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불용 처리 목록

인간관계의 유효기간과 불용 처리

by 서희


회사는 5년 이상 된 비품들의 불용처리 여부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작동 여부, 유지 비용, 공간 점유율.
쓸지 버릴지 체크박스 하나로 정리된다.


인간관계에는 그런 표가 없다.


헤어진 연인,
직장에서 퇴사한 직원들,
운동하다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


나는 그들의 이름을 불용 처리하지 못했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대화창을 열어
안부를 보냈다.
답이 오지 않으면, 사건이 시작된다.


읽히지 않은 숫자 1.
나는 그 작은 표시를 확대했다.
말투를 복기하고, 표정을 되짚고,
혹시 내가 무례했는지,
언젠가 실수했는지,

무수히 대화창을 오르내리며
기억을 긁어냈다.


증거는 없는데
피고는 늘 나였다.


가끔 이런 답을 듣는다.
“아,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야 하는데… 늘 먼저 연락 주시네요.”


그 순간 관계가 드러난다.
누가 움직이는 사람인지,
누가 기다리는 사람인지.


나는 늘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었다.

나는 인연의 붉은 실이 끊겼는지, 굳이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한 번 멈춰 보려 한다.


관계를 불용 처리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멈추면 멈추는 관계라면
거기까지인 것으로 두려 한다.


추가 기소는 하지 않는다.
증거 없는 자백도 하지 않는다.

읽히지 않은 1은
판결문이 아니다.


나는 오늘,


철수할 줄 아는 쪽, 하는 쪽에 서겠다.









작가의 이전글[다시 신입] 유리문을 여는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