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옆구리를 찌르다
공기부터 달랐다. 평소라면 항온·항습 장치가 고르게 돌아가는 소리와 키보드 타닥거림만 들리던 공간이, 그날은 묘하게 팽팽했다. 출입구마다 경호 인력이 서 있었고, 평소 보지 못하던 얼굴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높은 분들’이 온다고 했다.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칼 정장을 입고 있었다. 비서진과 경호원, 회사에서 한자리한다는 사람들까지. 검은 양복의 무리가 한 덩어리로 움직였다. 넥타이 부대라는 말이 딱 맞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먼지가 묻어도 이상하지 않은 옷. 내 머릿속에는 의전 대신 동선과 설명 순서, 안전과 효율이 들어 있었다. 그게 내가 맡은 일이니까.
“오십니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내게 손을 내밀었다. 깔끔한 악수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다. 누군가가 먼저 인사를 건네면, 나는 인사를 돌려주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뒤따라 들어온 사람들이 입구를 막아버렸다. 정작 설명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뒤에 갇혔다. 공간은 좁았고, 사람은 많았다. 흐름이 막히면 사고도 같이 난다.
내가 할 일은 단순했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안쪽으로 이동해야 뒤가 열린다. 나는 그 원칙대로 움직였다. 현장은 늘 그렇다. 흐름이 만들어져야 일이 된다.
가장 먼저 들어온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아주 작은 동작으로, 옆구리 쪽에 시선을 걸었다.
“죄송하지만, 조금 더 안쪽으로 이동해 주시겠습니까?”
그는 나를 한 번 보더니 군말 없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막혔던 동선이 풀렸다. 사람들은 자리를 잡았고, 나는 브리핑을 시작했다. 질문이 들어오면 대답했고, 어려운 용어는 풀어서 설명했다. 내가 월급을 받는 이유를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일정이 끝난 뒤, 동료가 사색이 되어 다가왔다.
“서희님… 아까 그분이 누군지 아세요?”
“몰라. 누군데?”
“회장님이시잖아요…”
아.
그냥… 아…… 그랬구나.
내 머릿속에서 방금 전 장면이 다시 재생됐다. 내가 악수하고, 내가 안쪽으로 안내하고, 그 사람이 군말 없이 들어가던 장면.
그리고 나서야 조금 주눅이 들었다. 원칙은 원칙이지만,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생각이 늦게 따라왔다. 팀장님 얼굴이 잠깐 굳었던 것도 떠올랐다.
그날 저녁, 재벌가 쪽에서 마련했다는 만찬 자리에 나는 가지 않았다. 팀장님도 정신이 없었고, 나도 괜히 불편했다. 어쩐지, 그냥 쿨하게 할 일 하고 사라진 현장 기술직 나부랭이가 되는게 편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만약 내가 그가 누군지 알았더라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들어오려면 앞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물리 법칙은, 지위와 상관이 없으니까.
그날 넥타이 부대 사이에서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정장을 입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내가 입은 그 작업복이, 그 공간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는 사람의 옷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화려함보다 본질을 택하겠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