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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쟌 Oct 14. 2020

남편은 모르는 아내의 하루

이제부터 알게 해 주지..


남편과 결혼을 하고 일 년 정도는 맞벌이였다. 그래서 집안일도 동등하게는 아니지만 최대한 남편에게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남편은 집안일이 청소기 돌리는 것과 바닥을 닦는 정도로만 알기 때문에 그 두 개를 하고 나면 온 집안일을 다해놓은 것 마냥 뿌듯해했다. 그때까진 조금만 도와주면 집안일도 함께 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내가 퇴사를 하고 자격증 준비를 하면서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되었다. 아무리 공부를 오랜 시간 해도 남편보다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었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습관은 엄마의 영향도 컸다. 엄마는 이 모든 걸 자식 둘을 키우면서도 척척 해냈다.


"왜 엄마만 이렇게 종일 청소를 해??"

"아무도 자기 일이라고 생각을 안 하니까. 누군가는 해야 해. 왜냐면 일 마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집이 깨끗하면 기분이 좋거든.."


나 역시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집이 정리가 되어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남편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 어릴 적 엄마처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집안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됐고 나는 큰 불만이나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임신을 해서도 집안일은 빼놓지 않았고 밥도 항상 집에서 챙겨 먹었다. 만삭 때 이사를 가서도 무거운 몸으로 기어코 집정리를 했다. 이 무슨 쓰잘 떼기 없는 의무감인가..? 뭔가 한참 잘못되어 간다고 느낀 건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체력 하나는 자신 있던 나도 몸이 하나둘씩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손가락 마디가 쑤시고 허리가 아팠다. 잠을 길게 자본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조금만 푹 자도 몸이 개운한 게 아니라 온몸이 아팠다. 내가 매일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나를 병들게 하고 있는지 몰랐다. 어느 날부터인가 몸이 아파오면서 잘해 오던 것들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라 하긴 하지만 내 맘대로 따라 주지 않는 나의 몸뚱이에 화가 났다. 사실 이런 나의 상태를 모르는 남편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



남편이 없는 하루는 이렇다.

ㆍ일어나자마자 아이 밥을 주고, 청소를 한다.

ㆍ빨래도 돌리고 환절기마다 이불과 옷 정리도 해야 하고, 화장실 청소와 장난감도 닦아 준다.

ㆍ이이가 뛰노는 매트는 매일 닦아 줘야 물고 빨고 난리를 쳐도 마음이 놓인다.

ㆍ하루에 설거지는 도대체가 몇 번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ㆍ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도 후다닥 버리고 오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 아이 물건이나 필요한 물건들을 주문한다.  

ㆍ냉장고 확인을 하고 반찬도 만들고 밥도 한다.

ㆍ중간중간 아이는 계속 챙겨야 한다.

ㆍ남편이 퇴근하면 저녁을 챙기고 아기를 씻기고

 재운다.

ㆍ아이는 내가 데리고 자기 때문에 자면서도 아이에게 신경이 쓰인다.



순서가 다르고 추가되거나 한두 개는 건너뛰는 것도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매일 반복된다. 가끔 이런 루틴의 끝을 알 수 없을 때는 마음이 답답해질 때도 있다. 성격상 누구에게 시키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 하는 게 마음이 편하고 할 일을 미루지 못한다. 눈에 보이면 바로바로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누워도 잠이 들지 않는다. 무슨 노예근성인지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특히나 남편이 아플 때는 진짜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다. 약도 챙겨줘야 하고 약을 먹으려면 삼시 세 끼를 차려야 하니... 나도 같이 아플 지경이다. 내가 아프면 누구든 이렇게 챙겨줄 사람이 있긴 한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래도 어떻게든 하긴 하니까 나는 척척 잘 해내는 엄마이고, 아내가 되어 있었다. 원해서 된 것도 아니고 원하지 않는다고 안 할 일들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선택한 일들이다. 그래서 남편을 원망할 수도 없고 나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편은 내가 쉬면서 내 자신도 돌보길 바랬지만 나는 남편이 오기 전까지 집도 깨끗이 치우고 맛있는 음식도 차려 주고 싶었다. 퇴근해서 온 남편에게 음식물 쓰레기 심부름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 남편이 씻고 있으면 얼른 혼자 버리고 왔다. 남편을 생각하고 배려를 하기 위해 했던 일들인데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남편은 오히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숨이 막혔을 것이다. 쉬고 싶은데 자꾸 뭔가를 하니까, 도와줘야 된다는 생각은 들지만 몸은 소파와 하나가 되어 생각과 따로 노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이따 같이하자, 주말에 같이 하자는 얘길 많이 했다. 그렇게 잠시 미루고 같이하면 될 일인데 그러지 못했다. 적당히 내려놓고 조금은 대충 해도 될 일을 자신에게 너무 엄격했다. 내가 집안을 깨끗하게 하면서 나의 일에 행복을 느낀다면 문제 될 게 없지만 도대체가 무급에 해도 해도 티가 안나는 이 일들을 왜 나 혼자 하고 있는 것인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름을 느꼈을 때 결심했다.



