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만으로도 아찔해하는 쫄보의 탐험 대리만족

[도서] 살아남은 자들의 용기, 베어 그릴스

by 샘바리
하지만 지금은 내 점심이죠
훌륭한 단백질원이죠.
하지만 맛이 중요한가요, 무조건 열량만 있으면 돼요.
pdDN4H3XKPa7YgzSjFvhRV.jpg 생존왕 베어그릴스가 이걸 놓고 그냥 떠날 리가.... (출처 : 넷플릭스 YOU VS WILD)


악어, 뱀, 전갈, 들개. 평범한 인간이라면 소스라치게 놀랄만한 야생의 포식자. 하지만 베어 그릴스에게는 훌륭한 열량 보충 식사 거리다. 영국 특수부대 SAS 출신으로 '생존왕'으로 불리는 베어 그릴스는 TV 프로그램 <인간과 자연의 대결(Man vs. Wild)>로 유명해졌다. 최근 넷플릭스에 인터랙티브 콘텐츠 <당신과 자연의 대결(You vs Wild)>도 등장했다. 극한의 위기에 빠진 베어그릴스가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움직이는 데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테니깐.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산악, 해저, 사막 등 극한의 공간에서 살아남고 탐험하며 용기와 감동을 주는 그가 쓴 책 역시 그와 꼭 닮았다. <살아남은 자들의 용기>는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25명의 생존자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존하지 못한 케이스도 있다. 이야기의 끝이 죽음이나 실종으로 마무리되는 인물이 있으니 말이다. 특히 남극 도착 경쟁에서 밀려난 이의 도전도 다룬 것을 보면 1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도전하는 그 행동 자체가 숭고하다고 조명한다.


설령 여러분이 우여곡절 끝에 정상에 다다랐더라도 산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괴롭힐 것이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안주하지 말자. 안주하는 순간 죽는 것이다. 마음이 가장 약해진 순간이야말로 최선을 다해야할 때임을 명심하자


127-hours-tlr.jpg 스스로 자기 팔을 자르고 탈출한 랠스턴의 이야기. (출처 : 영화 <127 시간>)


친구들의 살을 먹으며 목숨을 이어간 파라도, 바위에 낀 팔을 스스로 절단하고 살아난 랠스턴(영화 <127 시간>의 실제 모델), 남극 탐험에 기어이 성공한 아문센, 탈레반 총성을 피해 극적으로 탈출한 러트렐. 이들의 이야기는 기상천외하며 활자만으로도 놀랍다. 포기할법한 순간에도 끈기와 정신력으로 기지를 발휘하고, 용기 있게 행동으로 옮겼다. 마치 평범한 인생, 안정적인 삶, 안전한 하루를 꿈꾸는 일반인과는 DNA 자체가 다른 듯 그들은 극한의 순간을 이겨내고도 다시 도전하다. 시련을 이겨내고 쟁취한 용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한 희열이며 그들을 다시 도전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사고로 다리를 잃고도 극한 마라톤에 도전하거나, 겨우 살아났는데 다시 전쟁터로 뛰어드는 것처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삶의 목표처럼 여겨졌다. 어떻게 그런 고문이나 고난 속에서도 침착을 유지할 수 있을지 놀랍기도 하고, 그만큼 철저한 반복 훈련, 연습이 중요하다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게다가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 '실패를 준비하지 않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는 여러 명언의 유래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행복은 시련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시련을 겪고 나서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진정으로 감사하게 된다.
어쩌면 자존감, 즐거움, 평안함, 단순함,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같은 사소해 보이는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일지도 모르겠다.


MV5BMTc4OTcwNjAxNV5BMl5BanBnXkFtZTcwMTA5MDA1Mg@@._V1_.jpg 눈빛만 봐도 든든하다. 따라다니면 살 수 있을 것 같다.


기승전'탐험' 전도사 베어 그릴스의 글은 언제나 '그릿'(Grit)을 강조하면 끝맺는다. 원제가 <True Grit>인 것처럼 25개의 이야기가 일관되게 그릿(한국어로 하면 기개, 모험 정신이 비슷한 단어일 듯)을 강조한다. 때론 이야기의 흐름과 상관없이 마지막에 교훈을 전파하기 위해 명언과 용기, 도전을 거듭 칭송한다. 그러다 보니 다소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전쟁 이야기는 크게 공감이 가지 않기도 했다. 전장에 홀로 남겨져 결국 고난을 이겨내 나치를 무찔렀다는 이야기가 여러 번 등장하니 딱히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스물살'이란 오타로 시작하는 책의 구성 역시 조금은 허술한 인상도 주더라. 그래도 저자가 주는 신뢰감, 일관된 신념은 제법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낙하산 사고로 의가사 제대한 베어 그릴스가 몸이 회복되자마자 2년 만에 세계 최연소 에베레스트 정복을 한 것만 봐도 진정한 탐험가답다. 탐험이라 해봤자 고작 훈련소 행군이나 등산 살짝이 전부인 방구석 탐험가에게는 이런 대리만족도 훌륭한 도전이다.


하지만 전쟁 중에 겪은 이런 비인간적인 일들조차도 종전 뒤에 보여준 다른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보다 평화를 유지하는 게 훨씬 더 힘들 듯, 싸우는 것보다 용서하는 일이야말로 생각보다 많은 요이가 필요하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들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감히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루이스 잠파리니는 해냈다. '용서'는 그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용감한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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