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주차의 달인 같은 것

착각

by 서희

좁은 공간을 보면 승부욕이 올라온다. 뒤에서 차가 한 대라도 기다리면 더 그렇다. 한 번에 넣으면 희열이 남는다. 한 번에 못 넣으면 하루가 헝클어질 것 같아서, 이제는 징크스가 됐다.


내 오래된 RV는 코도 궁둥이도 짧다. 타깃을 스캔하고 운전대를 돌린다. 후진기어. 핸들을 리드미컬하게 조정해서 골인. 목표는 양쪽 주차선 한가운데. 바퀴 각도까지 마음에 들어야 한다.


이 징크스가 이상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제는 한 번에 넣은 결과가 엉망이어도 다시 하지 않는다. 내려서 보면 더 싫어질 걸 알아서다. 문을 닫고, 그냥 걸어간다. 시간에 쫓기지도 않는데 말이다.


후진기어를 넣는 타이밍, 기어가 바뀌는 ‘타다닥’ 소리가 나를 살짝 흥분시킨다. 그리고 나는 꽤 빠른 속도로 주차를 진행한다. 동승자들은 식겁한다. 나는 그 식겁을 룸미러로 한 번 보고도, 손을 더 빨리 돌린다.
처음 차를 샀을 때 거주지의 주차 상황이 최악이었다. 거기서 하드트레이닝을 받았고, 덕분에 정신무장은 잘 된 편이다.
정신무장만 잘 되었지, 결과들은 그렇지 못하다. 사고를 많이 냈으니까.


최근에 남편이 아끼는 새 차에서도 나는 주차로 승부를 봤다.
그리고 기둥이 차와 인사를 했다. 200만 원이 나왔다.
남편의 새 차는 처참했다.
미끈한 색이 긁혀 있었다. 펜더가 덜렁거렸다.
나는 한동안 차 앞에 서 있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후 며칠은 그 장면이 반복됐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덜렁거리는 펜더가 먼저 떠올랐다. 약을 먹어야 잠이 왔다.


단독 공간이 아니면 늘 남의 차와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나는 이걸 ‘주머니주차’라고 부른다.
그런 자리가 아니면, 나는 어느새 분란을 만드는 쪽이 되어 있더라. 한 번에 넣는 데 집착하면서 주차 매너가 먼저 무너졌다.
‘이따위로 주차하지 말라’는 메모도 몇 번 받았다.
나는 달인이 아니다.
그래서 규칙을 세워보기로 했다. 주차에서도, 나는 다시 신입이 되기로 했다.
좁은 곳에서 승부 보지 않기.
속도는 5~10km/h.
기어 변속음에 집착하지 않기.
오른쪽과 왼쪽 사이드미러를 번갈아 확인하기.
비뚤어지면 다시 넣기.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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