'조금만 내려놓자.. 그리고.. 남편에게 적당히 표현하자'



처음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랬고 기다렸다.

생각해보면 그건 지구 상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뇌구조가 기본적으로 다르게 세팅되어있다. 싸우면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뭘 잘못했는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정확히 집고 넘어가야 하는 여자들과는 달리 남자들은 단순했다.


"내가 다....... 잘못했다......... 내가 다... 미안하다"

(제발.. 대충 넘어가자...)

"그니까.. 뭐가 미안한데??? 뭐를 잘못한 건데???" (아주 정확하고 디테일한 설명을 해야 할 게야....)

"그냥.. 다"(살려주세요..)

"다 가 뭔데????"(마지막으로 묻는다)


아마 죽기 전까지도 무한 반복할 수도 있다.



나도 가끔은 내 마음을 모를 때가 많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마음이 어떤지.. 그런데 남편한테 스스로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 어쩌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내색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동안 남편은 정말 내가 힘든지 몰랐을 수도 있다. 눈치를 줘도 알아듣지 못하는데 기대가 컸다. 내가 남편을 저토록 가사 바보로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내 상황을 전하기로 했다. 좋은 말로 할 때 가사노동을 함께하자고 부드럽게 설명했다.



"나 허리가 쑤시는 게 비가 와서가 아니라 디스크래.... 이런 허리로 집안일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만 있다면 그땐 몰랐다는 얘기는 통하지 않을 것이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보다 사실은 조금의 관심과 공감을 바랐다. '많이 힘든 거 안다...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도와주도록 노력해보겠다... '이런 말들..


다행히도 남편은 생존 욕구가 강해서 나의 이야기에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꼼꼼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살짝 답답하기도 했지만 무한 칭찬으로 그의 기분을 한껏 끌어올렸다. 가끔 친구들 앞에서 집안일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거라고 뻔뻔한 소리도 했다.(그게 자기란 얘긴가? 설마?) 육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베이비시터급 노련함을 자랑하는 모습이 정말 가관이었다.





집안일을 하나둘씩 해본 남편은 나의 하루가 이토록 힘들고 긴지 몰랐다고 한다. 남편과 한 공간에서 일을 해봤기에 얼마나 피곤하고 에너지가 소모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집안일도 직장만큼 힘들고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란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을 무렵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다시 허리가 괜찮아지면서부터 개미처럼 움직이는 내 뒤에서 은근슬쩍 베짱이가 되어 입만 뻥끗하는 주둥이 노동을 하고 있었다.



당장 하루아침에 큰 변화를 바란 건 아니다. 그래도 내가 뭔가를 할 때마다 죄인 코스프레를 하기도 하고 하는 일 없이 부산스럽게 주변을 배회하기도 한다. 내가 말하고, 표현하지 않았다면 집은 원래 그 누구도 건들지 않으면 늘 깨끗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일을 쉬면서 나 스스로 자존감이 낮아졌었다. 자기 일을 하면서 오는 성취감이라는 게 도통 부엌데기에게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집안일과 육아라도 똑 부러지게 해내고 싶었던 것 같다. 가사가 별거 아닌 게 아닌데도 이거라도 잘해야 된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내가 지금 당장 하지 않는다고 집안이 쑥대밭이 되는 것도 아니요, 우리 모두가 굶어 죽는 것도 아니었다. 청소 좀 미루고, 반찬도 돌려먹고, 빨래 좀 쌓여도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누가 쌓여있는 일거리를 더 참지 못하고 먼저 나서느냐인데 그게 바로 나였다. 내가 좀 더 인내심을 갖고 못 본척한다면 어설프고 부족해도 남편이 어떻게든 집안일도 할 거고 아이도 돌볼 텐데 쉽게 내려놓지를 못했던 거다. 내가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인생무상을 느끼며 병든 닭이 되느니 남편과 적당히 나누고 내 시간을 만들어야 재충전이 된다. 운동도 하고 글도 쓰면서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위해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 지금이 나에게는 마침표 대신 쉼표가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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