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질투인가? 인간의 본성인가?
샤덴프로이데

[도서] 쌤통의 심리학, 리처드 H. 스미스

by 샘바리
우리의 이런 성향을 알고 있으면, 적어도 누군가의 행동을 보자마자 아무 죄책 감 없이 '쌤통이다!'라고 외치기 전에 좀 더 복합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근본적 귀인 오류를 저지르는 우리의 성향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른 사람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종합적인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적 요인과 기질적 요인을 동등하게 놓고 고려한다면 남의 불행에 아무 생각 없이 웃음을 터뜨리거나 미소 짓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jpg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난제 (출처 : KBS 6자 회담)
내가 1억 받고 원수가 100억 받기
vs
그냥 안 받기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난제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선택한 것은 "1억 포기"였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원수가 잘 되는 꼴은 배 아파서 못 보겠다는 것이다. '원수의 원수는 나의 친구'란 말처럼 왜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통해 개인의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악마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질투일까? 아니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일까? 원제 <The Joy of Pain>보다는 <쌤통의 심리학>이 훨씬 더 이 책을 잘 설명하는 제목 같다. 물론 최고의 풀이는 전통적인 한국 속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겠지만. (한국인 아내의 영향인지 실제 이 속담은 책에도 등장한다.) 리처드 H. 스미스는 타인의 고통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뜻하는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즉 ‘쌤통 심리’는 낱낱이 파헤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샤덴프로이데'는 TV 프로그램부터 스포츠, 대선은 물론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대중은 본인과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의 실수와 실패에도 잔인하게도 즐거워한다. 네이버 포탈에는 수많은 사건 사고가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리고, 댓글 혹은 악플로 네티즌은 기사를 재해석, 재생산한다. 미처 내보이지 못하는 은밀한 즐거움은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에게 반사이익을 주기 때문에 생겨나는 인간 본연의 감정이다. 나 자신의 안전함을 자위하고, 시기하던 연예인의 몰락에 속 시원해하며. 차마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없는 본연의 감정을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증명했다. 책을 읽는 독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만하게 말이다.


그루너의 주장에 따르면 승리할 때 느끼는 이런 기분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생존에 확실히 도움이 되었던 진화적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고투 끝에 갑작스런 승리를 얻었을 때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내 손가락이 칼에 베이면 비극, 남이 뚜껑 열린 하수구에 빠져 죽으면 코미디"라는 코미디언 멜 브룩스의 과장된 말이 비상식적인 소리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 <남의 열등함은 나의 자양 강장제>


TheJoyOfPain_OLD.jpg 쌤통을 영어로 번역하기란 참 까다롭다. 미묘한 그 맛을 살리기 어려워서.


책을 읽다 보면 유튜브 영상과 곁들여 보면 좋을만한 에피소드가 무척이나 많다. 오바마의 대선 토론 당시 대처법이나 미성년자 성매매 몰카 쇼, 타이거 우즈의 스캔들 등. 글로는 차마 채워지지 않는 생생함은 짧은 영상만으로도 채워가는 재미가 있다. 특히 스포츠팬인 나는 '샤덴프로이데'에 너무나 익숙하다. 스포츠만큼 이러한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이런 감정이 용인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개인적 경쟁보다 집단 경쟁의 경우 치열하게 경쟁심이 유발되며, 집단이란 옷을 입고 광기를 내뿜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팀의 경기도 아닌데 라이벌 팀이 결승에서 아쉽게 지면 "꼬시다"(사투리긴 하지만 "잘 됐다."란 말보다 이 단어가 더 와 닿는다.)란 감정이 제일 먼저 든다. 그들의 패배가 우리 팀에 전혀 득이 될 게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않는다는 점에선 반사이익이다. 다소 쪼잔해 보일 수 있는 이러한 감정이 누구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인정해야 한다는 게 <쌤통의 심리학>의 주된 논조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정의감과 복수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잘못을 했을 때 우리는 복수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우리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딱' 우리만큼 고통받기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복수의 핵심이다. 우리는 부당하고 불공정한 피해를 당했다고 느낀다. 가끔은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에서 원한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럴 때조차 우리는 부당한 일을 당했다며 억울해한다. 또한 이기적인 동기가 있든 없든 간에 복수심은 정의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거기에는 분노, 증오, 울분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은 악행을 저지른 자에게 집중적으로 향한다. -<원수의 고통은 더 달콤하다>


tenor.gif '샤덴프로이데'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심슨네 (출처 : 심슨가족)

