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곰돌이 푸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by 서희

메시지는 짧았다.

"선생님, 새로 지으신 시설에 견학을 가서 좀 배워도 될까요?"

보낸 사람 이름을 보고 잠깐 웃었다. 몇 년 만이지, 하고 세어봤는데 잘 몰랐다. 그냥 꽤 됐다는 것만 알았다.


처음 만난 건 선배의 소개였다.

의욕 넘치는 후배가 있는데 진로 상담을 받고 싶어 한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응했다. 그 시절의 나는 좋은 인력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반이었다.

그는 컸다. 체구도, 웃음도. 처음 보는 순간 곰돌이 푸가 생각났다. 그런데 사람의 인상은 얼굴에만 있지 않다. 앉는 방식, 듣는 방식, 대답하는 방식. 같이 있어보면 어느 정도는 보인다. 그는 성실했고 예의가 온몸에 배어 있었다.

좋은 사람이다, 싶었다.

좋은 사람으로 잘 자라길 바랐다. 그게 진심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같은 업종에서 가끔 마주치는 사이가 됐다. 학회나 행사장 복도에서 눈이 마주치면 반가웠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래도 보이면 기분 좋은 종류의 관계.

그사이 그는 한 시설의 책임자가 됐다.

그사이 나는 한 회사의 고인물이 됐다.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반듯하니 겸손하고, 괜스레 읽는데 씨익 웃음 짓게 만드는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나는 제대로 된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담당자들을 끌어모았다. 이왕 오는 거, 제대로 보고 가게 해주고 싶었다. 워낙 호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가 좋은 기회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은 처음 만났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왔다. 여전히 컸다. 웃음도 여전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모지를 꺼냈다.

설명이 이어지는 내내 그는 받아 적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되묻고, 또 받아 적었다.

그는 엉덩이 끝만 의자에 걸치고 앉아 있었다. 거의 회의 테이블로 빨려 들어가듯. 온몸으로 집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눈이 반짝이는 게 눈으로 보였다.

보기 좋았다. 그리고 어딘가 조금 낯설었다.


나는 저렇게 앉아본 게 언제였지.


그가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 목숨 걸고 잘 해내고 싶어요."

목숨 걸고.

그 말이 가볍지 않았다. 그는 책임자다. 자기 시설이 있고, 자기 팀이 있다. 그러면서도 저렇게 앉아서 메모하고, 눈을 반짝인다.

나는 그 단어를 마지막으로 쓴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익숙해졌다고 했다. 경험이 쌓였다고도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냥 안이해진 것이었다. 업계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는데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재미가 없어진 게 아니라, 재미를 찾으려는 시도를 멈춘 것이었다.

그는 흐르는 물이었다. 나는 고여서 녹조가 끼어 가고 있었다.

그 사실이, 갑자기 부끄러웠다.

조용히, 그냥 부끄러웠다.


배웅하고 돌아오는 복도에서 그의 메모지가 생각났다. 빼곡하게 채워진 그것.


나는 오늘, 다시 받아 적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