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 아빠랑 김밥을 먹었다.
우리 부모님은 같은 아파트 옆동에 산다.
이렇게 살게 된 이유는 설명하면 복잡하고, 대체로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리 아빠는 우리 집 도어록 번호를 외운다.
숫자는 열 개가 넘는다.
패스카드를 찍으면 되는데도 아빠는 굳이 번호를 누른다.
느릿느릿, 한 자리씩.
시부모님께서도 패스카드와 도어록 비번을 아신다.
그래서 우리 집은 늘 누군가에게 열려 있다.
그리고 아빠는 그 집을 자주 드나든다.
우리 집 낡은 캡슐커피를 “이게 제일 맛있다”라고 말하며 찾고,
정수기 물을 받아 가고,
여름 한창일 때는 고양이들 덥지 말라고 에어컨을 켜 둔다.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택배를 챙기고, 등기를 챙기고, 검침 안내문까지 챙긴다.
우리 집을 보살피는 사람처럼.
그런데 아빠의 이런 태도는 최근에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내가 따로 살기 시작한 건 대학 때부터였고,
아빠의 짝사랑 같은 딸 덕질은 그때 시작된 것 같다.
“나 집에 내려가.”
내가 그 한마디만 하면 아빠는 늘 먼저 와 있었다.
아빠는 단 한 번도 기차역으로 나를 데리러 오는 일을 잊은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내가 거기서 기다린 적도 없다.
술에 진탕 취해서 전화한 날도 있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아빠는 내가 전화를 했다는 사실 하나로 기뻐했다.
통화가 끝나면 꼭 같은 말을 남겼다.
“연락 줘서 고맙다.”
살이 찌면 쪄서 걱정, 빠지면 빠져서 걱정.
걱정은 방향만 바뀌고 멈추질 않는다.
우당탕탕 사회생활을 하다가
어쩌다 상이라도 받으면 아빠는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그리고 밥을 사고, 용돈을 탕진했다.
그게 본인한테는 자랑의 비용이었나 보다.
마흔이 훌쩍 넘은 딸이
“아빠 이거 사줘. 나한테 선물해 줘.”
장난처럼 징징거리면 아빠는 또 기뻐했다.
진짜로 사줬다.
생각해 보면 아빠는 내 제안을 거절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다시 오늘의 김밥 얘기.
아빠는 친구들과 당구 약속이 있었는데,
내가 “커피를 사 갈 테니 같이 김밥 먹자”라고 갑작스럽게 제안하자
“조금 늦을 것 같다”라고 먼저 연락을 했다고 했다.
나랑 김밥을 먹겠다고.
김밥을 먹다가 아빠 어깨에 머리를 기대 봤다.
너무 말랐다.
덜컥 겁이 났다.
노화는 이렇게 조용히 진행되는 거구나 싶었다.
딱히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이 줄어드는 속도는 멈추지 않는다.
아빠가 3일에 하루씩만 늙었으면 좋겠다.
그럼 나는 좀 더 천천히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김밥을 다 먹고, 신나서 당구 치러 나가는 아빠를 배웅했다.
이상하게도 그건 내가 배웅을 받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다.
아빠는 내가 발걸음을 돌릴 때까지 내 쪽만 본다.
내가 등을 보여야, 그제야 자기 갈 방향으로 간다.
문이 닫히고 나서, 나는 잠깐 거실에 서 있었다.
나는 부모의 시간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아빠가 ‘성덕’의 기쁨을 오래 만끽할 수 있게, 나는 아빠 앞에 자주 나타나 보려 한다.