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요약하면 8글자다. '우리가 남이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는 걸 곧 죄악시하는 우리 한국 사회에서 제일 부족한 건 관용의 정신이다. 단체를 강조하고 집단주의 문화가 갖는 장점도 분명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결과만 강조하는 구시대적 유물이다.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면서 예전 사례를 들먹이는 것은 꼰대가 하는 짓이다. 그런 꼰대를 팩트로 폭격하며 유명세를 얻은 판사 문유석의 개인주의 담론집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찌 보면 가장 경직된 조직, 수직적인 문화가 팽배한 법조계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분명 그의 생각에 공감하는 숨은 개인이 많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이타심이 크지도 않고, 인간애가 넘치는 휴머니스트도 아니라며 고백하며 자신의 고민을 담담히 풀어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는 그의 인생 모토는 너무나 공감이 되더라. 다양한 사례를 관통하는 메시지인 '개인주의'는 결코 '이기주의'와 같은 말이 아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이익, 쾌락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이기주의다. 반면 문유석 판사가 꿈꾸는 사회는 어찌 보면 개인의 자유를 논하면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되짚어보는 곳이다. 판관 포청천처럼 대단한 명판결로 사건을 한 번에 해결하진 못하더라도. 억울한 이들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국가가 갖출 최소한의 예의에 대해 고민하는 그는 분명 이기주의가 아닌 합리적 개인주의자다.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 나는 우리 사회 내에서가 아니라 법학 서적 속에서 비로소 그 말의 참된 의미를 배웠다. 그 불온한 단어인 ‘개인주의’야말로 르네상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이 단어의 의미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이후 겨우 한 세대, 아직도 걸음마 단계인 것이다.
- <개인주의자 선언> 중에서
법을 다루는 지위의 사람이 어찌 보면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공정한 사회의 룰을 강조하는 것은 신기했다. 그는 돈 몇 푼에 사람을 쉽게 죽이고, 욕심에 사로잡혀 사기를 치고, 국가적 재난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자들과 시스템의 붕괴를 일반인보다 훨씬 낱낱이 지켜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공정한 사회와 따뜻한 인간을 믿는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이 대단하게 다가왔다. 나라면 금세 나약한 인간에 환멸을 느끼고,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에 불만을 갖고 욕하면서도 순응하고 말 텐데 말이다. 반면 저자는 더 나은 공동체, 그 속에 행복을 찾는 따뜻한 인간을 찾으려 애쓴다. 진짜 문제는 본인이 따뜻한 멘토라 생각하고 결과주의, 단체주의란 허울 아래 폭력을 일삼으면서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문제적 인간들이다. 본인이 경험한 세계가 유일무이한 곳이라는 오만한 마음가짐으로 빚어진 전체는 한순간에 부서질 수 있는데 말이다.
분명 피곤하고 괴롭고 외로운 시대다. 학교, 직장, 사회, 결혼, 육아, 거주, 살림살이. 뭐 하나 여유 있고 더 나아졌다고 확실히 말하기 미안한 게 '헬조선'이다. 타인에게 양보하고 존중하는 것은 패자의 변명이고, 모조리 가로채야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자신이 정글 같은 세계에서 왕으로 군림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합리적이고 환영할만한 논리겠지만, 절대다수는 남은 조각을 가지고 다시 싸워야 할 운명이다. 나는 1등으로 살아남을 자신도, 그러고 싶은 욕심도 없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묵묵히 일하고 열심히 참고 이겨낼 뿐이다.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를 항상 명심하고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며 최대한의 행복을 끌어내고 싶다. 이런 마음가짐의 변화만으로도 조금씩은 공동체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원래 행복의 원천이어야 할 인간관계가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그 관계의 속성 때문에 오히려 불행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맛있는 음식도 내가 원치 않을 때 강제로 먹으면 배탈이 나듯, 타인과의 관계가 나의 선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사와 관계없이 강요되고, 의무와 복종의 위계로 짜이는데 이것이 행복의 원천이 될 리 없다. 갑을관계, 경쟁관계, 상명하복 관계, 나를 평가하고 지배하는 관계, 내가 일방적으로 순종하고 모셔야 하는 관계에 있는 인간들이 과연 나에게 유용한 생존의 도구이기는 할까? 생존의 위협에 가깝지 않을까? - <개인주의자 선언> 중에서
나가노 데쓰오. 재일 한국인 2세 최초로 도쿄 대학 정교수에 오른 강상중 역시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에 빗댄 조언을 건넨다. "일이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자 나다움의 표현이다." 단순히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을 이겨내 취업에 성공하는 것이 모두인 세상은 이미 지나갔다. 그저 생계 수단이 아니라 내 삶의 방식을 만드는 어떤 것으로 일을 받아들여야 더욱 발전하고 오래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 다양한 관점을 가지라는 조언이었다. 하나의 영역에 100% 맡기고 운이 따르지 않아 전부를 잃기보다, 리스크 해지를 투자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플랜 B, 대안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하면서 항상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배우고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부자연스럽고 거창하게 자아실현을 이뤄내 회사에서 성공하겠다는 다짐보다는 조금 더 자연스러울 필요가 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고 스트레스받지 않는 게 제일인 시대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없는 이상 일을 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피곤함을 이겨내고 월요일마다 출근길에 올라야 할 것이다. 한때는 사무실의 나와 일상의 나를 완전히 별개라고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회사에서 너무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고, 두 개의 자아를 갖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뽑아 들고, 5년째 버티고 있지만 아직 당첨 복권이란 확신이 없다. 아무리 회사가 굳건하게 잘 버티고 승승장구한다 해도 퇴직 후 남은 인생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회사에서 뽑아먹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영리하게 뽑아내며, 나의 앞가림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시야를 넓히자. 또한 다양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걸 도전해봐야 한다. 기업에 들어와서 유리한 점은 어찌 보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받는 게 아니라(주지도 않지만!), 본받을만한 인사이트를 지닌 여러 사람을 만나고, 성장을 위한 여러 제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써먹기 위해 조금은 더 욕심내고, 자신 있게 나서며 진정한 '나다움'을 표현해봐야겠다.
이것이 역경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일에 정진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고 '나다운' 인생을 누리기 위한 제 나름의 작은 시나리오입니다. 부자연스러운 자아실현 따위에 신경을 갉아 먹히는 일 없이 좋은 모습으로 일을 지속하기 위한 마음가짐이 바로 자연스러움입니다. 이 마음가짐을 의식하면서 각자 나름대로 자신이 처한 곳에서 노력하기, 이것이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일하는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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