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7
가정의 달 5월엔 많이 웃으셨나요? 무엇이 당신을 웃게 만들었나요? 웃던 날을 떠올리며, 사진첩을 돌아보며 5월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세요.
대략 5,6년 전부터 나는 사진을 잘 안 찍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카메라 렌즈에 내 모습이 비치는 것을 피했다. 우울증 약의 부작용 (이라고 믿고 싶지만) 때문에 30kg 넘게 살이 찐 뒤부터 나는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고서는 피사체가 되기를 거부했고, 자연스레 내 핸드폰 갤러리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채로 옷장 한 구석에 쳐박혀있는 오래된 졸업 앨범마냥 내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몇 년간 사진과 거리가 먼 삶을 살던 나는, 치열한 내적 투쟁과 갈등 끝에 미약하게나마 '변해버린 지금의 나' 를 받아들일 결심을 했고, 찬란하고 눈부셨던 과거의 나에게 애써 이별 인사를 건넨 뒤에야 조금씩 카메라 앞에 설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갑자기 내 사진첩, 그러니까 핸드폰 갤러리가 풍부해진 것은 아니었다. 우선 오랫동안 사진을 찍지 않은 덕(?)에 사진을 안 찍는 편리함에 익숙해진데다 여기에 게으른 성미까지 더해지니 핸드폰 카메라를 키는 것도 귀찮기 짝이 없었다. SNS도 하지 않는데다가 굳이 사진까지 찍어가며 기억 속에 남기고 싶을 정도로 즐겁고 멋있는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이런 말을 하면 손가락질을 받거나 욕을 먹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감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풍경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 사진을 찍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비록 예전보다는 사진의 양이 풍부해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갤러리 업데이트 속도는 느릿느릿하기 짝이 없었다. 한번 찍고 확인도 채 하지 않은 사진도 제법 많아서, 나중에 혼자 사진첩을 훝어보다 "이런 걸 찍었다고? 언제?" 라며 놀라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글감을 받아보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5월에 에세이 출간 때문에 너무 바빠서 사진 찍은 거 없을건데.' 가 전부였다. 물론 글감을 주신 운영자분의 의도는 꼭 사진에서 영감을 얻으라는 뜻이 아니고, 말 그대로 5월 전체를 나름의 방식대로 회고하고 정리하라는 것이겠지만 이상하게 나는 '사진첩'이라는 단어 하나에 말 그대로 필(feel)이 꽂혔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갤러리에서 웃음을 발견했으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5월의 갤러리 속 나는 꽤 여러 활동을 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으며, 무엇보다 제법 즐겁고 행복해보였다. <오늘부터 나도 작가!> 프로젝트에 집중하느라 바쁘고 정신없는 한 달을 보냈다고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 사이 사이 여러 일들이 있었다는 점이 의외였다. ('이렇게 마구 돌아다녔으니 제일 중요한 글 퀄리티가 떨어지는 거지' 라는 통렬한 자기 반성도 하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사진이 찍힌 날짜를 착각한 거라 생각했다. 나는 핸드폰 인터페이스를 러시아어로 설정해서 사용하는데, 이렇게라도 러시아어를 접해야 배운 것을 덜 잊어버릴것이란 계획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라서 오히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거나 단어를 헷갈리는 일들이 몇 번 있다보니 이번에도 3월 (Марта)과 5월 (Май)을 헷갈린게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뭐야, 나 제법 알차게 살았네? 웬일이지?"
비록 사진 속 내 얼굴을 하나같이 피곤하고 지쳐보였지만 동시에 묘한 만족감이 엿보이는 표정이었다. 제일 웃긴 사진은 무슨 자신감에선지 새벽 4시에 찍은 셀카였는데, 날짜를 확인해보니 에세이 마감을 앞두고 며칠간 밤을 새던 때였다. 다시 그 때를 떠올려보면, 지금 내가 이 시간까지도 안 자고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며칠간 머리도 못 감은 후줄근한 상태를 기념으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으로 필터도 보정도 하나 없는 적나라한 셀카를 찍었었다. 그런 탓에 눈 밑의 다크서클, 기미와 온갖 잡티, 생기 없는 피부와 죽은 동태처럼 초점없는 눈빛까지 전부 오롯이 드러나있건만 그 와중에도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모습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나원참 무슨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도 아니고 이 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싶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한 몰입의 즐거움인가 싶다.
앞에서 나름 알차게 살았다고는 하지만, 사실 글쓰기를 제외하면 5월동안 내가 한 활동들은 정말 작고 사소한 일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소위 말하는 갓생살기처럼 엄청난게 대단한 것들, 예를 들면 살을 확 뺐다거나, 혹은 공부를 매일 꾸준히 했다거나, 미라클 모닝 등 자기 계발을 위해 치열하게 산 것도 아니다. 정말 열심히 사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얘는 무슨 이런 것을 가지고서 잘 살았다고 자기 만족을 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볼 때는 정말 사소한 것일지 몰라도, 사진 속 내 웃는 얼굴은 내가 정말로 오랜만에 진심으로 만족스럽고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믿고 싶다. 진짜로 작고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경험을 통해 내가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특히나 그 일들이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추억을 만드는 일이었다면 더더욱.
우울증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은 잘 알것이다. 작고 사소한 일에서 행복과 감사를 느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이게 내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는 점을. 그런 점에서 이번달은 제법 우울증 극복의 과정으로도 의미있지 않았나 싶다.
그건 그렇고 풍부했던 5월의 사진첩과 별개로 6월에 들어서자마자 사진첩이 텅 빈게 '이번주 나 참 정말로 열심히 놀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살짝 얼굴이 붉어진다. 열심히 5월을 살았으니 이번주는 조금 쉬어간다고 생각하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