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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쟌 Feb 09. 2021

명절에 왕따가 되는 며느리

외롭지 않은 자발적 왕따 이야기

 나는 사랑받는 며느리였다. 물론 과거이고 지금은 아니다. 4년이 넘는 며느라기 시절을 명절마다 회상을 해보곤 하는데 참 부지런했고 의욕만 앞선 무지랭이였다. 명절만 되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명절 전날 일찍이 가서 일손을 거들었고 점심에 저녁까지 먹고 난 후에는 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가거나, 근교로 산책을 하자며.. 쉼 없이 설쳐댔다. 시어머님은 이런 나를 많이 이뻐하셨다. 어머님 얘기에도 끄떡없는 아버님께 적당히 졸라가며 가족과의 화합에 앞장서는 내가 기특하셨을 것이다.


처음엔 나도 어색했고 하기 싫었다. 그런데 무언가를 하지 않고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에 끼어야 하는 시간도 수월하진 않았기에 그냥 바쁘게 움직이는 게 차라리 나았던 것 같다. 작은집과 시댁이 보통 명절을 같이 지내기 때문에 나는 시어머니, 작은어머니와의 대화에서도 적당히 참여하고 빠지며 나름 싹싹하게 명절을 보내왔다. 그래서 명절이 어릴때 만큼신나고 기다려지진 않았지만 다녀오고 나면 나의 눈치를 영혼까지 끌어 불태웠기에 할 도리는 다했다는 뿌듯함이 남았었다.



그랬던 나는 명절에 시댁을 처음 가는 사람처럼 어색했고, 낯설기까지 했다. 뭐지 이 숨 막히는 공기는?? 작년 명절부터 시작되고 있는 이분위기에 이유는 있을 것이다. 일단!


나는 전날 시댁에 가지 않는다.


시댁이랑 한 시간 거리이기도 해서 아침 일찍 가는 게 무리가 없고, 무엇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우리 가족이 잘 공간도 없을뿐더러 있어도 그러고 싶진 않았다.  아이가 없을 때는 우리 부부만 머리 닿는 어딘가에서 눈만 붙이면 됐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집에서도 안자는 애가 시댁에서 꿀잠을 잘 리가 없다. 전 날가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일손을 전처럼 거들지 않게 되었다. 처음엔 아이를 낳고 나서 돌아오는 명절에 전날 가서 차례 준비를 하고 다음날 다시 갈까? 생각해봤는데 생각에서 끝냈다. 가도 아이 보느라 내 역할도 다하지 못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난 그렇게 매해 명절마다 할 자신이 없었다. 처음이 중요하다. 하다가 안 하느니 처음부터 안 하는 게 낫다는 것을 나는 그간 뼈저리게 느꼈으므로 정신을 차리기로 한다.



고작 명절 음식 할 때 쏙 빠져있었다고 소외가 되는건 아니다. 서서히 어머님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츰차츰 누적된 막돼먹은 며느리 마일리지가 쌓여 그렇게 된 것이다.



처음엔 아이를 낳고나서 차갑고 단호하신 어머님에 한동안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아무일 없던것처럼 나혼자 마음을 쓰는 분위기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후로 어머님의 관심과 배려가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다. 아이가 생기기 전엔 우리가 댁에 갈 때마다 음식을 싸주셔서 큰 부담 없이 받곤 했는데 아이를 낳은 후로는 음식을 매번 만들어서 오셨다. 처음에는 감사했지만, 매번 편하지만 않았다. 나는 어머님께 적당히 사양한 적도 있었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하면서 더 이상 시부모님의 방문이 반갑지 않았다. 게다가 ♪만나면 반갑다고 모유수유, 헤어질 때 또 만나요 모유수유♬ 어머님은 모든 대화를 모유수유로 끝맺음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계셨다.


"아니 글쎄 진경이가 사성에 취업을 했다네? 그나저나 모유는 먹이니?"

"옆집 아줌마랑 엊그제 배추를 절었는데 죽는 줄 알았어... 맞다 모유는 먹이고?"


언젠가 명절 때 온 가족이 다 모였을 때다. 이미 단유 중이었고 온 가족이 모여서 아기의 꼬물거림을 보고 있는데


"애가 어쩜 지아범 어릴 때랑 똑같은지 몰라. 모유는 지금도 먹니?"


나는 온 가족 앞에서 단유 했다는 젖밍아웃?을 했다.. 또르륵....



