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호현 Aug 05. 2019

다양성은 왜 필요할까?

왜 여성과 성 소수자와 장애인과 소수인종을 배려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면 다양성은 개소리야"


100% 아시아인들의 팀


3년쯤 전에 내가 속해 있던 팀은 23명 중에 19명이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태국과 한국에서 온 나, 그리고 중국계 미국인들을 비롯해 100%가 아시아계였다.


우리 회사는 부트캠프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부트캠프는 입사 후 3주일간 팀을 정하지 않고 여러 매니저들과 상의하여 팀을 결정하는 제도였다. 신입사원들은 팀의 모든 것을 자세히 들여다본 후 신중하게 팀을 골랐다. 매니저들은 그들을 끌어오기 위해 팀의 모든 것을 보여주면서 팀 식사 시간에 초대하기도 하고 팀의 비전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하였다.  


너무 중국인들이 많아 중국어로도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우리 팀을 중국인들은 선호했고 비 중국인들은 선호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 팀은 점점 중국인들이 늘어갔고 정보의 소통도 회사에서 널리 쓰는 메신저인 슬랙보다는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위챗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백 마디 영어보다 한마디 한국어로 전달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인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은 영어로는 문서만 만들고 그들끼리는 중국어로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인이 아닌 엔지니어들은 많은 결정과 논의에서 소외되기 시작하였다.


위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결정권자인 우리 회사의 문화 상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나의 미래, 이 팀의 미래도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몫이었다. 팀 전체 회의에서 나는 우리 팀이 다양성이 없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다양성이 없으면 어떻게 팀의 결정이 한 방향으로만 흐를 수 있고 전체의 동기부여가 저하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내 말에 대해 아주 용기 있게 말을 하였다.


“To be honest, diversity is bullshit. We only hire top engineers.” (솔직히 말하면 다양성은 개소리야. 우리 팀은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데려올 뿐이야.)


우리는 최고의 엔지니어만 뽑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라고요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모두가 말문이 막혔다. 다들 이 말에 반박을 하고 싶어 했지만 누구도 쉽게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모두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인위적으로 비 중국인과 여성과 동성애자 엔지니어에게 공정하지 않은 기준을 들이대어 뽑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저 말은 나를 그 이후 몇 년간 고민에 빠지게 하였다.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다양성을 추구하고 흑인, 여성, 남미계 등 인구수에 비해 현저히 그 수가 불균형한 Under-represented Minority를 많이 채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대부분 백인과 인도인, 중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출처: https://techcrunch.com/2019/06/17/the-future-of-diversity-and-inclusion-in-tech/


그래프를 보면 현격하게 백인과 아시아인들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이는 전체 미국 인구 구조와 큰 차이를 보인다.

2014년 기준 미국의 인종 구성. 백인이 66%, 아시아인은 11%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 https://www.fhgov.com/Business/Demographics.aspx


미국 전체 인구에서 11%에 해당하는 아시인이 66%에 해당하는 백인과 대등한 수준의 점유율을 실리콘밸리에서 가지고 있고 20%에 달하는 흑인은 미미한 수준의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나타낼까?  


1. 실리콘밸리에 다양성이 부족하고 불균형적이다.

2. 백인과 아시아인은 교육 수준이 높다.


이 두 가지 모두가 맞다. 실리콘밸리에서 면접 시에 백인과 아시아인이 아닌 사람을 일부러 떨어뜨린 것은 아니다. 백인과 아시아인이 성적도 좋고 대학 진학률도 높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도 상당 부분 사실이다.


실리콘밸리의 인종 구성을 미국 전체의 인종 구성에 가까이 가져가고 남녀 성비를 5:5로 맞추는 것이 다양성일까?




내가 소수자가 되어버렸다


실리콘밸리에서 아시아인 남자는 소수자가 아니다


나는 실리콘밸리의 아시아인 남자로서 백인만큼 수가 많은 오히려 다수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인지 회사생활에서 큰 문제를 겪지는 못했다. 나이, 성별, 민족, 언어 장벽, 문화 장벽 등으로 인해서 크게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일률적인 평등을 누렸다는 뜻은 아니다.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불편한 일이고 업무 효율을 저하시키는 이유가 된다. 내가 가정에서 아이를 기르면서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기여한 만큼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밤낮없이 일하는 젊은 친구들은 승진도 더 빨랐고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들은 나와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만이 가진 강점도 있었다. 나는 인문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로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엔지니어링에 접근하였다. 항상 사용자를 생각하였고 프로덕트 전체를 시야에 두고 코딩을 하는 엔지니어였다. 컴퓨터 공학 비전공자이다 보니 수학적인 측면과 알고리즘적인 측면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때는 강점이 되기도 했다. 모르는 것이 많다 보니 물어보는 것이 익숙해졌고 그러다 보니 팀 내 소통의 통로가 되기도 하였다. 또 전공자라면 으레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지식들에 대해서 도움을 필요로 하다 보니 팀 내 엔지니어들이 더 쉬운 말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아는 것이 많아서 잘난척하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더 존중받는 팀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내가 가진 특성들은 장점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단점으로 인식되가도 하면서 팀의 다른 멤버들의 특성들과 조화를 이루어 나갔다. 마치 축구팀이 스트라이커, 윙어, 미드필더, 윙백, 풀백, 골키퍼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다른 역할을 맡아서 최고의 플레이를 만들어가듯이 엔지니어들도 백엔드, 프런트엔드, 풀 스택 등의 여러 역할에서 설계를 잘하는 엔지니어, 코드를 잘 쓰는 엔지니어, 코드 리뷰를 잘하는 엔지니어, 다른 사람들을 잘 돕는 엔지니어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조화를 이루어갔다. 물론 그들은 각자의 영역과 재능에서 최고 수준이었지만 누가 더 좋은 엔지니어이고 나쁜 엔지니어인지를 가릴 수는 없었다. 최고의 스트라이커와 최고의 수비수를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였다.


