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세상 vs. 편안한 세상
내가 읽어본 SF 소설이 많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소설 두 개가 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Douglas Adams)” 와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Aldous Huxley)"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영국 특유의 유머가 가득한 작품이다. 너드들에게 경전과 같은 책이기도 하다. 영화도 잘 만들어져서 조이 데이셔넬(Zooey Deschanel)의 초기의 오묘한 매력이 넘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강추하는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 멋진 신세계는 모두가 행복한 미래 통제사회를 보여주는 고전이다.
주어진 계급에 만족하도록 교육.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계급과 역할을 받아들이고 어릴 때부터 철저히 계급 간 분리와 세뇌로 인해서 다른 계급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높은 계급은 낮은 계급으로 태어나서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낮은 계급은 높은 계급으로 태어나 머리 많이 안 써도 된다고 좋아하는 사회이다.
소마(Soma). 소마는 이 사회의 중요한 통제 수단이다. 불안이나 고통, 혹은 불만을 느낄 때 소마를 복용하면 즉각적인 행복감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약물은 부작용이 거의 없고 중독성도 없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은 필요할 때마다 부담 없이 소마를 복용하며 삶을 무감각하게 살아간다. 소마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깊이 고민하거나 불만을 품지 않고, 그저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가족 제도의 부재도 이 사회의 특징이다. 사람들은 인공 자궁에서 태어나며,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사회적 계급에 따라 자라난다. 부모라는 개념도 없고, 애정 어린 가정생활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오직 사회에서 제공하는 역할과 지시대로만 살아가며, 감정적으로 얽히는 관계는 거의 없다.
성적 관계는 단지 쾌락을 위한 것이며, 감정적 유대나 헌신은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성적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쾌락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런 방식은 감정적인 불안정성을 줄이고, 개인 간의 깊은 관계를 형성하지 않도록 만들어 사회 전체가 안정적이고 통제된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노화 방지는 모든 사람들이 나이 들어감에도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는 또 다른 통제 수단이다.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늙지 않으며, 죽음조차도 더 이상 두려운 일이 아니다. 노화의 과정을 겪지 않고 평생 동안 육체적으로 젊은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나 고민 없이 사회가 제공하는 삶을 받아들인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존(John)은 통제받지 않고 자신답게 살고 싶어 한다. 존은 자유의 상실과 감정의 부재에 환멸을 느끼고 진정한 인간다움을 찾아 떠난다.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만난 진정한 인간다움에는 멋진 신세계에는 없는 늘어진 몸매, 늙음, 더러움이 존재한다. 존의 인간답게 살려고 하는 노력은 결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결국 구경거리가 되어서 결국은 자살은 선택한다.
수십 년 전부터 이런 사회는 인류에게 올까, 온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얼마 전 AI와 미래세계에 대해 토론을 하다가 대한민국이 이미 멋진 신계계와 너무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는 디스토피아도 아니고, 100% 소설과 같을 수도 없다. 그런데 한국을 보면 정말 편안한 통제사회에 이르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나의 미래는 내가 정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사회와 부모가 정한다. 사회가 정해놓은 “좋은 길"에 모두가 달려들어서 가려고 하고 그 길에 갈 수 있는 평가 방법, 얼마나 공부 잘하는지로 모든 사람을 평가한다. 그리고 성적은 부모의 자산과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세대 간 경제력의 대물림 : 청년층의 노동시장 성과에 대한 금수저 프리미엄(Golden-spoon Premium) 효과 추정, 2022, 오태희, 이장연). 고착된 계급과 그에 따른 주어진 삶을 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청년 세대가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말도 나오지만 그들의 도전정신이 부족하다기보다 사회 구조가 이미 열심히 해서 뒤집기에는 너무 고착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소마. 한국은 도파민의 천국이다. 힘든 직장생활, 학교를 보상하기 위한 쉬운 도파민은 널려있다.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K-pop, 영화 등 뛰어난 문화상품에서 시작해서 한국 직장인의 3대 영양소로 알려진 니코틴, 카페인, 알코올까지. 마약같이 위험한 것은 비교적 잘 통제되고 있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도파민 물질은 너무 쉽게 우리 주변에 다가와있다.
아이를 안 낳게 되는 것도 자아실현이 제한적인 사회의 특징이다. 자아실현은 사회적인 커리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궁극의 자아실현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사랑하고 섹스하고 애를 낳으라고 명령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억누르지 않는다면 이 유전자는 많은 출산으로 이어진다. 사랑과 섹스와 출산을 좋아하지 않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이미 멸종되었다. 당연히 자식을 남기지 못하니까 소멸한다. 우리는 모두 인류 역사에서 아이를 낳는 데 강력한 의지를 가진 출산과 육아에 성공한 사람들의 중첩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사회는 이러한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 멋진 신세계와 닮아가고 있다. 멋진 신세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인구수 조절을 위해 아기 공장을 운영하고 60세에 안락사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늙지 않는다. 늙음을 혐오하고 죽음과 멀리 떨어진 삶을 산다. 길거리에서 시체를 볼 일이 전혀 없는 것이 우리 인류 역사에서 보면 최근 수십 년의 이야기이다.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K-beauty는 사람들에게 방부제를 먹인 듯 늙지 않게 한다. 이제 늙은 사람은 나이 든 사람이 아니라 관리를 안 한 사람이나 안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어가고 있다.
멋진 신세계 소설에서 존은 인간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I don’t want comfort. I want God, I want poetry, I want real danger, I want freedom, I want goodness. I want sin.”
비과학적인 신을 믿고, 무용한 감정에 집착하고, 내가 스스로 판단한 선을 가지고, 죄 지을 자유. 이러한 자유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을 끌어내고, 이것이 공산주의가 비판했던 자본주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세상은 인간의 욕망을 바탕으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할 때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다.
지난 4년간 “사업"을 경험하면서 알게 된 것이 이것과 맞닿아 있다. 평생 배운 “좋은 직원이 되는 방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위험하고, 감정에 휩쓸리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자리. 그런데 사업을 하고 나면 직장인으로 돌아가기 정말 힘들어지는 이유는 바로 자유에 맞닿아 있다. 나와 내 일을 내가 정하고 내가 이끄는 위험 천만하고 짜릿한 경험은 다시 안정적이고 통제된 회사로 돌아가기 어렵게 하는 면이 있다.
AI시대, 이제 본격적으로 더 안전하고, 더 재미있고, 더 편안하고, 더 자유로운 세상이 우리에게 열릴 것이다. AI를 이용해서 우리는 우리 사회를 더 통제해 나갈 수도 있고, 아니면 일은 AI에게 시키고 더 자유롭게 살 수도 있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우리에게 전에 없던 부가 주어졌을 때, 현재까지 우리가 선택한 것은 더 편안하고 안전한 사회였다. 반면 미국이 선택한 것은 더 위험하고 엉망인 자본주의 극단의 빈부격차 가득한 사회였다. 무엇이 더 낫다고 단언할 수도 없고 수많은 요인이 있기에 단순화해서 생각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지향점은 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의 미래를 더 자유로운 세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 더 편안하고 안전한 세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 이는 AI가 주는 필연이 아닌 우리의 선택의 영역이다. 물론 자유롭고, 편안하고, 안전한 균형잡힌 세상으로 만들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