여러가지 일로 어머님의 전화도 긴장됐고, 뵐 때마다 아이가 세상 전부 같은 모습들은 뭔가 속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내가 대학 졸업 후 다닌직장에는 정년을 앞둔 부모님 연배의 분들이 많았는데 어렵긴 했어도 나 역시 자식들과 비슷한 나이라고 잘해주셨고 지금까지 곧잘 지낸다. 그래서 어른들께 어느 정도는 잘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어머니는 달랐다. 어떤 때는 딸 같아서 편해서 그렇다 하시고(딸은 없으심), 또 어떤 때는 어른이 챙겨주면 감사할 줄 모른다고 하시는데 그 어떤 때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나는 매번 실패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냥 놓게 되었다... 난...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남편 친구들이 아이를 보러 와서 남편에게 한 마디씩 했다.


"너희 어머니 자주 오시겠다..."


워낙에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도 많으시고 정도 많으시다. 그 순수한 마음을 오롯이 나.. 나만 불편해하는 게 문제다. 이렇게나 좋은 분과 몇 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던 이유는 내가 단 한 번도 거절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일 것이다. 조금씩 남편과 시댁을 위해 모른 척 한 내 감정을 표현하다 보니 서서히 시댁과 멀어지게 되었다.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살갑고 싹싹하던 며느리가 전화를 해도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한 번씩 오란 소리도 하지 않으니.. 영 맘에 들지 않으실 것이다. 게다가 남편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필요하겠다고까지 하니 괘씸하실 것이다. 그 후로 명절 때 시댁을 가면 어색한 공기가 나를 감싸 안았고 나는 혼자 겉도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근데.... 뭔가 이 기분.... 불쾌하지 않군??



내가 시댁과 분리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마 이런 기분을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은 나 역시 전날 미리 와서 전을 부치고, 주방 가까이에서 아버님이 식사를 다하시면 물을 내어 드렸고,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그런 며느리였기 때문에 느끼지 못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지금은 당일날 일찍 가고, 설거지도 하지 않고, 아버님이 식사를 마치셨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가서 아이가 응가를 하면 씻기고, 밥 먹을 시간이 되면 한바탕 밥풀과의 전쟁을 한 후,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다가 차례가 다 끝나면 아이가 난리 쳐놓는 물건들을 제자리에 갖다 두기 바쁘다. 그렇게 장소만 다를 뿐 애만 보다가 뒤통수가 따끔거림을 느끼며 집으로 온다. 굳이 엄마만 찾는 애를 남편이나 낯선 친척들에게 맡기고 며느리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욕심이 없다. 그래서 조금은 겸언쩍긴 하지만 마음 편한 자발적 왕따가 되었다.



그렇다고 시댁 식구들이 나에게 말 한마디 안 걸고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건 아니다. 음식도 잘 챙겨 주시고, 아기 얘기도 물어보시긴 한다. 다만 아주 어색할 뿐이다. 예전과 다른 서먹함이 남아서 그렇지 나는 썩 나쁘지 않다. 오히려 정말 손님 같기도 하고, 그동안 당연하게 해왔던 모든 일들에서 해방된 느낌이다. 예전에는 작은집에 며느리들이 빨리 들어와서 이 모든 명절 일거리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그들이 결혼해서 왜 이 모든 걸 당연히 함께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유교 며느리인 나에게 살짝 소름이 끼친다. 나는 아마 그동안 별일이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시댁에 흡수되었을 것이다. 솔직히 아직도 어머님 두 분이 명절 음식을 도맡아 하는 건 마음이 편하지 만은 않다. 그러나 두 팔 걷고 나설게 아니라면 죄책감은 내가 아닌 남편에게 스리슬쩍 넘기기로 한다.



시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몰랐다. 당연하고 안 하면 안 되는 모든 것들이 한 발짝 떨어져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말도 안 되게 불합리한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생각이 자리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 역시 명절, 제사, 시부모님 생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한민국 며느리였고, 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모든 역할과 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못되고 버릇없는 며느리가 된다면 나는 마땅히 그런 며느리가 되어도 좋다. 며느리가 있음에도 일거리가 줄지 않는 어머님을 안타깝게 보시는 친척들은 내 착각일수도 있지만나를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시선을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시댁에 만족스럽지 못한 며느리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나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시댁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 일찍 깨닫고 나의 감정을 살뜰히 돌보기로 했다. 그동안 모른척했던 내 안의 나를 조금씩 찾아가 보니 명절에 스트레스도 덜했고, 코로나로 오지 말라는 연락도 이제는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시댁에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고 시댁도 나에게 걸었던 기대들을 조금씩 내려놓길 바라고 있다. 완벽한 며느리는 되지 못했지만,


"좋은 아내, 좋은 엄마로서는 최선을 다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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