브 개설, 달리기 대회 개최, 가방 출시를 실질적인 공약으로 내세우며 귀여움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줬다.


유티 (부반장, 4,693표)

'자기가 물범인 줄 아는 두루미' 유티는 반장선거를 앞두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한때 인천 홈경기에서 대전시티즌 서포터를 도발했다가 폭행당했던 구설수를 완전히 지운 모습이었다. (폭행사건으로 인천은 무관중 징계, 대전은 벌금 징계를 받았다.) 새롭게 재탄생한 두루미 유티는 친근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민심 잡기에 나섰다. 게다가 선수단은 물론 인천시 공식 마스코트 버미, 애이니, 꼬미, 등대리까지 지원사격에 힘입어, 조류 마스코트 단일화 없이도 부반장에 당선됐다. 마지막 부반장 자리를 두고 장안장군, 쇠돌이와 치열하게 경쟁했고, 잔망스러운 세리머니와 함께 3위를 차지했다. 수원FC 장안장군의 막판 화력을 잠재우며 수원 패권주의를 막아냈다.



누군가는 고작 자기들만의 리그 마스코트 인기투표에 왜 이리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만 명의 팬들은 직접 회원가입이란 귀찮은 절차를 감수하면서도 1표를 행사하며 충성도를 증명했다. 아울러 색다른 방식의 콘텐츠에 기존 골수 K리그 팬, 라이트 팬, 나아가 아예 K리그를 몰랐던 이들에게 흥미로운 요소가 될 가능성도 선보였다. 어느덧 38년째를 맞이한 K리그에 부족한 건 '스토리'였다. 그리고 마스코트 반장 선거 같은 신선한 시도는 딱딱한 K리그에 큰 변화이자, 진정성 있는 브랜딩이 될 수 있다. 수천, 수억의 돈을 들여 만든 소중한 22개 구단의 마스코트 역시 자산이다. 그저 홈 경기장에서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 인형탈 정도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다양한 업체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강력한 콘텐츠인 것이다. 참치, 달력, 티셔츠, 체크카드, 담요, 세제. 슈퍼스타 펭수의 무궁무진한 콜라보를 부러워만 하지 말고 K리그 대표 캐릭터를 키워내자.



※ 한편, 개인적으로 날강두 초청 같은 쓸데없는 올스타전은 때려치우고, 마스코트 이어달리기를 하는 게 훨씬 재밌을 것 같다. 울산의 건후, 아니 건호가 제일 빠를 것 같은데... 아니면 J리그 마스코트 1위와 여러 가지 대결을 펼쳐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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