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다정 앞에서, 나는 늘 갚는 사람이 된다

by 서희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부엌에서 소리가 난다.
도마 위에서 칼이 닿는 소리.
냄비 뚜껑이 부딪히는 소리.
나는 거실에 서서 잠깐 숨을 고른다.
손님이 아니라, 가족이 들어온 날이다.



우리 가족은 꽤 보수적인 집안이다.
아들 사랑도 유별나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면 보통은 며느리를 숨 막히게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런데 우리 집은 다르게 흘러간다.

시부모님은 나를 정말 아껴주신다.
그건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생활이다.
밥이 먼저 나오고, 따뜻한 말이 먼저 붙는다.

어머니와 나는 가끔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낸다.
같은 장면에서 웃고, 같은 장면에서 혀를 찬다.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손을 움직이고,
나는 옆에서 어슬렁거리며 반응한다.

“먹어봐.”

그 말은 늘 자연스럽고, 늘 따뜻하다.
어머니는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쪽으로 움직이신다.


딱 한마디로 설명하면, 다정도 병이다.

내가 하루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면
어머니는 함께 웃고, 함께 화내고, 함께 걱정하신다.
그러다가도 내가 너무 상처받을까 봐
말보다 먼저 나를 달래주신다.

그럴 때 나는 확신한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정말로, 많이.



시부모님은 지방에 사신다.
그리고 매달 며칠씩 서울에 올라오셔서 우리 집에 머무신다.
처음에는 솔직히 겁이 났다.
좋은 분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같은 공간에서 며칠을 함께 산다는 일은
나에게 호흡이 줄어드는 일이었으니까.

지금은 요령을 안다.


24시간 내내 완벽한 며느리일 필요는 없다는 것.
가끔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도 되고,
누군가가 집에 있어도 낮잠을 잘 수 있다는 것.

요즘의 나는 ‘손님맞이용’으로 집을 바쁘게 꾸미지 않는다.
그냥, 사는 집 그대로 둔다.
그게 무심함이 아니라
오래 살아낸 관계만이 줄 수 있는 편안함이라는 걸
조금씩 배웠다.


20년이라는 세월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사람은 결국
함께 살아낸 방식으로 서로를 배운다.


얼마 전에는 친정 가족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받아보며 나는 잠시 멈췄다.
내 표정과 자세가, 놀라우리만큼 시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웃는 모양까지 빼다 박았다.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닌데
내가 먼저 알아봤다.

사람은 사랑받는 쪽을 닮아가는 걸까.

그 사진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태어나서 친정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고,
지난 20년은 시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구나.


나는 한 번도 사랑이 끊긴 적이 없었다.

슬픔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울컥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사랑을 받는 일이 늘 조금 버거웠다.
친정부모님의 사랑 앞에서도 그랬다.

나는 사랑을 받으면
그만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망시키지 말아야 하고,
기대에 어긋나지 말아야 하고,
그 마음을 가볍게 만들면 안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관계에서 늘 “더”를 선택해 왔다.
누가 부탁하기 전에 먼저 챙기고,
서운해지기 전에 먼저 웃고,
갈등이 생기기 전에 내가 먼저 접는다.

습관처럼 더.
더.
더.


시부모님께서는 늘 나를 아껴주신다.
그런데 나는 그 앞에서
조금은 푼수 같은 사람처럼,
조금은 덜 단단한 사람처럼
웃고 또 웃느라 버거울 때가 있다.

너무 똑똑해 보이지 않으려고,
너무 단단해 보이지 않으려고,
괜히 더 가볍게 군다.

그게 편해서가 아니라
그게 안전해서다.


이상하게도
나를 향한 사랑이 클수록
나는 더 버거워진다.

나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갚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고마운데, 그래서 자꾸 버겁다.


그래서 나는 거창한 결심 대신,
다정을 받는 쪽에 잠깐 서 보기로 했다.

이 글은 누군가를 향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오래된 방식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이제,

가끔은 받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