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담담히 마주 앉아 내 얘길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놀라지 말고 안 쓰러 하지도 말고
그저 들어만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방법도 방향도 어차피 스스로 찾고 알아서 할 테니
그저 마음껏 터놓고 놀란 마음을 덤덤히 내뱉고 싶다.
그렁그렁한 연민을 가득 담은 눈빛이나
잘한다 잘한다 다독이는 칭찬하는 거 말고
그냥 무던하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ㅡ
여느 때처럼 새벽 5시 조금 넘어 택시를 타고
병원에 왔다.
우리나라 1등, 세계 3등 같은 권위적인 포스터가
나를 안심하게 하는 서울의 큰 병원이다.
3년쯤 먹은 약의 효과인가
아이의 종양은 조금 줄어들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이 모여 전체 회의를 하고
방법을 논의해 보겠다고 한다.
딱히 방법이 없어
병원이란 병원은 다다니며 헤맨 게 엊그제 같고
간접 약물치료만이 최선이라는 판단으로
이제 조금 안정을 찾은 것 같은데
이제 또 바뀔때가 되었나보다
몇 해 전처럼 무슨무슨 치료제가 맞냐
약은 어떤 효과가 있냐 더 묻지도 못했다.
약물을 바꾸거나, 약물을 바꾼 후 수술을 하거나
수술을 하거나 논의해 본다는 것은
'지극히' 이상적인 판단이고 수순이었지만
불안으로 다시금 기어들어가야 하나 이상한 마음에
명쾌히 감사하지 못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담당 의사는 오늘따라 유독 '이해하셨죠?'라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수술'이라는 글자와 '바뀌는 치료법', 어쩌면 그 둘다 가
나의 불안을 더욱 자라게 했다.
무섭고 울적해지기까지 하다.
같이 들은 너도 모를 리 없는데
너무도 무던한 네가 의아해, 굳이 수술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환자의 상황은 환자가 제일 잘 알아야 한다는
쓰잘데기없는 말을 더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너는 이번 주 생일을 맞이해 가는 캠핑과
아마도 미뤄질 6월의 일본 여행을 그리며
싱글벙글하다.
아직 한참 아이인 너에게
심각성을 은연중에 전달하려는 내가 참 못난것 같아
또 미안하고 침울하다.
아무래도 네가 아닌 나를 걱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놀라고 무서운 내 기분을
알아달라고 조르는 것 같기도 하다.
'모쪼록'
의사들의 전체회의가
개인적 이유나 조직의 체계에 의해서가 아닌
아이만을 위한 방법으로 제안되길 빌고 빈다
오늘 또 나는 너무나 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