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세상은 다양해서 아름답다
미국에서 산지 15년이 되었다. 그동안 캘리포니아, 텍사스, 위스콘신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돌아보면서 마음 한편에 깊이 박혀있던 감정 하나를 발견하였다. 바로 “트라우마"였다.
미국은 참 좋은 점이 많다. 넓고 편하고 여유 있다. 도전에 언제나 열려있고, 도전의 결과와 보상이 매우 크게 주어진다.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다.
외국인들에게도 열려있다. 한국, 일본, 중국, 이란, 인도, 백인, 흑인, 프랑스인, 독일인 등등이 한 도시에 모여서 평화롭고 즐겁게 사는 것이 가능한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단연코 전 세계에서 미국 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녔던 에어비앤비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올림픽 개회식을 바라보는 것 같다.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이 회사에 들어서고 각자의 발음과 표현으로 영어를 한다. 성별도 남, 녀 외에도 다양한 성별이 존재한다. 성별을 바꾼 사람, 같은 성별을 좋아하는 사람 등 다양성이 넘쳐난다. 장애인도 아무 거리낌 없이 회사에 다닐 수 있다. 각기 너무나도 다른 모두가 회사가 잘 되는 미션을 위해 하나가 되어 일한다. 물론 그러다 떠나기도 잘한다. 일을 할 때에는 하나가 되지만 헤어질 때에는 또 깔끔하게 떠나서 새로운 팀을 만난다.
이러한 다양성은 실리콘밸리의 원동력이다. 다양성이 없는 집단은 변화에 살아남기 힘들다. 다양성이 없는 동물은 자연의 변화 앞에 멸종하곤 한다. 다양성이 없는 회사도 최적화된 환경에서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지만 세계적인 흐름의 변화 속에 더 취약한 회사가 되곤 한다.
그런데 다양성은 불편하다. 나의 트라우마는 그런 것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소통의 비용이 많이 든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것은 동일 문화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하나를 가르쳐 주었을 때 10가지를 판단하면 9가지의 오해를 만드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를 말하기 위해 10가지 오버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것이 다양성의 상황이다. 또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대방이 나를 좋아할지 싫어할지, 싫어하는 티를 내는 건지 알기가 어렵다. 남들 신경 안 쓰고 살던 내가 오히려 미국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이웃에 중국인, 미국인, 인도인, 흑인이 섞여 있는 상태에서 마음 깊이 정을 나누는 사람들을 찾기는 너무 어렵다. 말도 잘 안 통하고 문화 코드도 잘 안 맞는다. 내가 실패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 많은 미국 교포들이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회사 내에서나, 사회에서나, 심지어 가정에서도 다양성은 많은 불편함을 야기한다. 한국에 와서 미국의 Hate Speech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을 한국사람들이 편하게 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많다. 인종 차별, 동성애자 차별에 해당하는 이야기들, 극혐하고 너무 싫다는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문화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슬프고 무서운 일이지만 다양성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싫을 수도 있다. 그게 종교적인 이유든, 그냥 마음의 불편함이든 충분히 그럴 수는 있다.
한국은 이제 다양성의 국가에 초입에 들어섰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함께 호흡하기 시작했다. 다양성은 불편하다. 그렇지만 다양성은 역동성을 낳고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변화에 강한 체질을 만들어낸다. 세력이 커지면 다양성은 생길 수밖에 없다. 작은 마을에는 다양성이 적지만 나라가 커지면 지역색이 생기고, 제국이 되면 다양한 문화권이 들어서게 된다. 경제 대국이 된 대한민국에도 다양한 문화권의 침투가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 지금 우리의 태도와 생각들이 향후 대한민국의 다양성을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