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뜻밖의 일주

내겐 너무 먼 칼 퇴원

by 오아


장장 7박 8일이나 병원에 있게 될 줄이야

이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어

분명히 의사 선생님이 2박 3일 후면 집에 갈 수 있다고 했었잖아?!


심지어 엄마는 남은 연차를 다 쓰고도

하루가 모자라 버렸지 뭐야

엄마는 '무단결근'을 하게 되었어


처음부터 7박 8일이라고 했으면

노트북이라도 들고 와서

재택근무라고 우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우리는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저희 언제 퇴원해요?"하고 묻곤 했잖아

의사, 간호사 선생님 모두 우릴 피할 정도로 말이야


뭐 좋은 점이 없었던 건 아니야

영양소가 가득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너랑 많은 대화를 하면서

조금 더 친해진 느낌이 들기도 했어

(공룡을 아마 9마리까지 만들었지?)


너의 순수한 말들에

빵빵 터지기도 했고 말이야


내내 게임만 하는 네가 걱정스러워

"너 그러다가 엉덩이 근육 빠진다." 하니까


후다닥 병실 밖으로 걷기 운동을 나섰잖아

그 비장한 표정을 찍어뒀어야 하는데


엄마는 너의 자랑 거리인

탱탱한 엉덩이를 공략하길 역시 잘했다 싶었어


병동을 몇 바퀴 돌고 온 너는


"엄마! 내 엉덩이 만져봐!"

"내 칼날 같은 엉덩이 근육이 빠진 거야?" 하며 심각하게 물었지


세상에나 '칼날 같은' 이라니..

엄마는 터 저나 오는 웃음을 참느라 꽤나 힘들었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느냐며 묻고도 싶었지만

말투보다 운동이 더 중요했던 엄마는

심각한 척 고개를 가로젓거나, 이 정도면 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인을 주었지

엄마의 엉덩이 근육 평가에 따라

너의 감정은 참 많이 변했어

귀엽고 순수한 나의 아들

계속 이렇게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너의 엉덩 부심 덕분에 7박 8일 동안

걷기 운동을 빼먹지 않아서 좋았어


그리고, 매일 6시 조금 넘은 시간

"잘 잤어?"로 시작하는 아침도 아주 좋았어


6인실이라 결코 조용하지 않은 밤들이었는데

너는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쿨쿨 잘도 자더라고

신기하고 다행이었지


엄마는 꽤나 힘들었거든


하루는 아이가 쉼 없이 울었고

다음날에 은 아이 엄마가 코를 엄청나게 골았어

그리고 다음번엔 옆 침대의 조명이 밤새 꺼지지 않았지


아마 퇴원쯤 엄마의 얼굴을 보면

펜더가 친구 하자고 했을 거야


어쨌든, 하루도 빠짐없이 잘 잔 너의 행복 에너지를

전해받을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았어


매일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병동 끝 복도에서

함께 한강을 바라보는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었지


루틴은 참 좋은 것 같아

마음을 안정시켜주니까 말이야


11월 10일

드디어 mri 촬영이 결정되었어


검사 후 특별한 치료가 없어서

우린 바로 퇴원을 시켜달라고 했지


"아~ 진짜 칼 퇴원하고 싶다."는

네 의견과 내 상황을 반영한 결정이었어

(사실 진짜 출근해야 했거든)


수면 마취제를 통한 검사이지만

2시간쯤 후면 마취에서 깨어나니

오후 퇴원은 가능할 거라고 했어


엄마는 설레었지 뭐야

전날부터 짐을 다 싸놓고

네가 마취에서 깨면 후다닥 택시를 타고 갈 계획과

집에 가서 할 일까지 다 정해놨어


일주일 내내

치킨, 피자, 떡볶이, 라면, 햄버거는

구경도 못한 너도

오늘은 '후라이드 치킨'을 먹자며 기대했지


드디어 mri 검사날이 되었어


네가 덩치가 커서일까?

잠을 너무 잘 자서 일까?

검사 범위가 넓어서 일까?


좀처럼 수면제가 잘 듣지 않았어

재우는 약과 주사약까지 맞고서야

겨우 검사를 할 수 있었지


일주일 내내 쌩쌩하던 네가

괴로워하며 잠드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속상하던지. 엄마는 좀 많이 슬펐어


병변이 넓어서 검사 시간도 남들보다 2배는 길다고 하더라.


