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회만 배우고, 내 속도로 복습하겠다고 말한 날
전혀 새로운 곳이었다. 온라인 상담으로는 정보 안내에 제한이 있으니 직접 만나야 설명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채팅으로 먼저 양해를 구했다.
“저는 주 2~3회 운동을 원하지 않습니다. 주 1회 선생님께 배우고 집에서 복습하겠습니다.”
말도 안 되지. 피트니스를 어떻게 집에서 복습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답변이 예상과 달랐다.
“네! 그러시죠!! 오히려 그것이 저도 좋습니다.”
그 순간 작은 궁금증이 생겼다. 집에서 복습할 수 있는 운동이 있다고? 그 호기심이 약속을 만드는 쪽으로 나를 밀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심장이 또 뜀박질을 했다. 완전한 타인을 만나러 간다는 건, 요즘의 나에게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돈인 자영업자의 시간을 내가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도덕적 압박까지 더해졌다. 가기로 했으면 가야 한다. 단순한 문장이 나를 결국 그곳으로 밀어 넣었다. 40대 중반의 고인 물에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엇인가를 함부로 시작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부들부들 떨며 유리문을 열었다.
묘한 향기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운동기구는 없고, 힙한 음악이 낮게 깔려 있었다. 낯선 조명, 낯선 공기. 나는 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섰다. “나 여기 왜 왔지” 같은 생각이 스쳤고, 동시에 “왔으니까 들어가야지”가 따라왔다.
내가 만날 사람은 나보다 한참 어린 청년이었다.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나는 산소가 부족해 기절하기 직전처럼 아득했다. 처방받아 필요할 때 먹는 약을 삼키고, 겨우 눈인사를 건넸다.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었다. 시간과 공간이 비틀리는 기분이었다. 크지 않은 덩치의 청년 선생님이 거인처럼 느껴졌다.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그제야 겨우 현실로 돌아왔다.
처음 설명을 들으러 간 날, 나는 정확히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정확한 것이 몇 가지 있다. 그는 나에게 등록을 ‘권하지’ 않았다. 부담스럽지 않았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운동 철학은 굉장히 뚜렷했고 멋졌다. 어쩐지 엉망이 되어 버린 내 몸을 구원해 줄 것 같았다. 그 확신 같은 것이, 나를 다시 한번 그 문 앞까지 데려왔다.
운동은 아기 구르기 같은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시작했다. ‘운동’이라기보다 몸을 깨우는 쪽에 가까웠다. 이어지는 낯선 맨몸운동들도 신기하게 거부감이 없었다. 그리고 몹시 큰 덩치의 나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는 움직임들이었다. 무엇보다 젊은 선생님은 느리고 고장 난 나를 충분히 기다릴 인내심이 놀라울 만큼 두터운 사람이었다.
그는 ‘친절하다’기보다는 친근했다. 과하게 다정하지도 않았고,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더 빨리 경계심을 내려놓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목소리를 내었다.
“저… 최악이죠?”
그는 잠깐 나를 보더니 짧게 말했다.
“아뇨. 지금 시작한 게 제일 중요해요.”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지금의 나는 늘 ‘늦었다’는 쪽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는 ‘시작했다’는 쪽을 먼저 봤다.
하지만 집에서 복습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오랜 우울증은 나를 다시 끌어 앉히니까. 남들은 100개씩 200개씩 한다는 운동을, 나는 하루에 3개, 5개로 시작했다. 별것 아닌 숫자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 작은 성취감이 천금 같은 가치가 있다. ‘오늘도 했다’는 사실 하나가, 내 하루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밀어주니까.
선생님은 늘 말한다. “못하는 건 없습니다. 안 하는 것만 있어요.” 나는 그 말의 힘을 믿고 있다. 내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안 하는 쪽’이 아니라 ‘하는 쪽’에 서 있기로. 오늘은 3개, 내일은 5개. 그렇게라도.
생각해 보면 이 하루의 핵심은 운동이 아니었다.
유리문을 여는 일이었다. 낯선 곳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나는 내 속도로 시작하겠다”라고 말하는 일이었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