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아하는 것들을 가볍게 만들지 않기로 했다.
커피를 좋아한다. 회사 앞에 드립커피를 제대로 내려주던 작은 가게가 있을 때는 매일 텀블러를 들고 출근했다. 커피 향이 아주 사람을 미혹시킨다. 혹은 마법을 거는 듯하다. 넌 오늘도 내 도움으로 정신 차리고 일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이다.
드립커피 주인장이 원두를 받아 갈고, 천천히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리는 동안 우리는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은 팍팍한 일상일 수도 있고, 특별했던 어제의 기억이기도 했다. 커피가 내려지는 시간 동안의 아찔하던 향과 재미있던 대화가 참 좋았다. 기다림은 귀찮지 않았다. 그 시간이 이미 커피의 일부였다.
그 가게가 없어지고 난 어느 순간부터 샷을 추가한 라테를 즐기기 시작했다. 미리 어플에서 주문하고, 출근길에 잠시 들러 가져오기만 하면 된다. 대기업의 맛. 같은 가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직원이 만든, 언제나 동일한 맛이다. 절대 실패할 일 없다. 그래서 나는 안심한다. 내 오전이 흔들리지 않으니까.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난 배경음악을 몹시 중요시한다. 그래서 모든 일에 항상 음악이 따라붙는다. 요즘은 유료결제만 하면 지구의 모든 음악을 다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손가락 몇 번이면 어떤 노래든 바로 나온다. 쉽고 빠르게 찾아 듣는 노래들의 가사는 어쩐 일인지 통 외울 수가 없다. 너무 많은 노래를 너무 쉽게 들을 수 있으니, 내가 요즘 어떤 노래를 가장 좋아하는지도 헷갈린다.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듣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것들을 ‘지나쳐 듣는’ 느낌에 가깝다.
예전에는 달랐다.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오기라도 하면 급히 녹음 버튼을 눌렀다. 라디오에 사연이나 노래를 신청했는데 방송이라도 되면, 그날은 미치는 거다. 일단 녹음은 기본이고, 방방 뛰며 기뻐했다. 그렇게 그 노래는 나의 소중한 추억과 함께 녹음되었고, 반복해서 들을 때마다 더욱 소중해졌다. 가사는 물론, 가수가 어디서 숨을 쉬는지 알 수 있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시절 그렇게 모아 듣던 노래들은 지금도 노래방에서 가사를 보지 않고도 완창이 가능하다.
용돈을 모아 모아 좋아하는 가수의 컴백 날에 맞추어 음반가게로 달려가곤 했다. “나왔어요?” 하고 물으면, 내가 누구를 기다리는지 아는 사장님은 말없이 카세트테이프를 진열대 위에 올려두었다. 그 작은 동작 하나로 그날의 설렘이 확정되었다.
집에 돌아오면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타이틀곡만이 아니라, 그가 내놓은 모든 곡을 공평하게 들어줬다. 마음에 드는 곡만 골라 사랑하지 않았다. 한 앨범을 통째로 외우는 일이 내 방식이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기필코 가사를 외워내고야 만다. 반복은 습관이 아니라 애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소중함이 가벼워지는 게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쉽게 흘러가버린다. 나도 모르게 ‘좋아하는 것’마저 처리하듯 넘기고 있었다.
대학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믹스커피를 준비해서 사물함에 두고, 쉬는 시간에 우르르 몰려서 커피를 타 마시며 “역시 커피는 믹스!!” 외치고, 누가 물 양을 기가 막히게 맞춘다는 둥 시시덕거리며 즐기던 커피 타임. 맛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과 손길과 농담이 커피의 일부였으니까. 나는 그 ‘손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쉬웠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LP를 꺼내고 CD와 카세트테이프를 정리했다. 미소가 번질 만큼, 좋아했던 노래들이 보물상자의 금화처럼 쏟아져 나왔다. 턴테이블 앞에 앉아 신중하게 고른 판 하나를 꺼낸다. 후후 불어 먼지를 털고 올린다. 그리고 둔한 손으로 바늘을 갖다 댄다. 지지직, 시작 소리가 온몸에 기분 좋은 소름을 돋게 만든다.
한 판에는 많은 노래가 들어가지 않는다. 꽤 짧은 시간 안에 뒤집어줘야 한다. 수고스럽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턴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가, 노래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판을 뒤집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틈틈이’가 아니라 ‘꽉’ 채워서 들어본다. 그제야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내 귀가 다시 분명해지는 느낌이 든다.
커피도 비슷하다. 캡슐커피지만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뜨거운 우유를 데워 거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뜬다. 기어이 만들어진 공백에 텅 빈 여유를 올려두고, 그 여유를 잠깐 즐긴다. 우연히 지나가던 동료와 몇 마디를 나누기도 한다.
아직 서툴러서 맛은 일정하지 않다. 어떤 날은 너무 진하고, 어떤 날은 밍밍하다. 그런데도 나는 이게 훌륭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내가 만들어 마신다. 그 과정에 시간이 붙어 있고, 그 시간이 귀하다.
나는 좋아하는 것들을 가볍게 만들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감사하며, 정성껏 준비하고 충분히 즐기는 길을 선택했다.
빨리, 효율적으로, 쉽게, 가볍게—당연하게 받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