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간식과 새끼손톱만 한 고기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영어성경을 읽고 논어를 공부하던 사람이었다.
아침 공기는 늘 단정했고, 엄마의 책상 위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학창 시절 나는 엄마에게서 한치의 빈틈도 본 적이 없다.
엄격한 기숙학교의 사감선생님 같았다.
집에서는 뉴스만 틀어졌다.
나는 유행하던 드라마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리모컨의 방향은 늘 하나였다.
허락된 옷을 입고, 허락된 곳에 가고, 허락된 말만 하며 자랐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았다.
서울만 가면 연예인을 숨 쉬듯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시골쥐의 상상이었다.
서울은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적응은 쉽지 않았지만 집에는 말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럼 내려와”라는 말을 들을까 봐.
그 선택지는 지우고 살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조금 뾰족한 딸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의 생활에 이상한 패턴이 생겼다.
엄마가 다녀가면
과자와 빵, 아이스크림이 사라졌다.
컵라면을 포함한 모든 인스턴트 음식이 싹 없어지고, 대신 냉장고는 단정해졌다.
하아... 나는 엄마를 향해 날을 세웠다.
아 쫌 건드리지 말라고. 내 거...
엄마는 별 대답이 없었다.
엄마의 요리는 늘 기름기가 적었다.
닭고기에서는 껍데기와 지방을 모두 제거하고,
삼겹살의 기름도 최대한 도려내고,
항정살에서도 기름을 떼어냈다.
갈비찜은 며칠을 끓여 기름을 걷어낸 뒤에야 상에 올랐다.
엄마는 늘 칼끝으로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는 사람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엄마가 말했다.
“몸에 안 좋은 거는 다 내가 먹어 없애야 네가 안 먹지.”
25년 넘게 사라지던 간식의 이유를 그때 알았다.
버린 게 아니었다.
엄마가 먹고 있었던 거였다.
내 대신.
시간이 더 흘렀다.
엄마는 이제 새벽마다 영어성경을 펼치던 사람이라기보다,
드라마와 유튜브를 보며 울고 웃는 할머니가 되어 있다.
뉴스만 틀어지던 거실에는 연속극 대사가 흐르고,
엄마는 등장인물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감선생님 같던 꼬장꼬장함은 찾기 어렵다.
말끝은 부드러워졌고, 규칙은 느슨해졌다.
대신 다른 것이 생겼다.
“오늘은 안 오니?”
“잠깐이라도 얼굴 보자.”
매일 내가 한 번 들러주기만을 기다리는,
조금은 낯선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주말에 게으르게 자고 있는 마흔 넘은 딸을 기어이 불러내
엄마는 한 상을 차려놓았다.
칼이 들어가는 모든 곳의 기름을 제거한 희한한 모습의 항정살 구이와
미나리전이 상 가득이다.
기름을 어찌나 잘라냈는지
고기가 새끼손톱만 한 조각도 보인다.
부엌에서 세월에 조금 작아진 엄마는
온몸의 힘을 칼끝에 모으고 있다.
나는 툴툴거린다.
“엄마, 이게 고기 맞아?”
그러면서 가장 많이 집어 먹는다.
마흔이 넘은 딸에게 기름을 조금이라도 덜 먹여보겠다고
온 힘을 칼끝에 집중하는 사람.
엄마의 사랑은, 그렇게 생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