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나는 왜 미안했을까

나는 충분을 넘겼다.

by 서희

그의 고백은 둘만 있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조용한 공간에서 손을 잡았고, 나는 그 손이 시작을 의미한다고만 생각했다. 누군가의 끝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손을 놓지 않은 채 사람들 앞에 섰다. 갓 연인이 된 우리를 축하하던 따스한 시선이 잠시 머물렀고, 그다음 장면이 빠르게 바뀌었다. 그녀가 무너졌다.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축하의 온도는 동정으로 옮겨갔고, 그 동정은 나를 향한 원망 같은 분위기로 번졌다. 마치 내가 무언가를 빼앗은 사람처럼.

나는 정말 몰랐다. 그녀가 그를 그렇게 좋아하고 있었는지. 유난히 나를 아끼던 일 년 선배였고, 나는 그 아낌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선택은 그의 것이었는데, 사과는 내 몫이 되었다. 나는 다가가 말했다. 미안하다고.

그와의 연애는 짧지 않았다.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오며 이어졌고, 결국은 부서졌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나를 아끼던 언니도, 착한 내가 좋다던 그 연인도 모두 잃었다. 두 사람은 이제 소식조차 잘 듣지 못하는, 곁에 있는 타인보다 먼 지인이 되었다.

그날 내가 건넨 사과는 공중에 흩어진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붙잡지 못했고,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괜찮아,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서른 하나. 내가 떠나기로 했던 직장에는 ‘언니’가 있었다. 동종업계에서 서로 의지하던 사람이었고, 현장에서는 서로의 편이었다. 그녀가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고 알게 된 날, 나는 기뻤다. 든든하게 나를 막아주던 우산 같은 선임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뒤였으니까. 의지하고 기댈 사람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 선임들을 내보낸 사람이 그녀에게 낙하산을 채워준 사람이라는 것을.

관계는 기울었다. 내 의견은 지워졌고, 그녀의 말은 결정이 되었다. 나는 실무를 책임졌고, 결과도 내가 감당했다. 그러나 위계는 끝내 명확해지지 않았다. 나는 물었다. 그녀가 상사가 맞습니까. 맞다면 권한과 책임을 함께 정리해 주십시오.

돌아온 답은 단순했다. 책임은 네가 지되, 그녀와는 잘 지내라. 그녀의 말을 잘 들어라.

그 과정에서 나를 죽인 말이 이어졌다.
“너 지금 여기서 나가면, 딱히 갈 데도 없잖아?”

그 말에 나는 단숨에 퇴사를 결정했다. 망설임 없이 이직했다. 내가 붙잡고 있던 건 직장이 아니라, ‘여기밖에 없다’는 문장이었음을 그때 알았다.

나는 떠났다. 떠나는 자리에서도 사과를 준비했다. 미안하다는 편지와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한 선물. 관계의 끝이 거칠게 남지 않기를 바랐다. 나중에 들었다. 그것들은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고.

얼마 뒤, 그녀의 부친상 소식을 들었다. 조의를 보냈다. 조의금은 지인을 통해 반송되었다. 봉투를 돌려준 사람은 지금 내 옆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예전에 그녀와 함께 일했던 사람. 그는 매우 곤란한 얼굴로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그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만들게 해서.

며칠 뒤, 장문의 문자도 도착했다. “이깟 돈, 편지, 선물 따위로 마음을 사려하지 말아라.” 같은 문장이 반복되었다.

나는 또 사과했다. 무엇에 대한 사과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때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이건 네가 잘못한 일이 아니라고.

지금의 현장은 더 분명하다. 출입동선과 미생물학적 방어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 규정을 어긴 사용자가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특권이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계층의 일원처럼 보였다. 문제는 규정 위반보다, 현장 실무자가 자신을 지적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였다. 그는 그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때 우리 직원이, 나의 소중한 동료가 얼음처럼 굳어 떨고 있었다. 그의 분노는 압도적이었고, 그 앞에서 우리 직원은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그를 구해내야 했다.

나는 도착해 둘을 분리했다. 문을 닫고 그를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프러포즈하는 사람처럼, 마치 그를 사랑하는 연인이 되어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처럼.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더 직접 전달했어야 했습니다.

잘못은 그쪽에 있었지만, 사과는 내가 했다.
온 마음으로, 낮은 자세로.

나는 현장을 지켰다. 동시에 나를 낮췄다.

어제는 더 단순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더 선명했다.

나는 차를 너무 바싹 붙여 세웠다. 다시 주차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전화 오면 내려오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30분 동안 전화를 받지 못했다.

사진과 문자가 도착했다. 내가 또 전화를 받지 않자 분노는 커졌다. 그리고 드디어 나와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이미 그는 폭발 직전이었다. 수화기 너머의 온도가 느껴졌다.

내려가자 그는 담배 연기를 내 얼굴에 뿜으며 비난했다. 나는 연거푸 사과했다. 그리고 차를 빼고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커피 쿠폰을 보내고 또 사과했다. 앞으로는 연락도 잘 받고 주차도 매너 있게 하겠다고, 다시 한번 사과했다.

돌아온 답은 짧았다. 부탁합니다.

그때 생각했다. 쿠폰까지 보냈어야 했을까.
그는 내가 보낸 것엔 관심도 없이 커피를 마실 것이다.

돈이 아까운 게 아니었다. 내가 그에게 쏟은 시간과 마음과 정성이 아까웠다. 정중하고 단정한 사과 한 번이면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충분을 넘어서, 내 쪽에서 더 낮아지는 방식으로 상황을 마무리하려 했다.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잘못에 대한 죄책감이 큰 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건이 끝났는데도 내 쪽에서는 끝나지 않는다. 이미 정리된 일을 다시 꺼내고, 내가 하지 않아도 됐던 말까지 기억해 낸다. 그때 왜 그랬을까, 내가 더 매끄럽게 했어야 했나, 혹시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나. 나는 그 질문을 오래 끌고 간다.

그래서 사과는 종종 사건의 크기와 상관없이 늘어난다. 누군가에게 차를 빼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에서도 먼저 미안해진다. 내가 피해를 주지 않은 장면에서도, 상대가 조금이라도 불편해 보이면 사과를 붙인다. 사과가 예의가 아니라 생존 기술이 된 셈이다. 가장 빨리 공기를 가라앉히는 방법. 가장 빨리 나를 안전한 쪽으로 옮기는 방법.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과로 그 순간을 정리해 놓고도, 나는 혼자서 다시 되짚는다. 불필요했던 사과까지도 ‘증거’처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다음 장면으로 들고 간다. 나는 사과를 해서 끝내는 사람이 아니라, 사과를 하고도 오래 남기는 사람이다.

어제 사건이 나를 일깨웠다. 나는 실수를 했고, 사과는 해야 했다. 하지만 한 번의 정중하고 단정한 사과로 충분했을 일을, 나는 여러 번 반복했다. 그 반복은 상대를 위한 배려라기보다,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상대의 분노가 잦아들 때까지 내 마음을 더 꺼내 바치고, 나를 더 낮추는 방식으로 마무리하려 했다.

사과는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 존엄까지 정리할 필요는 없다. 내 자존감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괜찮은 사람’으로 남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잘못한 일에는 한 번, 단정하게 사과한다.
그다음은 설명이 아니라 행동으로 갚는다.
그리고 사건을 끝낸 뒤에는, 불필요한 죄책감까지 들고 가지 않는다.
내 시간을, 내 마음을, 내 정성을 분노를 달래는 비용으로 쓰지 않는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