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백 Jan 13. 2021

거울을 봤는데 아빠가 있다

내가 늙은 만큼 아빠도 늙었을 때


난 어딜 가나 엄마랑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릴 때 학교를 찾은 엄마를 본 선생님들은 단박에 누구 엄마인 줄 알아챌 정도였다.


얼마 전 일이었다. 화장실에서 무심코 거울을 봤는데

묘할 정도로 아빠랑 똑같이 생긴 아줌마가 칫솔질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내가 웃을 때마다 장인어른이 보인대서 놀려먹는 줄 알았건만.

시험 삼아 거울 앞에서 웃어 보니 바보같이 일그러지는 게 아빠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아빠 얼굴 아닌가.


아빠와 닮은 나를 마주하자 복잡한 감정이 든다.

아니, ‘아빠와 닮게 늙어가는 나’가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아빠와 나는 친했던 적이 없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 집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각자 살았다. 며칠 동안 대화를 전혀 나누지 않아도 딱히 이상할 게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주임 교사인 아빠와 같은 학교 학생인 딸이 친해지는 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내가 처음으로 교복 스커트를 짧게 줄여 입은 날, 아빠는 학주로서 우리 교실에 찾아와 나를 포함한 교복 줄인 급우들을 단체로 두들겨 팼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안 마주치는 게 상책이었다.


아빠는 어린 시절의 내가 느끼기에도 인생의 이런저런 큰 일들을 그르쳤고, 결국 엄마와 헤어져 다른 인생을 살았다. 닮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어느새 딸은 아빠만큼 나이가 들고,

아빠는 흰머리 가득한 어르신이 되었다.

멀기만 했던, 미울 때가 많았던 무서운 존재가

사위 앞에서 마냥 신난 얼굴로 공공근로 일(은퇴한 노인들이 도로변에서 잡초 뽑는 작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에 대해 자랑을 한다. 작업자들 중에서 자기가 제일 젊고 빠르다는 점을 빼먹지 않는다.


담담하다. 아빠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게 보이는 내 모습이.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역시 그렇다.

나이 든 어르신은 왠지 미워할 수가 없다.


결국 나는

멀고 먼 길을 돌아 여기로 온 거구나.

아빠 얼굴로.


나이드니 효녀가 보기 좋더라는 그런 제대로 된 소리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작가의 이전글 새벽은 길고 떠오르는 개새*는 많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