하지만 인간이 이러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혐오, 증오, 분노로 표출되고, 집단화가 된다면 문제가 터져 나온다. 남의 불행을 바라보며 즐거움을 얻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아가 불행을 직접 유발한다는 방식이다. 저자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폭력으로 손꼽히는 반유대주의와 나치즘이 이런 집단적 광기의 표출이라고 분석한다. TV쇼 프로그램이나 스포츠에서는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지만 '나치즘'까지 확장되니 조금 무리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단순히 유대인이 고위 공직을 더 많이 차지했다고, 돈을 더 번다고 해서 인간성을 말살한 채 그들을 학살했다고 단순하게 보기 어렵지 않은가? 물론 분노, 슬픔, 기쁨처럼 질투란 감정도 애써 지나치기보다는 솔직하게 받아들이며 조절하는 게 긍정적이란 말에는 적극 공감한다. 그 감정이 피어나는 것 자체를 틀어막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무력한 일이다.


<아메리칸 아이돌>과 <성범죄자를 잡아라>를 보는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에 비해 자신이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느끼고 그래서 자부심도 높아진다. (중략) "인간 본성에 대한 귀중한 통찰이라도 얻자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시청하는가? 말도 안 된다. 우리가 그 민망한 장면들을 보는 건, 촬영되지 않는 우리의 소소한 삶이 조금이나마 더 낫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남의 망신은 나의 즐거움>


그림1.jpg 2018년 월드컵 독일의 예선 탈락을 고소해하는 영국 언론 (출처 : 더선)


인간이란 쌤통 심리만큼이나 '공감'의 능력 또한 존재한다. 누군가의 행동의 원인을 무조건 그 사람 책임으로 돌리기보다는 침착하고 차분하게 한걸음 물러나서 바라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단순히 성격이 나빠서 소리를 지른다고 단정 짓지 말고, 그에게 닥쳤을 수도 있는 불행한 상황에 주목하는 것이다. <아메리칸 아이돌>까지 안 가더라도 자극적인 편집은 그 이상인 <슈퍼스타 K>나 기타 오디션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의 실수나 모자란 실력을 비웃으며 상대적으로 나은 자신을 바라보고 행복해하는 건 너무나 소모적인 행복 아닌가? 연예인 가십거리나 루머에 시시덕거리는 상대적 우월감은 언제든지 새로운 상대에 의해 부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쌤통의 심리학>은 무겁고 다소 불편한 주제일 수 있지만, 사례 중심으로 무척 재밌고 말랑말랑하게 접근하는 책이다. 비슷한 사례가 다소 반복되고(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은 대체 안 나오는 심리학 책이 있을까?), 조금 더 발전된 알맹이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책을 읽는 동안 나를 돌아보고, 불편한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 그쯤으로도 충분하다.


세상의 공정함을 믿으려다 보면 어떤 불행이 응당한가 아닌가를 공정하게 판단하기 어려워질 수 있고, 이는 편견이라는 전반적인 문제를 일으키며 그 편견은 판단력을 왜곡하여 쌤통 심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사회심리학자 마크 앨리크의 연구가 증명해 보였듯이, 우리는 남들에게 나쁜 일이 생겼을 대 그들이 태만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을 예방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을 괘씸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고통을 더 통쾌하게 여긴다. 우리의 이런 성향을 앨리크는 '결과 편향(outcome bias)'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을 때 마침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는 드러난 사실로는 알 수 없는 고의성을 확신하면서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한다. 쌤통 심리 자체가 이런 과정을 더욱 부추길 수도 있다. 누군가의 고통이 통쾌하게 느껴지면 우리는 그 사람이 비난받을 만한 인간이라고 결론지어버린다. -<원수의 고통은 더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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