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결혼식이 있을까
내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결혼 준비하면서 안 싸워???!!"
실제로 준비하면서 싸우는 건 기본이고 결혼식을 미룬 지인들까지 있었다. 우리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 조금의 다툼도 없었다. 생각이 그나마 달랐던 건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결혼식 전부터 전세계약 문제로 집을 먼저 얻었고 미리 함께 살고 있던 터라 결혼식을 그냥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그래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나는 정말 하나하나 알아보고 준비하는 그 과정들이 무거운 짐덩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부모님께 조촐하게 가족끼리........라고 얘길 꺼내는 순간 한마디만 더해보라는 그 표정에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 준비를 하고 있던 회사 선배와 결혼 준비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예물 문제로 서로 감정 상했던 일을 들었다. 선배 쪽에서 시계를 해줬는데 신랑 쪽에서는 그에 비해 너무나 소박한 예물이 왔다는 것. 어느 정도 적정선의 가격에 맞춰서 돌아오기 마련인데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내가 하는 결혼과 선배가 하는 결혼은 뭔가 다른 세계에서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결혼 준비로 싸우는 이유를 들어 보면 대충 이렇다.
-결혼 날짜가 양가에서 원하는 날이 다른 경우(어디서 보통 날짜를 받아 온다고 한다)
-드레스나 메이크업에 왜 그렇게 큰돈을 쓰는지 이해 못하는 남편과 그래도 결혼식날 만큼은 세젤예를 꿈꾸는 신부
-식장 투어에서 서로 원하는 식장과 시간이 다르다.(보증인원, 식사, 식장 분위기 등등)
-스튜디오 촬영에 한껏 기대가 부푼 신부와는 다르게 신랑 아무 생각도 없고 표정 변화도 없다.
-예물. 예단. 혼수..(서로의 기대와 어긋나서)
이밖에도 결정해야 하는 게 너무나 많고 양가를 모두 만족시키기 란 쉽지 않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을 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결혼식은 준비해야 할게 너무 많았다. 무지함이 어쩔 때는 근거 없는 용기가 치솟기도 한다. 우리는 몰라서 안 한 것도 있고 왜 필요한지 몰라서 생략한 것도 많았다. 예물, 혼수, 폐백, 주례, 프러포즈 반지? 의례적으로 해야 하거나,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해야 할 것들도 빼버리기로 했다.
우리가 결혼 준비를 하면서 싸우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 우리가 결정했다. 부모님 의사는 참고 정도만 하고 우리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은 없었다. 어차피 부모님 원하는 대로 해도 좋은 소리 못 듣는다. 그래서 조금 이기적인 결혼식을 진행했다. 남편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는 맞았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결혼식은 우리에겐 그저 신혼여행을 가기 위한 절차였고 대충 빨리 문제없이 끝내고 싶었다. 그래도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외치며 대충 끝내기에는 수많은 선택사항들이 있었다.
ㆍ결혼식 날짜- 그냥 서로 2주의 시간을 빼기 좋은
날이면서 성수기를 피한 날
ㆍ식장- 최소 보증인원에 식당이 넓고 밥이 맛있는
곳
ㆍ드레스 메이크업- 우린 차가 없었기 때문에 걸어
서 10분 거리 샵
ㆍ스튜디오- 차도 없고 사진도 결혼식날 원 없이 찍
을 테니 패쓰
ㆍ예물 ㅡ어디에 쓰는 거죠?
ㆍ예단 ㅡ 먹는 건가요?
ㆍ결혼반지 ㅡ18k 커플링으로 퉁
스튜디오 사진을 건너뛸 때 주변에서는 추억이다, 남는 건 사진이다,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지금 수년이 흐른 지금도 본식 앨범의 행방을 그 누구도 모른다.(여전히 찾고 있다... 제보 바랍니다) 오히려 지인들이 찍어준 영상과 사진을 많이 보게 된다. 우리는 자신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폐백은 진심으로 귀찮았다. 나도 볼에 연지곤지 찍고 대추나 밤을 치마폭으로 받아 보는 경험을 해봐도 좋겠단 생각은 했지만 축하하러 온 지인들이 가기 전에 얼굴 한 번씩 보고 싶었다. 우리의 체력은 거기까지만 허락할 것을 알기에 만장일치로 생략했다.
예물과 예단은 사실 부모님께서 더 신경을 쓰시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가 만족스러운지, 괜히 소홀하단 소리 듣고 내 자식 미움받지 않을까... 그래서 생략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눈치 없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부여잡는 모습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이지만 배고픈 하객들에겐 그저 교장선생님 훈화와 같은 주례는 생략하고 부부 글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나의 성혼선언문으로 대신했다.
그래도 나름 신경 쓴 것도 있었다.(다 생략한 건 아니라고욧!) 양가 부모님 한복을 서로 눈치작전을 펼치며 마음에 드는 것을 조심스럽게 고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똑같이 맞추지 않았고 입고 싶은 스타일로 편하게 입기로 했다. 정말 취향이 너무 달라서 같은 디자인으로 골랐으면 누구 하나 단단히 토라졌을 것이다. 개성 강한 민트색 한복과 화려한 자주색으로 멋지게 입장하셨다.
우리가 가장 신경을 썼던 건 아마 식에 사용되는 모든 음악을 우리가 직접 선택했다는 것이다. 신부 입장에는 나의 최애 음악, 신랑 입장에는 남편 최애 음악, 행진곡에는 우리가 즐겨 듣던 음악으로 결혼식을 가득 채웠다.