소수자는 비단 인종과 성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중국인이 대다수인 팀에서 나는 갑자기 소수자가 되어버렸다. 중국어를 못하는 나는 많은 설계와 결정에서 소외되어버렸다. 대단히 심각한 문제는 아닐 수도 있었다. 마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담배 피우러 나가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들어와서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들은 약간의 불이익을 겪는 정도의 문제였다. 결정 후에는 영어로 된 문서가 공개되었지만 결정 과정은 대부분 뒤에서 중국어로 활발한 토론 끝에 이루어졌고 내가 영어로 참여하려고 할 때에는 이미 대부분의 결정이 이루어진 뒤였다.


그리고 우리 팀의 사람들은 엔지니어가 다양한 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은 우리나라 학교에서 성적을 매기는 방식처럼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엔지니어는 뛰어난 엔지니어이고 그렇지 않은 엔지니어는 별로인 엔지니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팀 내 엔지니어들을 일렬로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서 나는 거의 꼴찌였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을 하지도 않았고 내가 실리콘밸리 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던 나의 특성은 일반적인 엔지니어들이 가지는 특성이 아니었다. 내가 질문을 하면 고개를 젓거나 한숨을 쉬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는 중국어를 잘하고 기술적 토론에 참여할 수 있고 컴퓨터 공학 학교 성적이 뛰어났던 엔지니어들은 더 팀에서 신이 났고 그렇지 못한, 다른 특성을 가진 엔지니어들은 위축되고 도태되었다. 결국 입사할 때는 모두 다 뛰어남을 인정받아서 들어왔지만 획일적인 기준으로 한 줄로 세우다 보니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의 재능은 쉽게 낭비되었다. 마치 축구팀의 모든 선수를 골을 많이 넣은 순서로 일렬로 세우는 느낌이었다. 수비를 잘하는 사람은 무시되었고 모두가 스트라이커가 되어야 했다. 그중에 나는 골키퍼와 같은 위치였다. 골을 넣을 수도 없고 넣으려고 무리해서 노력해서도 안 되는 사람도 그 팀에서는 골을 넣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 팀에서는 “To be honest, diversity is bullshit. We only hire top engineers.”이라는 말이 가능했던 것이다. 엔지니어들을 일렬로 세워놓지 않고는 top engineers라는 말이 성립될 수 없는 일이다. 엔지니어의 특성이 다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일률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그 기준에 안 맞는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은 성립할 수가 없다. 단순히 엔지니어링 공부를 열심히 잘했던 사람을 뽑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각자의 역할이 있고 다양한 기준으로 판단을 하다 보면 전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채용과정에서 100% 아시아인으로 구성된 팀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가 스트라이커인 그 팀은 빠르게 성장하였다. 많은 엔지니어들이 소수의 결정에 따라 코드를 엄청나게 빨리 썼다. 그리고 그 팀은 도태되기 시작했다. 일에 지친 팀원들은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또는 승진을 하자마자 팀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 팀에서 내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던 나도 1년을 채우자마자 팀을 떠났다. 다행히 다음에 만난 팀은 나의 재능과 다른 엔지니어들의 재능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팀이었다. 나는 신이 나기 시작했고 최근에 새로운 도전을 찾아 떠나기까지 정말 멋진 팀과 행복한 2년 반을 보냈다.



성장과 진화


획일화와 다양성


성장에 있어서 다양성은 걸림돌이다. 성장에 제일 중요한 것은 효율이다. 모든 사람들이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따를 때 기업의 성장은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이루어진다. 만약 팀 안에 온갖 언어를 쓰는 그리고 문화적 배경이 각각인 사람들이 있으면 명령의 전달은 매우 비효율적이 된다. 그래서 다른 특성을 가진 구성원이 오면 원래의 문화에 동질화되거나 걸림돌이 되어야 한다. 여성은 임신 사실을 숨겨가면서 남성처럼 일해야 하고, 동성애자는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겨야 하며, 모든 직원들은 비슷하게 생각하고 일해야 하고 일부 우수사원처럼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 기업의 성장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필요가 없다. 치열한 경쟁 시장에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시장 점유율을 올리는 일은 집단 달리기 경주와 같다. 느리게 달리는 선수를 팀에 데리고 있으면 팀 전체가 위기에 몰릴 수 있다.


