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족을 수학문제처럼 풀려고 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집에서 거의 잠만 잤다.
야간자율학습과 심야자율학습, 방학 보충수업.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저녁까지 학교에 잡혀 있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엄마는 도시락을 두 개 싸 주셨다.
점심 하나, 저녁 하나.
나는 그 도시락을 들고 하루를 버텼다.
그건 분명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족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사춘기에는 친구가 더 중요했고,
어린 시절의 기억은 또렷하지 않다.
함께 산 시간은 길었지만, 함께 있었던 시간은 짧았다.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런데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2주에 한 번씩 부모님이 상경했다.
냉장고를 열고, 방을 살피고, 내 얼굴을 확인했다.
부모님은 겁이 많으셨다.
딸은 크리스털 잔 같아서 작은 충격에도 부서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건 사랑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랑을 보호가 아니라 구속이라고 불렀다.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는 생활비는 등록금을 내고 건실하게 살아가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액수였다.
하지만 나는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돈이 아니라 선택권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나는 텔레마케터부터 과외선생까지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말하지 않았고, 묻지 않으면 설명하지 않았다.
술도 마시며 놀고 싶었고,
연인에게 선물도 하고 싶었다.
누구의 딸이 아니라 그냥 스무 살로 살고 싶었다.
우리 집 크리스털 잔에게는 연애라는 것은 없었다.
연애 상대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연애 자체가 나에게는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크리스털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독한 상사병을 앓아봤고,
폭풍 같은 이별도 겪었다.
제대로 밥을 못 먹고,
핸드폰을 하루에도 몇 번씩 뒤집어 보던 날들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모른다.
내 손가락의 커플링 흔적처럼, 나는 알고 그들은 모른다.
그 무렵부터 가족은
진짜 나를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잘, 건실하게 사는 모습을 제출하는 자리가 되었다.
“응, 나 잘 지내.”
그 문장이 늘 마지막이었다.
나는 크리스털 잔인 채로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집안끼리 아주 친한 집의 아들과 결혼했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운명 같은 만남, 뜨거운 열애, 극적인 프러포즈.
그런 건 내 인생에 없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은 작은 삐걱거림도 없이 진행됐다.
그리고 내 생활은 더 답답해졌다.
나를 크리스털 와인잔으로 생각하는 팀이 두 팀이 되었기 때문이다.
친정의 걱정에 시댁의 걱정이 더해졌다.
누구도 감시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좋은 딸, 좋은 며느리, 문제없는 아내.
그 역할을 십수 년 유지했다.
끝나지 않는 가면무도회 같았다.
그러다 폐암에 걸렸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던 남편에게
간병을 맡겨야 했다.
그는 정말 우수한 간병인이었다.
화장실부터 병상까지,
내가 스스로 할 수 없는 모든 일을 도왔다.
그 장면들은 아름답지 않았다.
좋은 모습도 아니었다.
나는 약했고, 느렸고, 의존적이었다.
그는 열심히, 당연하다는 듯, 아주 기꺼이 나를 돌보아 주었다.
아, 나는 가족에게
정답지 같은 사람으로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단정하고, 무너지지 않고, 흠 없는 사람.
그런데 병상에서는
내가 흠을 숨길 수가 없었다.
부서지고, 상처 입고, 겁이 많은 얼굴이 그대로 나왔다.
그 얼굴을 보고도
남편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육각형 인간이 아니어도
나는 여전히 그들의 가족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여전히 크리스털 잔처럼 아낌을 받는다. 사랑받고 있다.
그들이 애써서 보호하던 크리스털 잔은
수십 년을 살아보니 의외로 충격에 약하지 않았다.
부서지지 않았고,
부서질 뻔한 순간마다 다시 형태를 잡았다.
나는 이미 단단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단단함은, 여러 가족의 보호를 받은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나는 그 보호를 답답함으로만 해석하며 살아왔지만,
사실 그 덕분에 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영원히 부모님의 소중한 크리스털 잔이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는 충분히 단단한 양은냄비다.
둘은 같은 테이블 위에 있다.
둘 다 나다.
수술 이후로 나는 조금씩 더 솔직해졌다.
좋은 소식만 전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지치는 날은 지친다고 말하고,
겁이 나는 일은 겁난다고 말한다.
나는 깎아놓은 조각처럼 멋진 인간의 표본도 아니다.
이리저리 쿵쿵 받히고 부딪혀
찌그러진 양은냄비 같은 사람이다.
이제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흠집이 있어도, 손에 익은 훌륭한 조리도구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완성형 인간을 연기하는 쪽이 아니라
찌그러진 채로 살아가는 쪽,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