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결혼한 남의 자식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고, 시어머니는 친정엄마가 될 수 없지만 가족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남편의 부모님께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며느라기로 이어진다. 나는 그 시기가 5년 정도였는데,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딸은 아니지만 다정할 수 있고, 친정엄마는 아니지만 따뜻한 존재는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내 마음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한낱 기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이 낳고 깨달았다. 기대라는 것이 클수록 실망은 있기 마련이고, 뒤따라오는 실망들을 피할 수 없었다. 부모가 자식을 남의 자식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는 다르다. 마음을 갖고 있더라도 해도 되는 표현과 그렇지 않은 표현이 있으며, 내 자식이 아니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시어머니는 친정 엄마가 아니기에 더욱 언행에 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자칫 잘못하다 멀어진 사이는 쉽게 회복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고부관계의 진리가 이렇게나 뼈를 때릴 줄은 전혀 몰랐다.
내 마음이 한껏 여유로울 때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다 맞는 것 같다가도 몸이 아프고, 감정도 복잡할 시기에는 궁지에 몰리니 무조건적으로 따르기가 어려웠다. 크게 신경 안 쓰고 흘려보내던 다양한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한참을 머물곤 했다.
아이를 낳고 입원기간 동안 씻지 못해 집에서 씻으려 했다. 어머님은 샤워가 안좋단이야길 하셨고, 병원 안내문에도 목욕은 안되지만 샤워는 가능하단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씻고 나왔을 때 시어머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영문은 몰랐지만 내가 샤워를 해서일 거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어머님은 기어이 씻었냐고 한마디 하셨다. 출산하면서 땀 흘리고, 머리를 4일 동안 못 감았는데 그럼 언제 씻어야 했던 건지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었다. 나는 멋쩍게 '병원에서 샤워는 가능하다고 해서요...' 말끝을 흐렸다. 그때부터였을까.. 나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님은 매번 아침을 차려 두시고 함께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 아이가 있는 방에서 나오지 않으셨고, 점심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했을 때나 함께 식사를 하셨다. 아침, 점심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반찬들에 서운함보다는 가능한 내가 챙겨 먹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매일 세끼 식사 준비를 하는 것도 쉬운 일도 아니고 일단 변비가 너무 심해서 아침 정도는 가볍게 먹어도 될 일이었다. 어머니께 변비가 나아질 때까지는 간단히 제가 챙겨 먹을 테니, 안차려 주셔도 된다고 했다.
"변비면 먹어서 밀어내야 되는 거야. 한술이라도 떠야 젖이 나오지~!"
정말 너무 신선해서 얼떨결에 그런가 싶기까지 했다. 다음날 역시나 밥이 차려져 있었고, 차가운 파프리카와 양배추를 삼키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를 향한 걱정과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감사함을 조금이나마 표현하고자 산후조리가 완전히(?) 끝나고 가셨을 때 남편과 상의해서 용돈을 드렸다. 그간 고생하셨던 마음을 풀어 드리고 싶기도 했고 어쩌면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그냥 지나가는 것도 편치 않아 드리기로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현금을 남편이 모셔다 드리는 길에 드렸고, 아주 좋아하셨다고 남편이 전해 주었다. 평소에 이런저런 핑계로 용돈을 자주 챙겨 드렸기에 같은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조리 때 있던 여러 일들이 가벼운 해프닝으로 지나갈 줄만 알았다. 다음날 나에게 한통의 문자가 왔다. 내용은 이런저런 좋은 말들 뒤에 그 용돈을 받고 매우 서글프셨으며, 네가 예민하고 우울한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 여기겠다는 것. 모든 문장의 요점은 마지막에 있다. 그 후로 몇 번의 장문의 문자를 받고 보니, 어머님 글의 앞 내용은 크게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럴 수 있다. 돈 몇 푼 받으려고 며느리가 불편해하는 걸 알면서도 계셨던 게 아닐 것이다. 충분히 기분이 언짢을 수도 있고 이제 알았으니 앞으로 이런 상황에서 나는 빠지면 될 일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은 되려 내가 서글펐다. 같이 드린 용돈에 대한 서글픔이 왜 나에게만 향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서글픔을 왜 나의 예민함과 우울함을 탓하시는지 이해가 어려웠다. 마음이 이미 삐뚤어진 나는 '네가 우울하고 예민하니 나를 서글프게 하는구나 ' 정도로 해석이 된다. 숨은 의미로는 (내 아들은 분명히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퇴근한 남편에게 어머님이 정말 좋아하셨던 게 맞는지 확인을 하니, 그렇다고 한다.
그 후로 어머님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실 때마다 예민함을 내세우셨다. 아이 낳고 예민해서 저렇다, 육아를 하다 보면 우울함이 있는데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셨지만 나의 호르몬과 관계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남편에게 듣는 어머님은 나를 생각해 주시고, 이해해 주시는 것 같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며느리의 자기주장을 잠깐 스치는 산후우울증 정도로 믿고 싶으신 것 같았다.
