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도 한 번쯤은 다 그랬을까?
요즘 나는 대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아.
'이직'이라는 흔하디 흔한 이슈가
내 일상을 이토록 뒤 흔들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어.
생각해 보면, 12년을 한 회사에 다니면서 이직제의를 못 받아본 게
더 이상한 것 같기도 한데 말이야.
엄청난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동안은 사람들도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게 여겼던 것 같아.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거든, 사장도 아니면서 말이지
'나는 곧 브랜드다.' 하는 생각으로 수많은 감각을 그곳에 맞췄어.
지분이 있냐,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는 소리는 밥먹듯이 들었으니
아마, 엄청난 정도의 착각은 아닐 거야.
여하튼,
지금 난 막 결정을 내렸어.
난생처음 받아본 '처우 제안'에 회신 했거든
지금까지 나의 실력을 테스트해 보자 했던 것들이 다행히도 잘 마무리되었어.
길어진 과정과 시간 속에
될 대로 돼라 하며 당차게 본 2차 면접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
좋은 복지가 있으니 당연히 깎일 줄 알았던 직위와 연봉이 유지되고, 상향되었으니 말이야.
근데 말이야. 사람이 참 그래.
당연히 좋아야 하는데, 좋은 것보다 걱정이 앞서는 거 있지.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을까?
우리 회사 보다 40배쯤 매출이 큰 회사에서
왜 나를 인정해 주는 걸까?
면접에서 너무 잘난 척을 했나?
일을 얼마나 시키려고 이러는 거지?
일에 빠져서 아이를 뒤로 하는 건 아니겠지?
못하면 어떻게? 하고 말이야.
그런데 뭐.. 그런 걱정들에 머릿속이 복잡하기는 했지만
누구나, 또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민이니까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
나는 예전과 다르고,
여태껏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아 왔으니까.
아마도 노력하면 많은 부분에서 괜찮을 수 있을거야.
진짜 걱정은 이거야.
내가 다니고 있는 이 회사..
이 애증의 회사가 정말이지 걱정이야.
정말이지 지금 회사가 어렵거든.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나가면 더 힘들어질 거야.
회사가 어려운데 나가는 것에 나는 지금 엄청난 죄책감이 들어.
나 사실 그렇게 착한 사람도 아닌데 말이야.
사람들은 평소 나답게 행동하라고 말해.
이성적으로 계획하고 행동하라고 말이야.
온갖 걱정과 다르게 실제 난 너무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어.
누구보다 치밀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상황을 임하고 있지.
지혜를 갈구하고, 퇴사한 동료의 의견을 듣고,
비슷한 업계사람들의 정보를 얻고, 가족과 친구들을 통해 안정을 얻고 말이야.
이미 다니는 회사에도 상황은 알렸어.
최종 통보만이 남은상황이야.
객관적으로 아무 문제없지.
그런데 엄마 있잖아.
그게 힘들어.
나는 로봇이 아니잖아.
나 슬프고 두렵고 무섭고 그래.
사람들에게도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해.
일적으로 아쉬운 건 없어,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거든
온갖 가면을 바꾸어 가며, 정말이지 최선을 다한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이제 나도 새로운 환경에 놓일 필요가 있는 거겠지.
모든 게 다 맞아. 나는 걱정이 아닌, 감사를 해야 해.. 내가 생각을 바꿔야 하는 거지..
사람들은 또 그래.
나는 잘할 거라고.
근데 엄마.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라.
내가 잘하려고 얼마나 마음을 쓰는지 말이야.
머리를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난 정말 온 마음을 쓰거든. 그래서 지금 힘든가 봐
온갖 방법을 갖다 붙이고 붙여도 마음이 어려워.
누구라도 붙잡고 자꾸만 이야기하고 싶은데
주구장창 내 얘기를 할 수도 없고 말이야.
그래서 엄마가 생각난 것 같아.
엄마가 맨날 그랬잖아.
나는 잘할 거라고.
학교를 안 가도, 사고를 쳐도 엄마는 맨날 나보고 잘할 거라고 했어.
그 시절, 내가 잘 될 거라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신념에 가까웠는데도 말이지.
엄마라서 엄마가 생각난 것도 있지만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엄마로서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던 엄마라면
내 입장을 잘 이해해 줄 것 같았어.
엄마, 난 내가 지금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두려운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그래서 그런가 오늘 아침은 참 벅차.
사회생활은 참 해도 해도 어려운 것 같아.
엄마가 있었으면
귀 아프다고 할 정도로 자랑하고 미안해하고
울고 웃고 다했을 거야.
엄마도 귀찮은 척하면서 지인들에게 자랑전화 돌리고 난리 났겠지 뭐.
상상하니까 뭐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
중간에 몇 번 눈물샘이 터졌지만 말이야.
엄마 나는 오늘 회사에 가서 아주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말할 거야.
감정 같은 건 안 보이게 말이야.
우습게도, 내가 이성적이어야 그곳이 더 무너지지 않을 것 같거든
체계를 정비하고, 대응하고
누군가에게 역할을 주고, 조율하고,
원래 사회생활은 다 이런 거다 하는 눈빛과 행동으로 말이야.
그곳의 바닥에 남은 온갖 비전을 끌어 담아
가능성이 보이는 친구에게 전달할 거야.
지친 경영진에게는 좌절보단 계획하라고 독려할 거고.
이렇게 써놓으니 내가 무슨 독립투사라도 된 것 같네.
참 내가 이렇게 쫄보야.
오늘 잘할 수 있겠지?
오늘은 그냥 괜찮게만 할게. 어른의 가면을 쓰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