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나는 멈추지 않기로 했다

나는 충분을 건넸다

by 서희

12월이 되면 나는 달력을 고른다.
일정을 기록할 칸은 적절한가, 음력이 표기되는가, 사진은 충분히 귀엽고 예쁜가, 가격은 부담스럽지 않은가. 생각할 게 많다. 달력 하나를 고르는 일에 마음이 많이 간다.

메모를 쓸 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적는다. 이름을 쓰는 동안 그 사람을 떠올린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 말없이 자기 몫을 해내는 모습, 괜히 한 번 더 챙겨보게 되는 표정들. 부서의 어른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들을 아낀다.

하지만 선물은 늘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떤 이는 포장을 뜯어보지조차 않고 뉘어두고, 어떤 이는 가족에게 가져다주고, 어떤 이는 업체 달력 뒤에 대충 세워두기도 한다. 그 달력은 영원히 1월인 채로 남는다. 대부분은 잘 사용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예외’들을 기억한다.

예전에 부서가 다섯 명이던 시절, 나는 매일 아침 김밥이나 주먹밥을 다섯 개씩 사 왔다. 장가도 가지 않은 청년들이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걸 보며, 아침이라도 든든하게 먹이고 싶었다. 나중에 속내를 건너 들었다. 살만 찌운다고.

그 후로는 아무것도 사 오지 않았다.

마음을 건네는 일, 그리고 그 마음이 같은 무게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일이 버거워졌다. 직장에서 동료에게 직장 이상의 관계를 기대하는 것은 부담일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했다. 내가 멋대로 내 마음을 건네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 방식의 다정함이 상대에게는 무게였던 건 아닐까.

그들은 나를 좋아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분명히 그들을 좋아하는데.

지독한 짝사랑 같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다만, 나는 그 짝사랑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고백한다고 모두 연인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고백이 잘못은 아니다. 받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언젠가는 닿겠지, 같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표현한다.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니 달력에 그들의 평안한 1년을 담아 건넨다.
그걸로 충분하다.

주는 마음은 내 일이다.
그 마음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그들의 일이다.

나는 올해도 달력을 골랐다.
나는 멈추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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