식이 끝나도 우리는 끝난 게 아니었다. 축의금 정산!
축의금 정산을 하고 난 뒤.. 스몰웨딩 의견에 분노하셨던 부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고 이름 하나하나를 보며 친한지인들의 편지와 간단한 문구들에 왠지 모르게 뭉클했다.
결혼식 전후로 인간관계가 많이 정리된다는데.. 이건 솔직히 나는 아닐 줄 알았지만 반박 불가다. 보증인원을 최소로 잡았고 청첩장도 많이 찍지 않아서 드려도 되나... 애매한 사람들은 그냥 제외했고 친한 지인들에게만 돌렸다.(나름 미들 웨딩 정도...)그래서 결혼식에 못 온 사람들은 미리 알고 있어서 안 볼사람이 되거나 실망스럽진 않았다. 다만 청첩장을 못 전한 사람들이 와주어서 미안했고 우리 사이가 이 정도로 가까웠나 싶을 만큼의 의외의 액수에 심장이 나댔다. 나도 모르고 있던 우정을 재 확인하고 내 안의 속물을 발견했던 시간이었다.(우리 우정 뽀레버)
무조건 조금의 친분이 있어도 다 돌리는 게 예의라고 했지만 나는 괜한 기대를 할 것 같은 쿨하지 못한 마음에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더 죄송한 분들이 많아 전화와 문자로 하나하나 감사 연락을 드렸다.(양심이 있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식이 끝나고 받아본 사진들에는 입을 다문 사진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결혼식 귀찮다며.. 생략하고 싶다며...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한 것뿐이다) 우리 엄마는 입장하면서 부터 울면서 시작하셨고, 신나는 축가에도 오열을 하셨다. 가장 친한 친구 어머니도 한쪽 구석에서 우시고, 축가 부르는 친구도 울어서 어디 염소 한 마리가 마이크를 잡은 줄 알았다. 내가 결혼하는데 다들 이렇게 감격스러워해 주다니...
엄마는 웃는 사진이 없고.. 나는 안 웃는 사진이 없이 결혼식이 마무리됐다.
선배와 나의 결혼식은 많이 달랐다. 결혼의 정석이 있다면 선배는 아마 모든 것을 빼놓지 않고 준비했을 것이다. 예식만 봤을 때는 완벽해 보였다. 화려하고 멋들어진 결혼식이었다. 선배도 후회 없는 하루였을 거란 기대와 달리 자세히 들어보니, 그 하루 단몇시간을 위해 어마어마한 비용과 더불어 감정싸움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그건 정말 의외였다. 양쪽 모두가 기대하는 게 컷기때문에 서로 양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고한다.
우리는 우리만 기억하는 결혼식이었다. 아무도 관심 없는 부분에 많은 정성을 쏟아부었다. 결혼식을 많이 다니면서 나는 그날 신부가 어떤 드레스를 입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주례 내용도 모른다. 오로지 밥이 맛있었는지로 기억해낸다.(거기 갈비찜 맛있던데 맞지??) 알아듣는 남편도 나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크게 신경 안 쓰는 부분들은 우리만의 의견으로 정하고 주차장이나 식당 규모, 음식들은 기다리거나 자리가 부족하지 않도록 신경 썼다. 그럼에도 어른들의 뒷얘긴 들려왔지만 대답봇이 되어 듣고 흘렸다.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결혼식 준비는 크게 달라진다. 비용도 천차만별! 우리는 함께 살면서 월급도 합쳐졌기 때문에 주고받는 건 덕담 빼고는 낭비였다. 나의 결혼식은 우리에게만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관점이 다르면 무슨 짜장면 배달도 아니고 그렇게 빠르고 신속하기 힘들 것이다.
결혼식은 누군가에게는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될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날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신혼여행을 가기 위한 하나의 코스가 될 수도 있다. 뭣이 중요하든 한두 시간을 위해 그렇게 박 터지게 싸울 이유도 없고 결혼을 뒤집어엎을 이유도 없었다. 과연 완벽한 결혼식이라는 게 있을까? 앞으로 서로가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을 축하받는 자리인 건 맞는데 그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지나고 보면 우리는 별거 없었는데도 더 별것도 아닌 것 같았고, 생략할 건 했는데도 불필요했던 게 많았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게 결혼식이다. 왜냐면 우리는 단 한 번이라는 단어와 물릴 수 없다는 것에 더욱 완벽을 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혼식의 다양한 이유들로 함께 살아보기도 전에 너무 많은 힘이 빠진다.
모두에게 완벽한 결혼식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우리처럼 비루하고 허점 투성일지라도 당사자는 아주 흡족하고, 모든 것을 갖춘듯한 완벽한 결혼식도 막상 지나고 보면 큰 의미가 없기도 하다. 결혼식을 순조롭게 해야만 잘 사는 거라면 이혼이 흠이 아닌 시대가 오진 않았을 것이다. 조금의 실수나, 허점이 있어도 괜찮다.(진짜 아무도 모른다, 나 혼자 앎) 그날은 신랑과 신부가 함께 새 출발 하는 첫날이다. 그 이상의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잘만 살면 그것이야 말로 완벽의 마지막 퍼즐이 완성되는 게 아닐까 싶다.
진짜.. 부질없더라고요
지금도 본식 앨범 찾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