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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현 Mar 31. 2022

32. 2년 만에 첫 휴가.

처음 겪어본 우울증.

첫 휴가.


옥소폴리틱스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1주일짜리 휴가를 갖게 되었다. 그동안 여행도 다니고 간간히 휴가도 썼었지만 휴가지에서도 미팅을 진행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열심히 일하는 우리 팀원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필요할 때 내가 있고 싶었다. 그런데 2년간 쌓인 피로가 우울감으로 덮쳐왔다.


난 평생 내가 우울증을 겪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자신감 과잉이 문제였지 자신감이 없을까 봐 걱정할 일은 없었다. 늘 긍정적인 면을 보았고, 힘들면 쉬었고, 게임도 많이 하고, 골프도 치곤 했다. 사업도 기적과 같은 성공을 이어갔다. 아직 매출 없는 스타트업이지만 두 번의 투자유치와 15만 명의 월간 사용자를 갖는, 정치 스타트업으로는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너무나 우울했다. 불안하고 힘들었다. 회사의 미래에 대해 기대에 찬 생각을 하다가도 다음 순간 회사가 망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옥소폴리틱스 앱을 보면서 모든 정치색이 함께하는 기적 같은 성공으로 보이다가도 버그 많고 허접하고 여전히 사람들끼리 싸우는 앱으로 보이기도 했다. 투자자들이, 사용자들이, 페이스북 친구들이, 지인들이, 다른 스타트업들이 옥소폴리틱스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늘 불안했다. 많은 사람들이 칭찬해 줬고,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 줬고, 많은 사람들이 의심했고, 어떤 사람들은 말은 안 했지만 한심해했다. 그 모든 눈빛과 코멘트들은 감사하면서도 중압감으로 쌓여갔다.


사업을 하면서 할 수 없는 말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원래 부주의하게 필터 없이 말을 쏟아내는 일이 많은 미숙한 나였는데 내 말과 행동과 표정에 회사의 이미지와 존망이 걸리게 되니 말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졌다. 나를 처음 만난 한 사람은 나에게 ‘어딘가 눌려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표정도 인상도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같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안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 시간이었다.


스타트업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겪거나 과로로 몸이 망가진다. 나는 정말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왔고 정신적으로도 건강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매일의 중압감과 업무량과 스트레스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아내도 많이 걱정하고 아빠랑 놀다가 같이 잠자리에 들고 싶은 딸은 아빠가 밤에 사무실에 나갈 때 서럽게 울곤 했다. 태어난 지 6개월이 된 둘째를 위해 새벽마다 일어나서 분유를 주는 것도 피로 누적에 일조했을 것 같다.


그래서 갑자기 멈췄다.


매일 코드를 쓰고, 매일 미팅을 하고, 매일 전략을 짜던 모든 것을 멈췄다. 모든 크고 작은 미팅을 불참으로 바꿨다. 그리고 잤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낮시간에 낮잠을 몇 시간씩 잤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갔다 와서 시차 적응이 안 된 때처럼 계속 잤다.


자고 나니 우울감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머리가 텅 빈 느낌이었다. 그동안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싶었던 옥소폴리틱스에 대한 생각을 비워냈다. 플레이스테이션을 잡고 게임도 하고, 아내와 드라이브도 했다. 골프 연습도 하고 딸아이와 동네 도서관도 갔다 왔다.


며칠간 옥소폴리틱스 앱도 켜지 않아 보았다. 그러고나니 돌아오지 않는 사용자들의 마음도 조금 더 이해할 것 같았다. 그동안 헤비 유저의 시각에서만 앱을 바라봤던 것 같다. 


3일째가 되니 또 사무실이 그리워서 사무실에 나와 글을 쓰고 있다. 그래도 빨리 정리하고 집에 가야겠다. 휴식은 힘들어서 쉬는 것도 중요하지만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한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전략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여행도 가지 않고 그냥 집에만 있으면서 일주일의 휴가를 보내고 있다. 그러는 동안 우리 회사 옥소폴리틱스는 잘 있는 것 같다. 전 직원이 자신의 전문성에 맞는 결정권을 가지는 역할 조직은 나와 우리 팀원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 같다. 나 없이도 중요한 결정들이 착착 진행되는 것이 채팅을 통해 보였다.


옥소폴리틱스는 2년을 달려왔지만 이제 첫 계단을 올랐다. 이제야 아래 그림에서 1단계를 간신히 마친 상태이다. 앞으로 정치와 시민들이 연결되는 2단계, 시민들이 직접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를 실험하는 3단계로 가기까지 처음 생각보다 꽤 긴 여정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곳에 다다르면 또 다른 도전과 희열과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뭐 어쩌겠나? 가봐야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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