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졸업
옥소폴리틱스 창업 초기, 제가 CEO와 CTO 역할을 겸임하고 있었습니다. CTO라기보다는 혼자서 코딩을 다 하는 1인 엔지니어링팀에 가까웠지만요. 그런데 저는 7년간 백엔드 엔지니어로 일해서 프론트엔드와 모바일 경험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프론트엔드 쪽은 제가 리액트를 배워가면서 해 나갔고, 네이티브 모바일 앱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웹앱 정도로 웹과 앱을 한 번에 만드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래도 웹 기반 앱은 사용성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창업한 지 4개월 정도 되었을 때, 다른 기업의 CEO이신 고대우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우님은 플러터 전문가이자 모든 플랫폼을 다루실 수 있는 해커였습니다. 대우님은 저에게 역할조직을 적용하기 위한 기업 문화 자문을 구하러 오셨었는데요, 저희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뜻밖에도 CTO로 합류하시겠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당시 저희는 CEO 연봉도 3000만원이 채 안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대우님은 초반에는 연봉을 거의 받지 않더라도 옥소와 함께하고 싶다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대우님께서 옥소에 합류하시면서 얻고 싶다고 하신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1. 실리콘밸리식 역할조직을 체험하고 체화하고 싶다.
2.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만큼 연봉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는 1번은 확실히 경험하고 실리콘밸리 회사들보다 더 좋은 기업문화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드렸습니다. 그리고 2번은 제가 당장에 그만한 연봉을 드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시장에서 그 정도 가치가 있는 분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다소 주제넘고 과감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스타트업에 조인하면서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고 많은 것을 배워 새로운 레벨의 몸값을 만들 수 없다면 조인할 이유가 없는 것이기에 당연한 약속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대우님은 눈부신 기여를 하셨습니다. 플러터를 도입하여 세 달 만에 옥소폴리틱스 안드로이드/iOS 네이티브 앱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파이어베이스를 십분 활용하여 생각보다 어려웠던 푸시알림 시스템을 함께 설계하고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리더십을 발휘해 주셔서 엔지니어링팀을 10명 수준으로 키워주셨습니다. 엔지니어링 문화와 기본 규칙을 잘 정립해 주셔서 신규 직원이 와도 쉽게 적응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옥소의 문화를 처음 경험하는 이들에게도 우리 문화를 잘 설명해 주셔서 시키는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로 변모시켜 주셨습니다.
덕분에 옥소폴리틱스의 엔지니어링팀은 근태관리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팀이 되었습니다. 모두 재택으로 무제한 휴가로 일하면서도 퍼포먼스 관리는 최고 수준이었다고, 그래서 옥소폴리틱스의 웹과 앱이 지금의 발전된 모습이 될 수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아직도 부족함이 많지만요.
그런데 1년 반쯤이 지난 시점에 대우님께서 연봉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비해서는 많이 드리고 있지만 대우님의 실력에는 한참 못 미치는 연봉을 드리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회사 인터뷰를 권해 드렸습니다. 인터뷰를 보셔서 저희가 감당할 수 없는 연봉을 제안받으시면 저희가 보내드리고, 그렇지 않으면 최대한 맞춰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대우님은 몇 번의 인터뷰만에 저희 회사에서 드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제안받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동안의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습니다. 1번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왔지만 드디어 2번 약속까지 지킬 수 있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대우님을 떠나보내는 것은 분명 우리 엔지니어링팀의 기둥뿌리가 뽑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다른 엔지니어분들이 많이 성장하셨고 저와 리드 엔지니어분들이 힘을 합쳐 그 빈자리를 메꿀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우님은 오히려 당황스러워하셨습니다. 저와 우리 팀과의 관계가 어그러지진 않을까, 옥소폴리틱스가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많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많은 걱정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서의 경험을 생각해보면 그러한 걱정들은 사실 어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트위터와 에어비앤비의 Alumni, 즉 졸업한 동문입니다. 트위터와 에어비앤비의 배신자나 먹튀나 능력 없어서 잘린 사람이 아니고, 트위터와 에어비앤비를 거친 가족입니다. 지금까지도 실리콘밸리 친구들은 전 회사들에서 함께 일한 동료들입니다. 매니저들도 물론이고요. 아직도 저는 그 네트워크 안에서 실리콘밸리 생활을 하고 있으며 저를 규정하는데 저의 이전 회사들은 아주 큰 부분입니다. 그리고 문서화를 잘해 놓고 인수인계를 잘해 놓으면 제가 떠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대우님은 이제 옥소폴리틱스를 졸업하게 되셨습니다. 옥소폴리틱스에서 배울 것이 있어서 오셨던 분이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시고 옥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주셨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옥소폴리틱스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분이 되셔서 새로운 곳에 새로운 기여를 하러 가게 되셨습니다. 마치 손흥민 선수가 함부르크 구단에서 후보로 입단해서 에이스가 되었다가 함부르크 구단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큰 선수가 되어서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으로 이적한 것 같이, 대우님도 옥소폴리틱스의 리더로서 큰 기여를 해 주시다가 더 큰 기회가 있고 그 가치에 합당한 보상을 드릴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되셨습니다.
졸업 동문은 늘 우리와 함께합니다. 제가 잘 되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내면 모교 연세대학교에도, 거쳐왔던 트위터와 에어비앤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대우님이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시면 옥소폴리틱스의 이름도 함께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대우님을 보고, 대우님의 이야기를 듣고 옥소폴리틱스에 합류하는 분들도 많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이제 옥소폴리틱스를 졸업하시는 우리의 CTO 고대우님께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 옥소폴리틱스와 따로 또 함께 더 크게 성장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제 개인적으로는 친구로 지냅시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