1시간 20분 후쯤 네가 검사실 밖으로 나왔어

그런데 네가 구토를 했다는 거야

조영제 부작용이 있었대


엄마는 몰랐어

몇 년 전에 mri 검사도 잘 마쳐서

부작용이 있으리란 건 생각도 못했지


부작용 없음으로 체크해서

울렁거림을 방지하는 약이 안 들어 간 거래

체크를 했다면

네가 힘들게 구토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아.. 어찌나 미안하고

걱정되던지


엄마는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을까


병실에 올라와서도 너는 연이어 구토를 했고


1~2시간이면 깨어난다는 마취는

4시간이 넘도록 깨어나지 않았지


얼마나 불안하던지,

동공에 힘이 없는 네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엄마가 괜히 너를 고생시킨 것 같아

많이 미안하고 슬펐어


엄마는 너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고개를 돌리고 구토를 닦아 주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어


그때 같은 병실 아주머니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다주시더라


그 커피 한잔은

한참 얼어 있던 엄마에게 큰 도움이 되었어

아마도 아주머니의 작은 관심에

힘을 얻은 것 같아


5시간이 넘도록 너는 온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다음날 퇴원한다고 할걸

엄마가 또 욕심부렸나 봐


출근이 뭐라고.

내가 너를 괴롭히게 된 상황이 너무 싫더라


하지만, 퇴원이 결정된 이상

엄마는 너를 데리고 퇴원을 해야 했어

엄마가 선택할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았거든


수번의 구토 후 조금 정신을 차린

너를 휠체어에 앉히고

모르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겨우겨우 택시에 올랐지


"더워 더워"를 연발하는 네게

연신 부채질을 해주며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이동해

꿈에 그리던 집에 도착했어


엄마는 이제 행복했을까?


안타깝게도 아니야

엄마는 전보다 더 얼떨떨해 있었어


택시에서 정말 스펙터클했거든


너는 마취가 덜 풀렸는지, 조영제 탓인지

울렁거리고 답답하다며

왼쪽 오른쪽으로 쉼 없이 움직였고


조금씩 구토를 하더니

이내 옷이 젖을 정도로 엄청난 것을 게워내었어


먹을 것이 없어 대부분 물이었지만

엄마는 많이 당황했어


택시에서 내리라고 할까 봐 걱정됐기도 했고

또 게워내면 어쩌나 하고 불안했지


엄마는 재빨리 택시 기사님께 세차비를 드린다고 했어


혹시나 네가 더 게워낼까 봐 노심초사하며

덥다. 춥다를 반복하는 너를 돌봤지


물론, 네가 가장 힘들었을 거야

축축하게 젖은 옷, 울렁거리는 속, 깨질듯한 머리, 답답한 차 안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이 얼마나 힘들었겠니

집에 도착해서도 밤 10시가 될 때까지

구토했으니 네가 정말 힘들었겠지


정말이야 고생했어

우리 아들 정말이야 고생했어


퇴원이 이렇게 힘들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

칼 퇴원은 하는 게 아니었나 봐


그날 엄마는

너처럼 한 끼도 먹지도 않았는데 좀처럼 배가 안 고프더라


모든 힘듦과 수고가

나한테 다 더해진 기분이었어


엄마가 스스로를 조금

불쌍하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해

(엄마는 아직 철이 덜 들었다 그렇지?)


실제로 이모에게 전화해서 한참을 하소연하기도 했지


그런데 며칠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날, 그 병원의 경험으로 엄마는 배운 게

참 많았더라고


/


의사에게 물어봐야 할 내용을 하나하나 적은 질문지와 커피까지 사주신 희귀 질환 카페 관계자님

희귀 질환 아이의 부모는 말하면서 푸는 거라며 내내 유쾌하게 분위기를 뛰어주던 아주머니

7년째 6개월에 한 번씩 수술하면서도 수줍은 미소로 손 흔들어 주던 6학년 누나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네가 퇴원한다니 빼빼로를 선물해 준 아기 엄마

(코 심하게 골았다고 해서 미안해요)

클레이로 만든 공룡을 보여주기 쑥스러워하던 네게 손녀 그림을 보여주며, 네가 스스로 자랑하게 하던 내공 깊은 할머니(추러스와 모닝커피도 감사해요)

20번이 넘는 시술을 하고도 '우리 아이는 살려주신다고 했어요.' 하며 멋진 믿음을 보여주던 선배 아주머니


그 밖에도

엄마 대신 캐리어 끌어준 아주머니

택시 대신 잡아준 주차요원

세탁비 깎아준 택시 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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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참 많은 도움을 받은 거 있지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도움이 끊이지 않았더라고


엄마는 엄마 힘든 것만 생각해서

고마움을 알아채지 못했나 봐


엄마도 이제 일희일비하기보다

좀 더 넓고 유연하게 바라보려고 해


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쫄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지면서

편안~한 마음을 가진다는 거야

네 말대로 '씩' 웃기도 하고 말이지


하여간에

나의 귀여운 아들아

정말이지 수고했어


큰 부작용 없어서도 너무 고맙고

혈당이 높아지지 않도록

사탕이나 초코 같은 것은 안 먹었으면 좋겠지만

안 먹을 수는 없으니 반으로만 줄이기로 해


그리고

현질은 이번만 1,500원이었다는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