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나의 남의 어머니

by 서희

나는 목소리만으로 엄마의 친구들을 구별할 수 있었다.

유독 전화통화가 잦았던 시절이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들은 각자 길이가 달랐다. 그중 가장 오래, 가장 자주 우리 집과 연결되어 있던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 나는 그 아줌마를 그렇게 불렀다.

첫 해외여행을 인도 배낭여행으로 잡았을 때, 부모님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아줌마가 더 걱정했다. 너무 위험하다고. 나는 그 마음이 마음에 걸려 현지에서 옥 펜던트 목걸이를 하나 샀다. 아직 가지고 계시려나. 모르겠다.

내 인생의 굵은 마디마다 그 아줌마가 어딘가에 있었다.

들은풍월로 아줌마 가정을 대충 알고 있었다. 남편분 직업부터가 이미 그랬고, 아이들은 소문대로였다. 팔방미인 첫째, 잘생기고 개구쟁이인 둘째, 실력으로도 외모로도 손색없는 딸. 아줌마의 아이들은 멋있는 사람들로 자라 있었다.

나도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생의 큰 매듭이 하나 지어지던 시절, 아줌마는 자연스럽게 축하 자리를 마련하셨다. 거기에 둘째 아들이 같이 나왔다.

우리는 그렇게 결혼을 했다.

남의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가 되었다.

알파맘이셨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시는 분. 그 날개 아래 내가 들어간 것이다. 친정보다 곱절은 촘촘한 집안이었고, 나는 세상물정 모르는 호구에 가까웠다. 알파맘과 호구의 만남이었다.

알파맘은 알뜰살뜰히 나를 키우기 시작하셨다. 옷차림부터 친구관계까지. 처음에는 어디서 호흡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늘 숨이 과하거나 모자랐다. 거짓말에도 숨기기에도 능숙하지 못한 나는 재잘재잘 잘도 말했다.

지금은 하루에 수 차례 전화를 해도 괜찮은 사이다.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어머님이 생각난다. 전화로도, 영상통화로도, 만나서도 한참을 수다를 떤다. 서로에게 익숙해진 것이다. 40대 중반의 둘째 며느리를 지금도 키우고 계신다. 나는 처음보다 많이 편해졌다.

최근에는 전에 없이 피곤하다고 하신다. 부쩍 약해진 모습이 보인다.

마음이 아프다.

내 휴대폰 즐겨찾기 1위. 나의 남의 어머니.

나는 오늘도 먼저 전화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