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행복의 기원, 서은국
지난 30년간 진행된 행복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누가 왜 행복한가"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인 생각은 틀린 부분이 많다. 이 강의는 최근의 과학적 연구가 밝히는 행복과 관련된 성격, 객관적 조건(돈, 결혼), 문화 등의 요인을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행복을 다시 평가해본다.
-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과학> 강의 소개
최근 '행복'은 강연, 도서, 자기 계발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화두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꿈꾸고, 극소수만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행복하다고 착각하고 있다. 비슷비슷한 행복수업을 듣고 나면 언제나 알맹이가 빠진듯한 인상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꿔라, 남과 비교하지 마라, 행복은 성적순/경제력 순이 아니다.' 모두가 행복해지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그 방법론이 너무나 천편일률적이라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 각자 처한 상황이나 삶의 기준이 모두 다른데, 어쩜 그렇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하나같이 똑같은 걸까? 무기력한 긍정의 힘을 설파하는 것보다 오히려 한걸음 물러나 다른 방식으로 행복을 바라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차라리 과학적으로 여러 요소를 살펴보면서 '행복'이란 모호한 개념을 '모든 것은 생존과 번식의 수단'이라는 시각으로 살펴보는 <행복의 기원>이 최근 가장 와 닿았다.
이성적 사고를 하는 것은 분명 인간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모습도 아니고, 그 역할이 생각만큼 절대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의식만이 우리의 눈에 보이기 때문에 생각이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항상 좌우한다고 착각한다.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행복을 이해하는 데 왜 문제가 되는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 보다 중요한 원인을 못 보게 만들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주술사의 현란한 기우제 춤 때문에 비가 온다고 믿었다. 춤은 눈에 띄지만, 비의 원인은 아니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단비를 행복이라고 하자. 이 비가 언제, 왜 내리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습도나 풍향 같은 자연 요인들을 이해해야 한다. 주술사의 춤이나 기우제 음식 같은 가시적인 것에 현혹돼서는 행복의 본질을 볼 수 없다.
인간의 이성적 사고 대 동물적 본능. 무엇이 진짜 모습일까? 인간은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성의 역할을 상당히 과대평가하고 있다. 역으로 본능의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얼마나 움직이는지는 과소평가하며 산다. - ‘행복은 생각인가’ 중에서 접기
저자는 행복 역시 생존과 번식을 위한 진화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정의한다. 거창한 삶의 목표나 지향점이 아닌데 인간이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며 매달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란 존재다. 인간은 지능이 약간 높을 뿐 타조나 숭어, 여러 동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생명이다. 대중에게 퍼져있는 '행복을 위해'란 대표 명제에 저자는 전적으로 반대하는 다양한 논거를 바탕으로 신선하게 이어간다. 마치 창의성의 존재 이유처럼 인간은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고, 먹고 자고 사랑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에 반기를 들고 다윈의 진화론을 슬쩍 끌어다가 행복감을 새롭게 살펴보는 저자는 개인적 경험보다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다. (본인이 행복을 연구한다고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다고 고백하기도.) 물론 행복을 연구한다고, <행복의 기원>을 읽는다고 곧장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노력하면 된다, 마음을 달리 먹으면 된다!'는 대책 없는 '행복 주술'보다는 왜 행복해야 하는가?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데는 도움이 된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저자의 지도교수 논문에 등장한 단어는 <행복의 기원>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아무리 큰 쾌락이라도 어느샌가 질리고 뻔해지기 마련이며, 이런 감정은 허무함과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복권에 당첨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게 아니라 박스 안 초콜릿처럼 소소한 즐거움에 어느 순간 물들어가는 게 더욱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밖에도 유전적 요인, 그중에서도 외향성이 행복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진화론이란 새로운 안경을 쓰고 보면 인간의 행동이 조금 더 구체적이고 과학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생존 장치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더라도 결국 행복 심리학의 화살표는 사람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각자가 가진 가치와 이상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야만, 사람의 가장 단맛을 서로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책만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행복'이 가진 지나치고 거창한 허울을 벗고 조금 더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은 큰 수확이다. 책 말미에 등장한 사진처럼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서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만큼 소소한 행복은 없다. 그러한 행복을 위해 오늘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나는 대학에서 행복에 대한 강의를 15년째 하고 있다. 매 학기 학생들에게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사건을 적어보라 한다. 독보적인 1위는 복권 당첨이다. 대학생뿐 아니라 많은 일반인도 복권 당첨과 행복을 동일시하지만, 실제로 복권에 당첨된 경우를 보면 이것이 답이 아니다. 왜 그럴까?
우선 감정이라는 것은 어떤 자극에도 지속적인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계속 반응을 해서도 안 된다. 그 이유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어쨌든 이 ‘적응’이라는 강력한 현상 때문에 아무리 감격스러운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의 일부가 되어 희미해진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좌절과 시련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지만, 기쁨도 시간에 의해 퇴색된다. 이런 빠른 적응 과정 때문에 비교적 최근의 일들만이 현재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최근?
이를 알아보기 위해 수년 전 나는 대학생들의 행복감을 2년 동안 추적해보았다. 대학생들이 일상에서 겪는 좋은 일들(새로 생긴 남자 친구, 대학원 입학 등)과 나쁜 일들(결별, F학점 등)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약 3개월이었다. 다시 말해, 작년에 벌어진 이런저런 사건들은 그들이 4월 1일에 느끼는 행복감에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시간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생각보다 빨리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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