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말고 뭐

by 오아

경제가 어려운 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며

떠들어대던 시기가 있었다.


누군가 회사에서 자리가 불안하다거나

사업이 어렵다고

그건 일을 못하는 그들의 문제일 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에게 젊음이 언제나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

켜켜이 쌓은 나의 경력이 무의미해지는 순간

결단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건 그저 일 안 하고 농땡이 치는 사람들의 문제이고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눈치 없는

부류의 문제일 뿐이었으니까.


말 그대로 자만이 하늘을 렀다.


그런데 상황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상황은 원래 급속도로 바뀌는 게 정상인가. 여하튼)


꽃길을 예상하며 다시 돌아간 회사는

문제 풀풀 날리며 쩍쩍 갈라진 흙바닥이었고


인원의 1/3을 감원하고도 성이 안 찬

최상위 포식자는

투자 아닌 투자를 운운하며


눈에 보이는 매출과 수익에 연계된 활동만을 요구

보기 좋을 보고서를 면면히 제출하라고 했다.


당연히 전 주와 다른 결과물이 들어있어야 한다.

이어, 의사 결정을 위한 페이지 필수나.


최상위 포식자가 한주에 하나씩 결정하면

대표는 뭐하러 있고

실무는 어느 세월에 하라는 걸까. 하는

고민은 지금 사치일 뿐이다.


진절머리나는 요구에

바락바락 구색이라도 맞추는 나와


그것마저 힘겨워 다른 직원에게 맡겨놓고

발표(?)하나 제대로 못해서

대놓고 욕먹는 내팀 같은 남의 팀을 보며

매주 자괴감이 든다.


그들은 왜 그 자리이고

나는 왜 이 자리 일까


나는 왜 말도 안 되는 그들의 요구의 부합해야 할까

자기들도 모르는 답을 왜 나보고 찾으라는 걸까

인풋 아웃풋의 개념은 과연 몇 년 전쯤 잊어버린 걸까

뻔뻔한 얼굴은 언제쯤 가진 것일까

나도 뉴스와 정보를 듣고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르는 걸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또 다른 임원진에 sos를 쳤지만 제자는 보호되었고 책임은 부메랑처럼내게 돌아왔다.


도대체, 는 왜 일 위해

내 머리와 감정과 시간을 이토록 쓰고 있는 것일까?


경제가 어려우니

즉각적인 수익에 집중하고

품질관리와 연구개발을 등한시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나라에서도 그러니)


디자인은 치장이고 여태껏 해왔던 활동은 도태된 관습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좁더라도 길은 주어야 할게 아닌가


사람도 인력도 방향도 없는 와중에

현장을 위한 실무도 아닌 숫자가 적힌 서류를 원하는 게

과연 정상인가


안나오는 매출을 무슨 수로

2달안에 30%높이라는 걸까

(이제 1달 남았다)


지들이 50개를 40명이 운영하는 것과

우리가 120개를 13명이 운영하는 것을 비교하는 것이 맞을까


멀티풀 어쩌고라는 이름으로

한명에게 여러가지를 시키며 왜 못하냐고

묻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너는 할 수 있냐고

너같으면 하고 싶겠냐고

회사가 너밖에 없는 줄 아냐고

네가 하라면 안되는 것도 해야하냐고

네 머리.구조가 궁금하다 고


봉건시대가 문득 떠오른다


코딱지 만한 회사에서

지배계층처럼 구는 게 대체 무슨 의미냔 말이다.


상사는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을

그들은 잊은 듯하다.



방향이 조정되길 원하고

가능한 많은 인원이 그것을 이해하길 바라고

머리와 마음으로 만들어진 그것이

진정 회사의 수익이 되길 원하고

책임과 권한에 맞게 잘 나누어지길 원한다.



당신이 틀린 건


당신이 100% 맞고 상대는 100% 틀리다는 것


당신은 선택을 실수했을 뿐이고

상대는 뼛속부터 잘못되었다는 것


당신은 10%의 힘을 더하면서

상대에게는 110%의 힘을 원하는 것


그럼에도 고마움과 위로 격려 방향 이해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눈치가 빠른 나는

당신이 준비 중인 출구전략을 간파했다.


빠른 하선과 잔여 책임 사이에 고민이 깊.


부담인지 미안함인지 무기력인지 원통함인지

뭔지모를 그것 때문에 마음무거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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