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우리
인간관계의 적당한 거리가 과연 어느 정도 일까? 사람들마다 각자의 관점에서 어느 정도 적당한 거리는 필요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맞지 않는 관계는 작은 틈이 크게 벌어지고 잘 맞는 관계는 그냥 내 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크게 벌어졌던 거리는 어느새 가까워진다.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 주변에 몇 없는 친한 사람들이 그러했다.
나는 가장 친한 친구와도 자주 연락하고 만나지 않는다. 중학교 때는 같은 반이어서 늘 붙어 있었지만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는 자주 못 봐서 인지 마음이 한층 가까워졌다. 결혼도 일찍 해서 다른 지방에 살고 있지만 언제나 가장 먼저 생각나는 친구다. 자주 연락하고 봐야만 가까운 사이라면 나는 택배 아저씨와 호형호제해야 한다.(1일 1 통화) 함께 있어도 불편하면 자주 보는 건 곤욕이고, 어쩌다 봐도 어제 본 사이처럼 느껴지는 것이 나에게는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가 주는 건강함이라고 생각한다. 거리를 둔다고 멀어지는 것도 아니고 거리를 두지 않는다고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든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왔지만 그중 시댁은 예외였다. 남편은 결혼 직전까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 있었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한순간에 울타리 밖을 나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법률스님이 말씀하시길 자식이 성년이 되면 연을 끊어야 하고 결혼을 하면 며느리는 그동안 키워준 자식을 나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진심으로 시부모님께 감사했다.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의 허전한 마음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래서 시간 날 때 자주 뵙거나 우리의 일상을 공유하는 느낌이 들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거리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해서 함께해야 의미가 있고 자주 봐야 하는 시댁에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시간을 갖고 노력하면 나를 믿고 남편 걱정을 덜 하실 거라 믿었다. 그래서 시댁에 가서도 남편이 부모님을 얼마나 생각하고 감사해하는지 전했고 남편이 부모님께 놓치는 부분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나는 어머니와 남편을 두고 미묘한 신경전 따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작은 서운함이 생겨도 무조건 어머니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시댁과의 거리가 필요했던 이유는 아이를 낳고부터였다. 어머님이 아들에 대한 마음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았고 아직 다 큰 아들을 놓지 못하는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니 심적으로 부담감이 생겼다. 그럼에도 남편과 어머니 사이를 멀어지는 것은 나도 원치 않았다. 단지 어머니의 자식사랑이 손주한테로 이어지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손주도 아들같이 아껴주셨고 걱정해 주셨지만 나는 감사함보다는 못다 한 숙제 검사를 받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산후조리 때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며느리의 부탁보다는 남편의 한마디가 어머니를 움직였던 이후로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과 아들, 손주가 보고 싶은 것과는 별개인 것이 나를 점점 시댁과 거리를 두게 한 것이다.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들이다. 아들이, 손주가 궁금하고 보고 싶은 것을 이해 못하는 내가 오히려 유난스럽고 별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냈지만 그럴수록 더 많이 더 자주 나의 육아를 의무적으로 공유해야 했다. 그 정도가 나에게는 많이 버거웠고 내 입장을 남편에게 털어놓으면서 5년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부부 싸움을 하게 됐다. 남편 입장에서는 그동안 너무 잘 지내왔었고 자신의 부모님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한테 많이 서운 했을 것이다.
남편에게만 모든 걸 말할 수 있었고, 남편만이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랬지만 오히려 남편에게만은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후로 남편과 나는 시댁 얘기에 서로 예민했고 서로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식성과 생활패턴까지도 모두 남편에게 맞추려고 했지만 나도 안 되는 게 있었다. 예전처럼 잘 지내고 싶어서 서운했던 말들도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지워도 남는 자국처럼 쉽지가 않았다.
시부모님이 다가오는 것보다 나는 빠르게 도망가기 바빴다. 전력질주를 한 덕에 이전보단 그나마 거리가 생겼다. 남편도 시댁과 거리를 두니 조금은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당연히 해왔던 수많은 일들이 이제는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했다.
남편이 부모님께 어떻게 얘길 한 건지 모르겠지만 연락도 남편에게 많이 하신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혹시나 오해를 하고 계신 건 아닌지 불안했을 텐데 이제 궁금하지 않다. 그때는 그동안 쌓아왔던 시댁과의 꽤 괜찮았던 관계가 깨질까 걱정이 됐던 것 같다. 이제는 오해할 것도 없고 어떤 말을 남편이 전했든 상관이 없다. 같은 여자로서 내입장을 이해한다고 하시지만 아마도 내입장에서 나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의 거리두기를 산후우울증 때문이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거리가 필요한 관계가 어디 시댁뿐일까.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남편과도 마찬가지다. 나는 남편의 취미나 용돈으로 하는 일들에 관심이 없다. 주식을 해서 말아먹든....(빠직) 내가 모르는 전자제품들이 늘어나도... 진짜... 신경 안 쓴다..(거슬리지만 못 본척한다.)
친구들과 가끔 여행을 가거나, 술 먹고 늦게 들어와도 전화를 하거나 귀가를 재촉하지도 않는다. 무관심이 아니라 가끔은 남자들만의 세계를 모른 척해주고 싶은 것이다. 나의 친정식구들도 결혼하고 나서는 한 가정이라는 테두리를 존중해 주신다. 부부싸움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말 그대로 한가정이기 때문에 그저 지켜봐 주신다. 그래서 내가 유독 시댁에 민감하고 예민 한지도 모르겠다. 어디가 맞고 틀린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폭이 다른 것 같다. 서로에게는 필요한 거리가 있는데 상대의 그 필수 거리를 못 본척하는 순간 가까웠던 관계가 멀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찾으면 보이는 정도의, 부르면 들릴 수 있는 적당한 거리가 우리에게는 있어야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린 것처럼 소중하고 지키고 싶은 관계도 거리두기로 보다 나은 관계로 발전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