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나는 방학에도 내려가지 않았다

나는 몰랐던 환승

by 서희

내가 그린 그 사람과의 미래는 길었다.
아무도 없는 서울바닥에서,
그 사람은 내 종착역이 되어줄 줄 알았다.

그래서 남았다.
방학인데도,
본가로 내려가지 않았다.

종강 후,
지방 친구들은 본가로 돌아갔고
서울 친구들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학교 근처 자취방에
나만 남았다.

나는 방학을 그렸다.
서울에서, 연인이랑.

“이번 주는 좀 바빠.”

그 말이 자주 왔다.

하루에 한 통화.
그것도 내가 먼저 구걸해야 했다.

“지금 뭐 해?”
“잤어.”

“어제는?”
“그냥 운동했어.”

더는 안 나왔다.
그는 묻지 않았다.
내 하루를, 내 위치를, 내 사람을.

나는 빈 시간을 채웠다.
영어학원. 요가학원.
부러 끼워 넣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유난히 자취방이 초라해 보였다.

작은 책상.
접이식 의자.
선풍기 한 대.

결국 나는 물었다.
“왜 나한테 관심이 없어?”

그는 잠깐 멈추고 말했다.

“우린 안 맞는 것 같아.”
“회전목마 같아.”
“나는 롤러코스터가 타고 싶어.”

그리고 바로 이어서.
“헤어지자.”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는 전화를 먼저 끊었다.

뚝.

그 방학에 본가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던 순간에도,
나는 이미 혼자였을지 모른다.

나는 서울에 기댈 연인이 있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남았다.

오기로, 겨울방학을 서울에서 버텼다.
티스푼으로 야금야금 심장을 퍼먹히는 아픔을
그냥 견뎌보기로 했다.

미칠 듯했는데
울부짖을 곳이 없었다.
갑갑한 방학이었다.

절대로 누군가에게 기대서 일어나고 싶지는 않더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툴툴 털고
시크하게 이별을 툭 말하고 싶었다.

올 것 같지 않던 개강이 왔다.

다들 이별을 짐작할 수 있는 얼굴이 되어버린 나를
내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맞이했다.

쿡쿡 놀리기도 하고,
전 남자 친구를 나보다 더 심하게 욕하기도 했다.

그제야 눈물이 나더라.

슬픔을 허락받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그는 이미,
오래 입에 달고 살던 이상형과 연애를 시작했더라.

그 ‘운동’에서 만났더라.
내가 “어제는?” 하고 물을 때마다
돌아오던 그 한 문장,
“그냥 운동했어.”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거긴 이미 내 자리가 아니었구나.

어쩌면 나는 늘 혼자 새로운 문을 열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버텨 내며 내 편을 기다리는 방법을 알아낸 사람이다.
같이 열어줄 좋은 사람은 기필코 만나니까.

나는 오늘 새로운 문을 열어, 안 하는 쪽의 반대편, 하는 쪽에 서겠다.
함께 여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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