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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현 Oct 12. 2024

3. 전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전 슈퍼휴먼입니다.

일잘러도 아닙니다. 슈퍼휴먼입니다.

“보고서 부탁해요.”


30분 후에 10장짜리 보고서를 완성해서 가져갔다. 퀄리티도 상당히 높았다. 사람이 며칠은 걸려서 연구하고 써야 할 내용이었다. 쭉 읽어보시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빨리 이걸 다 썼어요? 참 똑똑하게 일 잘하는구먼!”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전 슈퍼휴먼입니다.”


물론 “감사합니다”까지만 말하고 마지막 말은 하지 못했다.


AI를 모든 일에 도입한 이후에 회사에서의 일이 엄청나게 빨라졌다. 처음에는 AI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과의 퀄리티로 당연히 AI를 써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었다. 


전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똑똑한"을 어떻게 정의하냐의 나름이지만, 나는 완벽하게 똑똑한 사람은 아니다. AI와 스마트폰에 절여진 나는 어느새 긴 글을 잘 읽지 못하게 되었다. 긴 글을 읽다 보면 답답하고 빨리 다른 일을 하고 싶어 진다. 기억력도 좋지 않다. 그래서 책 내용을 다 읽고 학습하기보단 요점만 간단히를 선호한다. 그리고 그렇게 요점만 가지고 일을 하다 보니 디테일이 항상 부족했다. 빠르게 일을 처리하지만 급하고 빠지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았다. 


실리콘밸리에서 엔지니어 생활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진득이 앉아 코드와 다큐멘테이션을 다 읽고 전체적인 이해를 하는 것을 정말 못 했다. 귀찮아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못했다. 노력해도 안 되었다. 뇌 구조의 문제인 것 같다. 새로운 인사이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잘했고 빠르게 코딩을 하는 것은 잘했다. 그런데 차분히 전체를 이해하고 꼼꼼하게 버그 없는 코드를 만들어 내는 것은 진짜 못 했다. 그래서 나는 시니어 엔지니어가 끝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스태프 엔지니어가 되려면 다른 사람들의 코드를 꼼꼼히 읽고 리뷰를 해 주는 능력이 필수였다. 나는 그걸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노력을 하면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걸 못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각자 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 암기를 잘하는 사람, 운동을 잘하는 사람 각각 다 다르다. 우리는 노력으로 커버할 수 있다고 배웠고 노력해 왔다. 내가 내 인생을 즐기기 시작한 때는 내가 못하는 것을 포기하고 잘하는 것만으로 삶을 살기 시작할 때였다. 30대까지만 해도 내가 잘 못 하는 것을 보완할 열정과 여지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40대에 들어서고 나니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전 슈퍼휴먼입니다.


그런데 AI가 나를 보완해 주었다. 긴 글을 읽고 요약해 주는 것은 AI가 제일 잘하는 일이다. 긴 글뿐인가? 내가 궁금해하는 과제에 대해 세상 모든 책을 읽어 관련 정보를 다 요약해 준다. 영어든 프랑스어든 일본어든 상관없이 다 읽고 정보를 요약해 준다. 세상에 떠돌고 있던 홍수 같은 정보를 모두 처리해서 내 필요에 맞게 갖다 준다. 인쇄술이 정보의 확산, 인터넷이 정보의 대중화를 가져왔다면, AI는 정보의 개인화를 가져왔다. 이제 정보의 홍수는 큰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꼼꼼한 일처리 또한 AI가 너무 잘 도와준다. AI에게 내 보고서의 아웃라인을 주고 빠진 거 없냐고 물어보면 너무 잘 빈 공간을 채워준다. “세계 최고의 연구자라면 어떻게 쓸 것 같아?”라고 물어보면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해준다. 코드도 보여주고 리뷰해 달라고 하면 리뷰하고 고쳐준다. 뭐 애당초 코드를 내가 쓰지도 않지만. 


내가 기본 아웃라인을 주고, AI와 아웃라인을 다듬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추가하고 나면,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AI의 전문 영역이다. 영어든 한국어든 상관없이 주어진 내용에 살을 붙여준다. 30분 만에 보고서를 쓰는 것은 미래에는 너무 긴 시간일지도 모른다.


생각만 하면 일이 된다. 일을 다 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생각의 속도, 일의 속도, 사업의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이제 병목은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하는 시간이다. 


슈퍼휴먼이 된다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도, 기억력이 좋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메타인지이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파악하고 못하는 부분을 AI에게 기대고 잘하는 부분은 AI와 강화해야 한다. 


메타인지를 통해 나의 장단점을 알아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AI에게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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