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문은 열지 않았다.
열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캐리어가 거기 있다는 것도. 출발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그런데 몸이 창고 쪽으로 가지 않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으면 그냥 덮어버렸다. 약을 먹고 잠들거나, 넷플릭스를 켰다. 범죄다큐였다.
남의 살인사건을 보면서 캐리어 생각을 지웠다.
스웨덴 연수는 내가 노력으로 얻어낸 자리였다. 소중한 기회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연차를 거의 전부 2026년에 몰아넣었다. 몸으로 이미 배팅한 셈이었다.
출발은 몇 달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때는 아무 부담이 없었다. 영어 공부를 했고, 발표 준비를 했고, 초청해 주신 교수님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교수님은 늘 다정하고 여유로웠다. 회신이 올 때마다 두근거렸다. 외국인 특유의 느긋한 호흡으로 오는 그 이메일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좋았다.
한 달이 남았을 때부터 달라졌다.
내가 공항에 갈 수 있을까.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환승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끝은 항상 같았다.
패닉.
그리고 다시 넷플릭스.
시간은 쓸데없이 성실했다.
내가 창고 문을 외면하는 동안에도 그냥 갔다.
5일이 남았을 때 상담선생님께 연락했다.
편안한 의자에 편하지 않게 엉덩이만 대고 앉았다.
다리를 달달 떨면서 설명했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 뭐가 무서운지.
선생님이 들으셨다.
그리고 물으셨다.
서희님, 인천공항으로 돌아오잖아요. 스웨덴으로 가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그 순간을 생각해 볼까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랬다. 나는 돌아온다. 인천공항으로. 그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곧 없어질 사람처럼 일하고 있었다. 모든 이메일 회신 기한을 출발 전으로 공지했다.
부서 홈페이지에 부재 공지를 올렸다. 4월에 일어날 모든 일에 조치를 취했다. 돌아온다는 전제가 없었다.
선생님의 한 마디가 그걸 뒤집었다.
그렇게 어제, 캐리어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