얼마 후, 어머님은 남편이 바로 무친 나물을 좋아한다며 나물을 한 아름 삶아오셨다.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그때그때 무쳐 먹으라고 하시면서 냉장고를 채워주고 가셨다. 그전에 남편과 나는 약속을 했었다. 갑작스럽게 문자만 보내고 오셨던 적이 있어, 약속을 하고 오셨으면 한다고 얘길 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오시도록 조정해보겠다고 남편은 호언장담을 했다. 그런데 그 반찬 꾸러미를 주시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반찬을 했으니 조만간 주러 가겠단 내용이었고 나는 남편에게 전했다. 다음날 잠시 병원에 간 사이 카톡방에 문자가 와있었다. 지금 갈 테니 편하게 쉬고 있으란 문자 통보다. 그날은 원래 남편이 집에 없는 날이었고, 나 혼자 집에 있는 날 이었다.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던 남편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에게 되묻는다. 남편은 자신의 부모님이 불편하지 않으니 그게 정말 어쩌다 정도로 느껴질 것이고, 이러나저러나 아이를 혼자 보고 있어도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하면 나는 집을 치우고, 정리를 급히 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시부모님은 나에게 정리되지 않은 냉장고를 보여드려도, 어수선한 집에서 맞이해도 반가운 손님이 아니었다.
그렇게 잠깐씩 들리시는 게 괜찮다면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고, 매일 오셔도 상관없는 것인지 물었다. 남편은 마음이 상했는지 갑자기 오시지 말란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시어머니의 공포의 문자가 도착했다. 왜 오지 말라는 것인지, 무슨 일인 건지.. 를 물으셨고 나는 솔직히 말씀드렸다. 남편과 작은 말다툼이 있었고 분위기가 좋지 않아 나중에 날을 정하고 오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니 네가 이해하라는 내용과 함께 진짜 하고 싶은 말씀을 더하셨다.
'아버님께는 네가 아프다고 했으니 죄송하단 연락을 드리렴'
나로 인해 못 오시게 된 건 맞지만 왜 며느리가 아프다고 하신 걸까, 그리고 아픈 게 죄송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아버님께 싸웠다고 하면 더 걱정하실 것 같아 그러셨을 것이다. 나 하나 아픈 척하면 모든 일이 깔끔하게 마무리될 거라 생각하고 죄송하단 연락을 드렸다. 괜찮다고 하셨던 아버님은 정말 괜찮은 게 아니었다. 어머님은 그때 못 오게 한걸 두고두고 시아버지가 서운해하신다는 말씀과 함께 주기적으로 놀러 오란 연락을 하라고 하셨다. 결혼 전에도 어머님은 나에게 시아버지께 연락을 종종 드리란 말씀을 하셨는데 부모님께도 연락을 잘 안 하던 습관에 여간 어색했던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의 부모님이 아니기에 노력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 시키는 대로 연락을 하긴 했다. 자발적인 건 아니었지만 진심을 담아서 연락을 드렸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을 담기가 어려웠고 문자를 드리면서도 나 자신이 이중적인 사람처럼 느껴졌다.
시어머니는 어떤 때는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선을 분명히 긋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똑같은 자식이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일관적이지가 않아 늘 혼란스러웠다. 집에 오시면 수유를 할 때도, 유축을 할 때도 지켜보시거나, 양을 꼼꼼히 확인하셨는데 아이가 젖을 물지 못할 때는 직접 입에 넣어주시는 친절(?)에 나는 제대로 수유도 못해보고 단유를 고민했다. 나의 가슴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셨던 시어머니는 유선염이 걸려 극심한 통증을 시달리고 있던 내게 손짓하셨다.
"이리 와 내가 마사지해줄게"
"아..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고 어머님은 같은 여자끼리 뭐가 어떠냐며 한참을 혼자 이야기하셨다. 시어머니라서 불편한 게 아니라 친정엄마였어도 나의 가슴은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 같아서 해줄 수 있는 것인데 사양하는 나에게 서운하신 것 같았다. 이럴 때는 나를 자식처럼 생각하셔서 그런 것 같다가도 조리가 충분하단 얘기에 까불지 말라며 내 아들 밥을 누가 챙겨줄 것인지 물으실 때는 철저한 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은 그때 엄마가 하신 이야기는 내가 부담이 될까 봐 하셨다고 했다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지만 내입 통해 듣기 전에 남편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신듯하다. 나는 어머님의 아들이 아니라 그 깊은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서운한 말씀을 하시면서 까지 계시는 이유가 누굴 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부담을 덜기 위해 상처가 더해진 건 분명했다.
남편에게 듣는 어머님은 너무나 낯선 느낌마저 들었다. 잦은 연락과 방문을 남편이 중재하려 했을 때 다 이해한다, 아이 낳고 예민하더니 마음의 병이 들었다고 하셨는데 문제는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를 못하신다는 것이다. 예민했던 것도 맞고, 우울해서 마음이 병이 들었다고 생각하셔도 좋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병든 사람이지 병들게 한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가 너그럽게 다 이해하고 있으니,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남편과 달리 나는 이전과 다른 부분을 알 수없었다. 오히려 예전에는 정말 모르고 던진 돌을 내가 피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내가 맞을 것을 알고 날아오는 돌처럼 느껴진다. 아마 아들이 그렇게 힘들어했다면 진작에 변화가 있었겠지만 난 며느리다. 아들이 아닌 남의 딸의 불편함은 시어머니께 중요한 걸림돌이 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나의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어머님은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지내고 싶어 하셨다. 나 또한 같은 마음이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모른척하기가 오히려 면구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특별하게 생각했던 어머님은 여느 시어머니들처럼 아들을 대놓고 챙기시는 분이셨고, 뭔가 다르고 싶었던 나 역시 그런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며느리였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오는 전화라도 반갑게 받고 싶었고,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만나 뵙을 때만큼은 즐거운 자리가 되길 바랬었다. 이러한 바람은 나에게 크나큰 좌절로 돌아왔고 더 이상 멀어질 것도 없는 마음의 거리가 끝을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