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은 예의가 아니라 불안이 되었다
나는 정기적으로 매우 자주 SNS의 연락처를 차근차근 짚는다. 오래 연락이 없는 인연들에게 꼭 인사와 안부를 전하는 습관이 있다. 왜 이런 습관이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꽤 오래 반복해 왔다.
나는 늘 먼저 연락하는 쪽이고, 마지막으로 답장하는 쪽이다.
“잘 지내지?”
“갑자기 생각나서 연락했어.”
가끔은 그 연락이 오랜만의 대화로 이어진다. 그럴 때면 안도한다. 아직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르다. 내 연락에 당황한 기색이 묻어나거나, 무심한 한 줄이 돌아온다.
“어, 오랜만이네…”
대화는 거기서 멈춘다. 나는 그 멈춤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괜히 부담을 준 건 아닐까. 답장이 오지 않으면 자책이 따라온다.
최악의 경우도 있었다. 상대가 이미 연락처를 바꾼 뒤였다. 나는 모르는 타인에게 안부를 보냈고, “번호 잘못 아셨어요”라는 답장을 받았다. 그때의 허탈함은 묘하게 오래 남았다. 관계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혼자 관계를 붙잡고 있었던 사실을 확인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오랜 기간 먼저 연락하고 안부를 물어도, 거의 대부분은 먼저 안부 연락을 해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심지어 헤어진 연인들에게도 인간적으로 안부는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관계는 끝났어도 예의는 남아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 역시 관계를 놓지 못하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연락을 예의라고 생각했다. 먼저 움직이면 관계가 유지된다고 믿었다. 연결되어 있어야 안심이 됐다. 하지만 그 연락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확인에 가까웠다.
최근에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쑥 안부를 묻는 행위가, 어쩌면 상대에게는 연락 공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친절이라고 믿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한 진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십이 넘어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기억될 수 없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인연일 수 없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이제 나는 연락처를 들여다보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빨간 동그라미 속 숫자에도 둔감해지려고 한다. 촌각을 다투는 급한 일이라면, 어떻게든 연락이 닿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나는 연락을 줄여서 관계를 버리려는 게 아니다. 내 불안을 덜어내려는 것이다. 내가 만든 구덩이에서 내가 빠져나오려는 것이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