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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쟌 May 09. 2021

상견례에서 생긴 일

날씨만 더워지면 생각나는 그날.

나는 무더운 7월만 오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바로 결혼을 위한 첫 번째 관문인 상견례 날이다. 결혼 전에 전세계약 문제로 신혼집을 일찍 구하게 됐다. 집을 구하던 시기는 결혼에 대해 양가 허락만 받고 구두로 결정했던 때라 상견례 전이었고 우리는 상견례를 계획하고 있었다.


예비 시아버지께서는 사람 많은 식당에서 상견례를 하고 싶지 않으셨는지 새로운 신혼집에서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그때가 5월 정도였고 밖은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던 때라 그 누구도 아버님 이야기에 반대를 하지 못했다.


내가 엄마에게 이야기를 전했을 때 전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왜 양가가 서로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서 네가 음식을 해야 하니..?"


"엄마.. 정운이랑 같이 할 거야.. 그리고 집에서 하는 게 더 편하시대.. 엄마는 안 그래?


"네가 음식을 한다는데 내가 편하겠냐고...?!!"


엄마는 싫어하셨고,  예비 시가에는 부모님께 잘 전달했다며 야비한 비둘기가 되었다. 어머니는 식당에서 하셨으면 하신다는 이야기를 그때의 나는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들었다. 근데 꺼내기 힘들어도 했어야 했다.


두어 달이 지나고 7월이 다가왔다. 양가 부모님 시간을 맞추느라 애를 먹어서 우리는 정해진 그날에 꼭 상견례를 치러야만 했다. 5월에 생각한 7월이 이렇게나 더울 줄은 몰랐고, 이사온지 2주 정도였던 터라 에어컨 설치도 이미 예약이 찬 상태였다. 우린 에어컨 없는 집에서 상차림을 준비했다.


상견례 전날 저녁, 시어머니께서 전화가 왔다.


"날이 너무 더운데 밖에서 먹는 건 어떠니?"


이미 장도 봐왔고, 식당을 다시 예약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어려웠다. 장소며, 메뉴며 다시 양가 의견을 묻고 조율을 하기에는 촉박했다. 결국엔 집에서 상견례를 하게 되었고 나는 그날 아침부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더운 날 왜 집에서 고생을 하는 거니.."


엄마는 당일 아침까지도 불만이 터져 나왔고, 나는 제발 그렇게 하기로  거면 그냥 오늘만 참아달라고 도착전까지 부탁을 했다. 사실 엄마는 그렇게 한다고 한적도 없는데 내가 그냥 통보나 나름없이 정한 것이다. 아니다 다를까 우리 엄마는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셨다. 대화 내내 주방을 들락거리며 정리를 하시고, 양복을 챙겨 입으신 아빠는 땀이  오듯 쏟아졌다. 선풍기 한대가 아무리 열일을 해도 역부족이었다. 분위기가 굉장히 어색하면서도 고요해서 어머님이 한마디 하신다.


"안 그래도 날이 더워 밖에서 먹자니까 지들이 해보겠다고 저러네요.."


왠지 같은배에서 어머니만 구명조끼를 입으신듯한 느낌이었다. 엄마는  "나가서 먹지... 똥 멍충아 '라는 복화술을 하시면서 나를 째려보셨다. 그리고는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갑자기 어머님께서


"정운이는 지금까지 사춘기도 없었고, 속한 번 썩인 적 없었어요"  


"저희 청희도 스무 살 때부터 용돈 한번 안 받고 학교 다니고, 엄마 걱정을 시킨 적이 없어요."


뭐지.. 이게 말로만 듣던 자식 자랑 배틀인가? 평소에 하던 아들 자랑을 사돈 앞에서 하시는 어머님과 자식 자랑을 평소에 하지도 않는 엄마의 대화에 우리는 당황했다. 부끄러움은 자식 몫인지 남편과 나는 누군가 뒷덜미를 후려친것마냥 고개가 절로 숙여졌고 아빠와 아버님도 민망해하셨다. 다행스럽게도 한두 마디만 하고 거의 끝을 향하고 있을 때쯤에 아빠의 한마디가 나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이제 아이들이 독립적인 가정을 이루고 산다고 하니 부모들은 너무 걱정 말고 잘 지켜봐 줍시다"


남편이 이사 후에 짐들을 챙겨서 식전에 먼저 신혼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 시어머니께서 수시로 집에 오셨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40분 거리에 계시는 시부모님은 우리가 출근한 집에 오셔서 반찬도 두고 가시고, 이런저런 물건도 두고 가셨다. 냉장고도 열어보실 테고 침실도 둘러보실 텐데 내가 남편보다 먼저 출근을 해서 집 상태도 알 수 없었다. 언제 오시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번 반복되니 마음이 쓰여서 아빠에게 이런 고민을 얘기한 적이 있다.


"내가 혼자 지낸 시간도 길고, 집이라는 공간이 나에겐 너무 사적이라 아직까지 적응이 안돼.."


"아빠는 자식이라도 그 공간은 사적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그렇게 안 하긴 했지만 정운이는 계속 부모님이랑 함께 살아서 마음이 쓰이실 거야"


아빠는 그렇게 쿨하면서도 너그럽게? 나의 고민을 들어주셨다. 그랬던 아빠가 상견례 분위기에서 아들에 대한 애틋함을 넘어 걱정이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내 걱정이 되셨나 보다. 나는 아빠의 지켜봐 주자는 저 말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수년의 시간이 흘러 내가 시어머니께 수없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켜봐 주세요..."


이게 시부모님께는 이해가 되지 않고 왜 그래야 하는지 조차 알고 싶어 하지 않으셔서 지금도 그때의 아빠의 한마디가 내 가슴속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는 느낌이 든다.


같은 공간 속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 일거리를 줄여주려고 계속 정리를 하셨고 나는 그런 엄마 덕에 좌불안석이었다. 가시면서도 남편에게 설거지는 꼭 같이 해달란 부탁을 하신 엄마가 그때는 징하다 싶었다. 내가 가끔 날이 더워질 쯤에 그때 얘기를 꺼내면 질색하신다.


"그때 생각하기도 싫어.. 그 더운 날 네가 땀을 뻘뻘 흘려가면 얼굴을 벌게져서 왜 그렇게 또 삐쩍 말라 있는 건지.."


그날 동생에게 듣기로는 엄마가 집에 가는 내내 우셨다고 한다. 결혼해서 알콩달콩 사는 모습보다 시부모님 앞에서 긴장한 모습부터 보셔서 그런 것 같다. 이제야 엄마가 이해가 되는 걸 보니 나도 엄마가 되어가고 있나 보다. 지금은 그때처럼 속상하거나 고민을 이야기 하기에는 묵직한 주제가 많아 전처럼 털어놓기가 힘들다. 상견례는 나에게 지우고 싶은 날 중하나였지만 그때의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스해지고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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