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망설인 뒤, 다시 놓은 화장실
ㅣ폐암 선고는 갑자기 왔다.
설명은 길었고, 결정은 짧았다.
수술 날짜는 미룰 수 없다고 했다.
동의서에 서명했고,
절개가 있었고,
폐의 일부가 사라졌다.
수술은 예상보다 잘 끝났다.
회복도 빨랐다.
생각보다 빨리 걸었고,
통증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 시간에 가족이 대신 집에 갔다.
19년을 함께 산 고양이.
내가 병실에 누워 있던 날,
그녀는 이미 많이 약해져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내가 없는 집에서 조용히 떠났다고.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마지막 눈을 보지 못했다.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오래 함께 한 고양이와의 이별은 가슴에 남는다.
오로지 나에게만 의지하던 작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뭉치가, 어느 날 집에서 사라지는 일이다.
그녀가 떠난 뒤에도 집은 바로 비워지지 않았다.
바닥 모서리에 털이 남았고,
코트 안감에도 털이 박혀 있었고,
소파 틈에서는 익숙한 냄새가 조금씩 올라왔다.
나는 그 흔적들을 감히 ‘정리’할 수 없었다.
오히려 무심코 내려다본 옷자락에서
그녀의 털이 발견되면 반가웠다.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 같아서,
나는 한동안 그 털을 떼어내지 못했다.
한 번은 오열했고,
어떤 날은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내가 울고 있는 이유가 그녀인지, 나인지도 구분이 안 됐다.
그리움은 감정이라기보다 생활이었다.
문을 열 때,
발소리를 기다릴 때,
무릎 위가 비어 있을 때,
나는 계속 한 마리를 찾았다.
나는 들은 적이 있다.
고양이는 오랜 반려인의 아픔을 조용히 꺼내어
봇짐을 꾸려 고양이별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믿는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상하리만큼
수술 결과는 좋았고,
회복은 예상보다 빨랐다.
순서를 따지면 설명은 어렵다.
그래서 기록만 해둔다.
그녀가 떠난 뒤, 나는 빨리 나았다.
나는 너무나 미안했다.
그녀를 직접 돌봐주지 못했고,
직접 보내주지 못해서.
그래서 다시는 고양이와 함께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사료통을 치웠고,
화장실을 버렸고,
집을 ‘사람만 사는 집’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SNS에서 사진 한 장에 손이 멈췄다.
그녀와 똑같이 생긴 유기묘.
입양처를 찾는다는 글이었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고 싶지는 않다.
그건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화면을 닫지 못했다.
수없이 망설였다.
또 이별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왔다.
또 병을, 또 상실을.
시간과 체력과 마음의 비용을
조용히 계산했다.
그럼에도 그 얼굴을 외면하지 못했다.
가족을 찾는 눈이었다.
입양 문의를 보냈고,
집에 다시 화장실을 놓았고,
사료를 주문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그녀는 내 무릎에 조용히 앉아 있다.
나는 안다.
이 선택은 엄청난 기쁨을 주겠지만,
언젠가 이 작은 아이가 고양이별로 갈 봇짐을
주섬주섬 정리하는 날이 오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며
또 한 번 슬퍼하게 될 것임을.
그 사실을 모른 척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기로 했다.
고인물로 남지 않기로 했다.
흐르는 쪽을 택했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