반면 진화에 있어서 다양성은 필수 메커니즘이다. 진화는 다양한 개체들이 저마다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 중에 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생존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도 목을 늘리려고 노력해서가 아니라 여러 기린의 개체 중 목이 긴 개체가 생존에 적합하여 번식하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진화하는 팀은 달리기 팀이 아니라 축구팀과 같다. 각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필요가 없는 선수는 도태된다. 그렇지만 달리기 팀과 같이 획일적인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여러 다양한 평가 지표가 필요하고, 숫자로 평가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공격수이지만 전술적인 움직임이 뛰어난 수비적인 공격수였던 박지성을 어떤 숫자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할까? 숫자보다는 주관적인 기여도로 평하가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성장을 거쳐 진화해야 할 우리나라의 산업


제조업 수출 위주의 개발 도상국의 환경에서 성장을 해야 했던 기업 환경에서는 효율적인 성장을 위해 획일화와 표준화가 중요했다. 그렇지만 “애자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기업 문화의 목적은 진화이다. 끊임없이 시장의 상황과 반응을 보면서 새로운 개념과 제품을 만들어내고 기존의 제품을 바꾸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몇몇 나라가 아닌 전 세계인의 시각에 맞추어. 이러한 환경에서는 다양성은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 된다.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멋진 프로덕트가 중동에서는 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일본에서 자신의 국가의 영광된 시절을 돌아보는 프로젝트가 아시아 전체에 대한 위협과 모독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혁신은 여러 새로운 아이디어 중 극히 일부만이 살아남게 된다. 그러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없으면 혁신은 처음부터 일어날 수가 없다.  


진화가 필요한 다양성의 시대에 다양성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성은 단순히 민족 구성이나 성비의 균형이 아니다. ‘내가 나로서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다양성이다. 여성이 남성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고, 외국인이 한국인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종교, 신념, 성 정체성을 숨기지 않아도 일하는데 지장이 없는 것이 다양성의 근간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실리콘밸리에서 같은 일을 하고 돈을 적게 받는다면 나는 실리콘밸리에서 일을 하기 싫을뿐더러 그것은 불합리하고 내가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는 일이 될 것이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으로 일이 아닌 성별이나 민족 등에서 야기되는 불평등을 없애는 것은 다양한 생각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데 필수적이다.


개인은 집단으로 평가할 수 없다


영어로 인종차별주의는 racism, 성 차별주의는 sexism, 나이로 인한 차별을 agism이라고 한다. 나는 왜 그 단어들에 우리말과는 달리 “차별"이라는 말이 안 들어가는지 의아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뜻을 알 것 같다. Racism은 인종 전체의 특성으로 개인을 판단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대부분 영어를 잘 못하고 위계질서에 익숙하니까 너도 그럴 것이라고 가정하고 그게 맞는 대우를 해주겠다.’라는 뜻이고 ‘여성은 대부분 남성보다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애를 낳으면 퇴사하니까 너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연봉을 깎겠다.’라는 뜻이다. 이는 차별이라는 개념 전에 경험적으로 얻어진 집단의 특성으로 개인을 규정지어버리는 것이다. ‘이슬람에는 테러리스트가 많으니까 너도 테러리스트일 것이다’와 비슷한 맥락이 된다. ‘너는 나이가 많으니까 일을 못 할 것이다.’라는 것도 나이에 대한 편견을 개인에 적용한 것이 된다. “차별"을 생각하기 전에 집단과 개인은 구분되어야 한다. 집단은 경향이 있지만 개인에 100% 적용될 수는 없다.


개인은 철저히 개인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여성 개발자가 드물고 실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면접을 보는 여성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한국인은 대부분 위계질서에 익숙하지만 지금 면접을 보는 한국인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민족, 성별, 나이, 종교를 철저히 배제하고 한 사람의 개인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이 가진 역량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다양성이 존중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중요하다. 한 여성이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역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탈락하는 것은 괜찮아도 상대적으로 같은 실력을 가진 남성과 여성 중 여성이 탈락하는 것은 다양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과 도전이 된다.


내가 나로서 일할 수 있는 회사


이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되었다. 선진국은 인건비가 비싸다. 그래서 최저시급도 올라가고 제조업에는 갈수록 힘든 환경이 된다. 그렇지만 인건비가 높다는 것은 전 세계의 똑똑한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가 전 세계의 인재를 다 끌어모으는 것은 좋은 문화, 좋은 환경, 높은 연봉이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되어버린 우리나라는 더 이상 제조업과 수출의 성장을 추구하기는 힘들다.


더 큰 임팩트를 갖는 나라가 되려면 전 세계의 인재를 끌어모아서 우리만의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특성을 버리지 않고 “내가 나로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 유니크한 것을 만들어 전 세계에 기여할 우리 산업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높은 연봉을 줄 수 있게 되었지만 좋은 기업 내 문화가 없어서 수많은 인재들을 놓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실리콘밸리의 인재들이 한국 대기업에 취업해보고 자신의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적응해보려 노력하다가 돌아서곤 한다.


이제 돈 주는 회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응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돈 주는 회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활용해야 하는 시대이다.

작가의 이전글 정재승 교수님과 함께 한 강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