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나는 PPT로 이력서를 냈다.

내 입으로 내 자리를 줄였다.

by 서희

첫 회사에 지원할 때, 나는 이력서를 한글도 워드도 아니고 PPT로 만들었다.

정해진 양식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대체로 쓰는 양식이 있다는 걸 나는 몰랐다.

몰랐고, 그래서 당당했다.

내 기준에서 이력서는 간단했다.

상대가 궁금해할 만한 질문에 답하면 된다.

경력은 사실이고, 성과는 숫자고, 역할은 문장으로 정리하면 끝.

그걸 제일 빨리 담는 그릇이 PPT였다.

그래서 만들었다.

그리고 제출했다.

메일에 파일을 첨부하면서도 나는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력서란 대체로 이렇게 생겨야 한다’는 관습을 아예 모르던 시절이었다.

내가 틀렸다기보다는, 내가 그 세계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었던 거다.

면접 자리에서 공기가 한 번 바뀌었다.

누가 웃었는지, 누가 당황했는지는 흐릿한데

“얘는 좀.....”이라는 뉘앙스만 남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몰랐다.
일단 합격했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조직에서 “또라이”라는 말을 꽤 들었다.

보고 방식이 남들과 결이 안 맞고, 속도가 다르다고 했다.

대개는 “너무 빠르다” 쪽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을 크게 억울해하지도 않았다.

애매하면 속도로 밀어붙이는 편이었으니까.

나는 내가 빠른 줄 몰랐다.

그냥 끝났으니까 끝났다고 말했을 뿐이다.

결론이 나왔으니까 결론부터 꺼냈다.

보고는 공유라고 생각했지, 합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다른 회사로 옮겼다.

외국계였다.

일하는 방식도, 평가하는 방식도, 말의 무게도 조금 달랐다.

그리고 거기서 퇴사할 때,

CEO와 퇴사 면담을 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정도 규모에서는, 저 같은 사람을 이 연봉에 고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선을 넘는 오만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은 꽤 질타를 받았다.

나는 누군가의 밥그릇 위에 발을 올린 채로 ‘합리’를 말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을 ‘정의’라고 믿었다.

효율이라고 믿었다.

어차피 조직은 굴러가야 하니까.

그럼 굴러가게 만드는 쪽을 선택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명분은 있었다.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인터넷 가십이나 뒤지다가 퇴근하는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없어져도 된다고.

나는 그걸 혼자 결론 냈다.

내 자리도 포함해서.

그날의 나는 퇴사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대상으로 구조조정 브리핑을 하는 사람이었다.

슬라이드는 없었지만 결론은 또렷했다.


21년쯤 사회생활을 하고 나니

나는 그 말의 모양이 무엇을 부숴버릴 수 있는지 알게 됐다.

조직은 늘 두 층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층.

하나는 회사라는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층.


나는 첫 번째 층에서만 살았고,

두 번째 층을 ‘불필요한 옵션’처럼 취급했다.

그 옵션이 사람을 살리고,

관계를 붙잡고,

결국 일을 굴러가게 한다는 걸

뒤늦게 배웠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 말을 이렇게 평가한다.

오만했다.

선을 넘었다.

그리고 너무 빨랐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결론이 바뀌진 않는다.

지금의 나라면?

글쎄.

똑같이 말은 할 것 같다.

다만 방식은 바꿀 것 같다.

칼처럼 말하지 않고, 칼집을 먼저 찾는 쪽으로.

내가 요즘 쓰는 작은 실행은 세 가지다.

첫째, 결론을 알고 있어도 중간보고를 한 번 넣는다.

둘째, 결정 전에 담당자와 충분히 소통한다.

셋째, 회의에서는 결론보다 질문부터 꺼낸다.

같은 결론이라도, 혼자 결론 내리지 않기.

같이 걸어오기.

누군가의 체면을 망가뜨리지 않기.

첫 회사에 PPT 이력서를 냈던 내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이제는 안다.

관습을 무시한 속도는 종종 사람을 베어버린다는 걸.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

작가의 이전글[다시 신입] 다정 앞에서, 나는 늘 갚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