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자리에서 나는 웃었다
둘을 앉혀놓고
나는 자리를 만든 사람 역할을 했다.
어색한 공기를 깼고,
공통점을 찾아줬고,
분위기가 풀리자 먼저 일어났다.
잘 됐으면 했다.
진심이었다.
둘 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 자리의 행복함이 어떤 슬픔을 불러올지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2019년 봄
한창 맑고 청아한 날들이었다.
더위가 오기 전,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
나는 직장동료였다.
망설이지 않았다.
작업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시동을 걸었다.
그녀를 안아줬다.
그리고 내가 아는 가장 복잡한 기계들과 연결되어 잠들어 있는 그를 만났다.
5일이었다.
새벽에 병원으로 갔다가 저녁에 다시 병원으로 갔다.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큰 위기가 여러 번 왔다.
복잡한 수술도 받았다.
그녀는 그 5일을 병원에서 꼬박 보냈다.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챙겨줬다.
그녀는 무엇을 주어도 눈물로만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그를 봤을 때.
온몸에 에크모, 신장투석기, 중심정맥관.
달 수 있는 모든 기계를 달고 있었다.
강제 삽관으로 치아가 깨져 있었다.
수액을 너무 맞아 몸이 다 부어 있었다.
혈액순환이 안 돼 피부색은 얼룩덜룩했다.
나는 그 기계들이 전부 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눈은 모질게 감고 있었다.
붙잡고 또 붙잡았지만.
그는 5월에 떠났다.
가장 맑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는 떠났고、 우리는 남았다
짝사랑하는 두 여자가 남았다.
한 명은 세상이 아는 슬픔을 가졌고.
한 명은 아무도 모르는 슬픔을 가졌다.
나는 장례식장의 모든 순간을 그녀와 함께했다.
그녀 대신, 회사에서 문상 온 모든 손님들과 슬픔을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와 이별했다.
그의 완벽주의는 그를 옭아맸고,
나의 격 없음은 그에게 상처가 되고 있었다.
나의 거친 사랑은 그의 섬세함에 자꾸 생채기를 냈다.
어린아이가 밤송이를 꼭 쥐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다.
밤송이라서.
하루하루 더 많이 미안함만 쌓인다.
자랑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끝내 자랑하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그 친구 곁에 있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그녀가 다시 사랑을 시작했다
말리지 않았다.
말릴 수 없었다.
그녀가 사랑을 선택할 때
상대방의 상황이나 조건을 보고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종류의 아픔이었다.
그 사람은 그녀의 사랑을 모른다.
심장이 좋지 않다는 것만 들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병원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 옛날 응급실 앞에서 처럼, 장례식장에서 남편에게 네 번 절을 하던 그때처럼, 모든 장례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던 버스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온몸으로 울던 때처럼 울고 있었다.
나는 그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녀를 안아주었다.
오늘 그녀는 어딘가에서 울고 있다
찾아갈 수가 없다.
어딘지 모르니까.
나는 여기 있고
그녀는 거기 있다.
닿지 않는 사랑 앞에서
그녀는 오늘도 혼자다.
나는 그녀의 사랑을 말리고 싶었다.
충분히 아팠으니, 더 이상은 아프지 말았으면 했다.
그가 떠난 5월이 오고 있다.
나는 무엇을 말리고 싶었나
아픈 사랑.
너무 아픈 사랑.
근데 그녀는
그 사랑이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했다.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한다.
우리는 둘 다
닿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사랑이 아프면 사랑이 아닌 게 아니다.
닿지 않는다고 사랑이 아닌 것도 아니다.
나는 오늘도
가장 아픈 쪽을,
그래도 사랑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