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벽을 원칙이라 불렀다.
나는 영업사원을 절대 만나지 않았다.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단 한 치의 오해도 싫었다.
불가피하게 만남이 생겨도, 늘 만인에게 공개되는 장소를 택했다. 카페나 로비 같은 곳. 숨길 수 없는 공간.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발생하는 다과 비용은 늘 내가 부담했다. 상대가 아니라 내가 계산했다. 티끌만큼도 엮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만나서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그 말이 나오면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메일로 보내달라고. 문서로 남기라고.
전화도 꺼렸다. 기록이 남지 않는 대화는 오해의 여지를 만든다고 봤다. 나는 내가 한 말보다, 누군가가 전할 말을 더 경계하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직급이 올라갈수록 만남의 요청은 더 잦아졌다. 그럴수록 나는 더 냉정해졌다. 어느 날은 정말로 못을 박았다. “절대로 만나지 않겠습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원칙이라고 불렀다.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깨끗하게 선을 긋는 것이 품위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의 상사와 친분이 있던 거래처 대표가 조용히 말했다.
“직원들 너무 세워두지 마세요.
그 사람들도 자기 일을 하러 온 거 아닙니까.
그들의 일을 할 기회를 주는 게 맞지 않을까요.”
나는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그렇지. 나는 내 일을 하고 있고, 그들도 그들의 일을 하고 있는 거였다. 내가 그들의 일을 방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나는 어두운 거래를 경계했고, 사탕발림을 의심했고, 쓸데없는 친목을 차단한다고 생각했다.
더 오만했던 건 따로 있었다.
영업사원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까지도 경계하고 의심했다.
업무가 아니라 관계가 굴러가는 세계라고 단정했고, 그래서 더 강하게 선을 그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려던 것은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업무를 설명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그들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시간을 ‘내어준다’는 표현이 어색한 것도 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대하던 방식은, 분명히 ‘주지 않는 쪽’에 가까웠다.
그 순간 번개처럼 기억이 스쳤다.
내 첫 직장에서의 업무는 기술영업이었다. 나는 서툰 초년 영업사원이었다. 전화를 수십 통 걸어 겨우 약속 하나를 만들고, 서툰 운전으로 길을 헤매며 허겁지겁 거래처로 향하던 쪽이었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설명을 이어가고, 돌아오는 길에 방금 했던 말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탓하던 사람이었다.
그 시간이 내 일이었다.
나는 영업이라는 활동에 대해 너무 오래, 너무 쉽게, 나쁜 프레임을 씌우고 살았다. 오만했고 섣불렀다.
그날 이후 나는 생각을 조금 바꿨다.
모든 만남을 허용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원칙을 내려놓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게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연락해 오던 사람을 한 번은 앉혀보겠다는 마음이다. 그의 말을 듣고, 필요한 만큼 질문하고, 그 자리에서 판단하겠다는 태도다.
선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그 선이 벽이 되지는 않도록.
나는 오늘, 사람을 역할로만 보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