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이길..
키오스크에서는 줄을 서서 옥소폴리틱스의 성향 테스트를 하고 자신의 부족을 알리는 동물 스티커를 받아가고 있었다. SBS에서 마련해준 대형 키오스크 4개는 크고 영광스럽게 서 있었다. 우리의 2년 반의 노력이 새겨진 승전비 같았다.
DDP의 광대한 무대를 휘감은 화면에 내 얼굴과 옥소폴리틱스의 이름이 가득 그려졌다. 나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걸음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하며 리허설 때 연습한 대로 무대 한가운데, 하얀 테이프로 T라고 표시된 자리를 찾아서 섰다. 세 대의 프롬프터가 옥소폴리틱스의 이야기를 읽어주고 있었다.
유발 하라리 교수, 유현준 교수, 에어비엔비 CTO였던 네이트, 대통령 후보였던 윤석열, 이재명, 안철수, 심상정, 그리고 세계적인 정치학 석학들이 섰던 그 자리에 옥소폴리틱스가 “모든 사람의 모든 생각”을 데이터화 하여 보여주고, 다양성의 정치에 대한 미션과 비전을 이야기했다. 꿈만 같다기 보단 미처 꿈꿔보지도 못한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옥소폴리틱스에는 매주 5만 개의 OX데이터가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콘텐츠 팀이 정성 들여 뽑은 질문에는 매일 의미 있는 수의 통계와 댓글이 달리고, 그 데이터는 언론을 통해 포털 뉴스에 연일 올라갔다. 우리는 정치 스타트업으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여러 정치인과 언론, 시민단체로부터 옥소폴리틱스와의 협업에 대한 문의가 들어왔고 여러 건의 유료 이벤트가 성사되었다.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짜리 프로젝트들을 성공적으로 유치하고 그에 맞는 결과들을 냈다. 수많은 투자자 분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 주셨고, 정말 감사하게도 옥소폴리틱스의 비전에 투자해 주셨다.
그런데 겨울이 왔다.
스타트업의 투자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었고 많은 펀드 조성이 실패하였다. 양적 완화로 인한 제로금리 시대가 끝났다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어서 여러 유튜브 채널을 전전했다. 스타트업들에게 큰 위기가 올 것이라고 했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투자사에 투자할 계획이었던 사람들이 고위험 투자에서 자금을 빼 고이자 안정 자산으로 돈을 옮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뭐 당장 나부터 주식에서 돈을 빼서 현금 보유를 늘리고 있으니까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돈의 끝에 스타트업들이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올지는 몰랐다. 우리는 아직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사용자 수도 좋았고, 지표도 좋았고, 비즈니스 기회도 싹을 틔우고 있었고, 투자 커밋먼트도 좋았다.
그런데 투자 펀드 조성이 계속 늦어졌다. 납입 시점은 계속 뒤로 미뤄졌다. 많은 투자사가 미래의 꿈보다는 지금의 매출에 집중하여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돈이 급속히 떨어져 갔다. 스타트업의 겨울은 이렇게 옥소폴리틱스에게 얼음 비수가 되어 꽂혔다.
지난 1주일은 옥소폴리틱스에게 가장 화려했던 한 주였다. SBS 창사 특집으로 마련된 D Forum를 통해 옥소폴리틱스의 이야기가 공중파를 탔다. 그리고 옥소폴리틱스 내부적으로는 가장 고통스러운 한 주였다. 21명 중 처음에는 한 두 사람만 물러나고 정리를 하려고 했다. 그러다 계속 투자사들로부터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서 우리는 2년 전 1년 예산 2억 5천만 원으로 시작했던 상황까지 돌아가야 하는 상황임을 직시해야 했다.
21명의 직원을 7명으로 줄여야 했다.
처음에는 레이오프가 저성과자를 내보내는 문제라 생각했다. 모든 팀원들이 모여 특별 성과 평가를 거쳐 레벨과 성과가 안 맞는 분들을 내보낼 계획을 이야기하고 다 같이 합의했다. 그런데 옥소폴리틱스에 저성과자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입사 후 첫 3개월 평가로 초기 성과가 안 좋은 분들은 옥소폴리틱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1월, 7월 정기 평가에서 모든 구성원이 정확히 기대치와 성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고 성과가 안 좋으면 대부분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났다. 많은 분들에게 회사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떠났다.
레이오프는 옥소폴리틱스의 비전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21명짜리 팀과 7명짜리 팀이 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경기는 다르다. 23명이 있던 축구팀에서 팀 기여도 순으로 11명을 남기면 어떻게 될까? 골키퍼가 한 명도 안 남을 수도 있고, 공격수가 5명이 될 수도, 수비수만 7명이 될 수도 있다. 퍼포먼스로 팀원을 내보내는 것은 평소 인사평가에는 적절할 수 있지만 레이오프에서는 매우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래서 실리콘밸리에 있을 때에도 레이오프는 성과와 무관하지는 않지만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고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단순히 각 포지션별로 최고만 남기는 문제도 아니었다. 21명의 팀과 7명의 팀의 팀원들은 다른 능력들이 필요하다. 21명일 때 중요했던 피플 매니지먼트는 갑자기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된다. 뛰어난 협업 능력보다는 일당백의 팀원이 필요해진다. 뛰어난 시니어 멘토쉽은 가르쳐 줄 주니어를 잃게 된다.
올 핸즈에서 발표를 한 후 한 분 한 분께 전화를 해 감사함과 미안함, 그리고 작별의 슬픔을 나눴다. 다들 안타까운 마음으로 위로해 주었다. 모든 멤버가 어디에 가서도 뛰어나게 잘할만한 인재들이고, 옥소에서 받은 것 이상의 연봉을 받을 분들이었다. 그래도 헤어짐은 언제나 큰 슬픔과 고통을 동반한다. 맥북을 펼치면 가득했던 우리만의 세상에 열의로 가득 찼던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갔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내가 아니라 힘든 일을 감당해내는 유찬현 COO가 있었다. 인생 최대 무대에 서 있는 CEO 뒤에서 밤새 고민하고 예산과 싸워가며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고, 심지어 플러터 엔지니어링도 배워 코딩까지 해 내고 있는 그를 보며 ‘천재인가?’라는 생각을 수십 번 했다. 평생 나는 똑똑한 형이었고 그는 부족한 동생이었다. 학교 성적은 그러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것을 내면화했다. 잘난 형과 부족한 동생. 그 프레임을 그도 받아들였던 것 같다.
40년을 함께한 지금 우리는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가 못 하는 것을 해내는 찬현이와, 찬현이가 못 하는 것을 해내는 나를 보며 우리가 다른 재능을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도, 그리고 얼마나 큰 교만과 상처를 부르는지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폭풍 같은 1주일이 지났다. 배 꼭대기의 망루에서는 “육지다!”를 외치고 있었고, 하늘은 갑자기 바뀌어 비바람이 몰아쳤고, 배는 서서히 침수되어 가라앉고 있었다. 선실에서는 누가 이 배에서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는지, 누가 마지막까지 함께해야 하는지를 차갑고 빠르고 침착하게 선택하고 있었다.
금요일이 지나고 고요해진 바다. 선상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지 않았고, 많은 것들이 바다로 떠내려갔다. 배는 간신히 침수를 막고 균형을 되찾았다. 그렇게 또 항해는 이어진다.
슬프다.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저기 멀리 육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