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팝업 전시 공고를 보고 난 뒤
2025년 5월, POD 서비스(주문형 출판)를 통해 에세이집을 출간하면서 인생의 꿈인 '글을 쓰는 삶'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내 손에 실물 책이 처음으로 들어온 날이 떠오른다. 글공부를 한 적도 에세이를 써본 경험도 없이 낸 책이라 문장은 거칠고 투박하며 내용은 두루뭉술하다. 그러나 반들반들한 종이 위에 검은 잉크가 스며들며 내 글들이 생명력을 얻었음을 실감할 때의 기분이란 어찌나 오묘하던지. 손가락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쓸어보며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행복, 아쉬움, 뿌듯함, 기대 등이 섞이며 만들어낸 비현실적이면서 따스한 무언가였다. 이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을 단 한 순간의 추억으로 소모할 순 없었다. 의지박약 그 자체인 인생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글을 써내려 가고 싶었고, 부끄럽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글을 통해 소통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무턱대고 브런치를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에 합격한 지도 어언 3개월이 지났건만, 나는 아직 브런치를 개인적인 글쓰기의 공간 이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 많은 작가들이 특정 주제에 관한 브런치북을 만들고 연관된 내용의 글을 올린다. 반면 나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 일상 이야기, 그리고 종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글들을 그나마도 불규칙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나 원 참 패기 넘치게 브런치를 시작했으면서 여전히 게으름 피우고 있으니 보통 민망한 게 아니다.
그래도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좋다. 조그마한 일기장에 아무도 못 알아볼 - 심지어 나 자신마저 - 날림체로 생각을 토해내는 게 전부였던 내가, 비록 엉성한 글이라 할지라도 생각과 감정을 정제하고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내가 목표로 한 건 '무엇이라도 계속 쓰는 것'이었으니 이렇게 적고 또 적다 보면 그 글들이 모여 하나의 브런치북이 될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할 때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물어보는 질문란이 있었다. 나는 내가 겪은 어려움과 고민, 그리고 이를 통해 배운 내용들을 나누고 궁극적으론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통해 위로와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리기 전까지 그 마음엔 변함이 없었다. 허나 오픈된 공간에서 글을 쓰는 경험이 처음이기 때문일까? 개인적인 치부와 부끄러운 면을 드러내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압도하고 이런 글들을 쓰는 게 오히려 나 자신에게 손해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나는 본래의 계획과는 조금 다른 상대적으로 가벼운 글들을 '잡글'이나 '일기'라는 미명 아래 늘여놓는 길을 택했다. 물론 이 글들 역시 좋아서 쓰는 것이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엔 약속 아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내겐 이런 주제에 대해 브런치북을 발행할 용기가 조금 생겼다. 감사하게도 주위에서 응원해 주는 분들도 계시며, 나도 이렇게 일상적인 글들로 브런치를 채우는 것에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주저하는 마음이 남아있으니 실제로 글을 쓰게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숨기며 살다가 갑자기 폭발해서 책을 냈듯이, 분명 언젠가는 미친 척하고 원래 쓰려던 글을 쓸거라 믿어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로 힘들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특히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유려하고 매력적인 글을 생산하고, 유튜브와 쇼츠 등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난립하는 지금 시대에 직접 글을 쓰는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표현하고 싶어 하는 인간 본연의 마음 때문이 아닐까? 나 역시 마찬가지고.
일상에서 우연히 떠오른 글감에 기뻐하며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린다. 한 줄기 섬광처럼 영감은 사라지고 하얀 화면 앞에서 머리를 싸매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다 갑자기 문장이 물 흐르듯 탄생하고 막히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묵혀둔 글들을 다시 읽으며 부끄러움에 몸서리를 치기도, 의외의 성과에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독이 든 성배 같은 이 경험들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 설령 글쓰기가 내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지 못할지라도 - 그럴 확률이 아주 높고 -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그래서 브런치에 고맙다. 무수하고 유구한 인류의 역사에 내가 작가로서 활동한 작은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 10주년을 축하하고,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고통보다는 행복이 조금 더 많은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아자아자 우리 모두 파이팅!!
(역시 이번에도 급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